<편집인 주>
지난 7월 23일부터 27일까지 5일 동안 독일의 파더본에서는 국제 평화운동단체인 반전인터내셔널 주최로 국제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 국내 평화운동가 6명이 참여했다. 그 중 한 명의 활동가가 회의에서 제기된 평화운동의 의제 중 한국도 직접적으로 연관되어있는, 국제 무기거래 반대운동을 소개한다. 총 4회에 걸쳐 실리는 이번 기사를 통해 국내 평화운동도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반전인터내셔널(WRI, War Resister's International(www.wri-irg.org))을 알게된 건 병역거부를 하고 난 후였다. 미리부터 많은 걸 알고 결심을 하기보다는 대부분 결심 후에 이론이 따라오기 마련. 나 역시 병역거부 이후에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병역거부의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알게 된다. 20세기 이후엔 더 이상 평화주의가 소수 평화주의자들만의 고민이 아니었음을. 전쟁과 학살에 맞선 행동을 통해 우리는 생생한 평화주의의 역사를 만나게 된다. 반전인터내셔널의 역사는 1차 세계대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므로 내가 반전인터내셔널을 알게 된 건 병역거부 운동의 역사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이루어졌을 터. 하지만 그 때는 국제연대에 대해 아무런 고민이 없었고 당장 코앞에 닥친 재판과 수감생활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 차 있을 때였다.
올해 독일에서 열린 트리니얼 회의
그리고 다시 3년 후. 아마도 반전인터내셔널을 직접 접하게 된 것은 2003년 한국에서 개최된 국제회의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반전인터내셔널은 활동가 상호간의 소통과 교감을 위해 해마다 국제세미나를 열고 있으며 그 중 3년마다 한 번씩은 더 큰 규모로 국제회의(Triennial Conference)를 연다. 우리가 이번 자전거 여행 중에 들린 국제회의는 바로 그 3년마다 한 번씩 하는 큰 규모의 회의로, 독일 파더본에서 열렸다. 아침, 저녁으로 전체가 참여하는 행사가 진행되고 오후에는 주제별로 그룹을 나눠 세미나를 진행했다. 중간 중간 자유 워크샵이 진행되는데 누구나 워크샵을 열 수도 있고, 어디든 참여할 수도 있다. 물론 모든 행사는 참여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모든 게 개인의 자유에 맡겨진다.
한국에서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운동을 함께 하고 있는 사회단체들 중 전쟁없는세상과 평화인권연대 활동가 여섯 명이 함께 했다. 이 회의에서 통용되는 언어는 독일어, 영어, 프랑스어, 에스파냐어뿐이었기 때문에 언어 문제로 인해 우리는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주제별 그룹을 선택해서 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세 사람씩 두 그룹으로 나누어 ‘살인을 거부할 권리(The Right to refuse kill)’와 ‘전쟁수혜자들(War Profiteers)’ 그룹에 참가했다. 그 가운데 나는 ‘전쟁수혜자들’ 그룹에 참여했다. 처음부터 주제별 그룹에 큰 기대를 하고 들어간 건 아닌데다 행사 기간 내내 언어문제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띄엄띄엄 알아듣는 말 속에서 조금씩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지난 몇 년간 반전평화 운동을 통해 우리는 전쟁으로 이득을 보는 자들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으니까. 하지만 아직 그렇게 깊이 아는 게 없으니까. 당연히 더 많이 알고 싶다는, 그래서 이 땅의 전쟁수혜자들을 ‘박멸’하고 싶다는 욕구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이익을 챙기는 이들
그 때 처음 생각난 단어는 ‘군산복합체’였다. 시나브로 우리에게 익숙해진 이 단어. 실제 활동가들로부터 듣는 군산복합체의 실상, 그리고 이라크 전쟁에 전쟁수혜자들이 개입하고 이득을 챙기는 과정을 듣게 되니 이제는 흥미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분노, 고통, 의지 같은 여러 가지 감정이 북받쳐 오르기 시작했다. 평화를 부르짖는 자들이 시시 때때로 전쟁을 조장하고 무기를 팔아먹고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이익을 챙긴다는 사실은 상식으로 알고 있어도 새삼스레 그 사실을 환기하게 될 때마다 감정을 억누르기가 쉽지 않다. 역시 자세히 알게 되니 조금씩 의지도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내 마음은 ‘그래서 한국에서 살고 있는 나는 뭘 하지?’라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한국군(정부)은 전쟁을 일으키는 주범은 아니고, 항상 공범 역할을 한다. 그래서 그런 지 한국의 반전평화운동에는 가해자 입장에 선 논리보다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리도 피해자일 수 있다는 식의 논리가 힘을 얻을 때가 많다. 그러나 이런 사고는 항상 피해자의 울분을 토하는 방식으로만 종종 폭발적인 참여를 보일 뿐 감정이 가라앉고 나면 이내 구체적 실천과제는 실종되고 만다. ‘평화운동=반전운동’이 아닌데도 그 이상은 아직 좀 버겁다. ‘나는 여기 있다. 레바논도, 이라크도, 아프가니스탄도, 시에라리온도 저기 멀리 있다. 파병 문제도 잠잠해졌다. 여기는 평온하다. 이 시점에서 나는 구체적으로 한국사회가 어떻게 저 멀리서 벌어지는 비참함에 연루되어 있는지 모른다. 이제 나는 반전평화를 위해 할 일이 없다. 혹은 잘 모르겠다.’
어디선가 한국산 무기가 쓰이고 있지 않을까?
또 ‘군산복합체’ 역시 미국사회에나 해당되는 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국사회가 구체적으로 전쟁에 어떤 식으로 개입되어 있는 지, 어떤 자들이 무기를 사고파는 지, 전쟁으로 인한 이득은 어떻게 분배되고 있는 지 거의 아는 바가 없다. 하지만 이제 확신하건데 한국사회는 분명 어떤 식으로든 개입되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추측이다. 구체적으로 아는 바가 없으므로. 하지만 나는 주제별 그룹에서 진행된 두 가지 사례 발표를 통해 이런 확신을 굳히게 되었다. 수많은 기업과 정부가 직·간접적인 방식으로 이득을 챙기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아마 우리 주변에도 설마, 설마 하지만 놀라운 사실들이 인식 저편에 놓여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한국은 세계 11위의 경제 강국이라고 한다. 실제로 베트남에 가보니 사방에 삼성과 엘지 간판이다. 한국이 세계 수위를 달리는 무기 수출국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비참한 현장에 한국산 무기가 쓰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기를 만드는 업체도 있고, 거기에 투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석유 중심의 에너지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니 분명 에너지 자원을 둘러싼 진흙탕 싸움에도 발을 담그고 있을 것이다. 재건 사업이랍시고 분쟁지역으로 들어가 이권을 챙기겠다는 계산은 이미 충분히 들어온 이야기가 아닌가.
아직 명확히 인식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확신하게 되는 그 무엇, 심증은 충분히 있지만 아직 물증은 없는 그 무엇, 아마도 그것을 밝혀내는 것 역시 평화운동의 과제가 아닐까. 이제부터 그 평화운동의 과제를 위해 첫걸음을 내딛으려고 한다.
덧붙임
나동혁 님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이자 전쟁없는세상에서 활동하는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