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의 시간여행, 반공주의
경찰청 보안과에서 교육 현장에 납셨다. 청소년들이 우리나라 안보현실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안보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할 수 있도록 경찰청 홍보예산 약 9천만 원을 들여 제작한 청소년용 안보홍보 만화 ‘지용이의 시간여행’ 15만부를 전국 초·중등학교 및 경찰관서에 배포할 예정이라고 한다.
전국 초중등학교의 보안시스템 구축 같은 거라면 무슨 일이려나 궁금하기라도 할 텐데 안보홍보만화라니 고개가 갸우뚱하지도 않는다. 다만 뒷목이 뻗뻗해지면서 ‘골 때리네~’라는 생각만이……. 시험스트레스도 다 못 풀었을 텐데. 설레는 마음으로 방학을 기다리고 있을 학생들이 가족여행도 아니고 배낭여행도 아니고 심지어 페키지여행도 아닌 지용이와 시간여행을 하게 되었다니.
“민주화 운동 이후에는 안보교육이 다소 소홀하게 다뤄진 측면이 있다.”며 내놓은 그들 식의 친근한 만화를 읽어보니 과거 반공주의 스멜~이 물씬 풍긴다. 만화는 북한의 실상(?), 탈북자의 사회정착, 북한이 주장하는 통일방식의 위험성,6.25 전쟁 등의 내용 등을 담고 있다. 결국 ‘북한의 존재’자체가 ‘국가안보’를 위협하니 긴장하라는 이야기 외에는 없다. 북한과의 평화협정 체결과 평화체제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다. 국가안보라는 유령은 아직 북한이 없으면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자인할 뿐이다.
국가보안법이 우리를 지켜준다고?
국가보안법은 국가의 안보를 실질적으로 위협하지 않아도 권력자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구속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법이다. 법률로써 규범력도 부족하고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나서 UN 자유권규약위원회, 미 국무성 등은 “한국이 국제인권법에 규정된 사상·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데 실패”하고 있다면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강력하게 권고해 왔다. 2004년 국가인권위에서도 폐지를 권고하였다. 국민의 기본권을 무조건 친북세력으로 몰아붙여 침해하는 반인권적이고 반민주적인 이 법은 정권안보를 위한 악법이다.
헌데 국가보안법이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지키는 법’이라니. 이런 빵꾸똥꾸! 국가보안법은 오히려 국민의 생존과 자유를 위협하는 법인데 말이다. 정부는 국가보안법의 폐지하기 어려운 이유로 ‘국민적 합의’를 들먹인다. 국가보안법은 제정과정부터 여러 번의 개정을 거치면서 쭈욱~ 국민적 합의 없이 정당성이 결여된 체 유지되어 왔다. 정말 폐지의사가 있다면 국가보안법 존치를 옹호하는 만화를 제작하면 안 되는 일 아닐까?
전쟁게임에 합류하고 있는 한국정부는 안 보이는지
청개구리처럼 볼 수밖에 없는 이 어설픈 만화... 그런데 요 만화 친미? 뭥미? 마치 6.25 전쟁 정전과 남한의 안정에 미국의 공이 지대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던 이유는 한반도에 미국과 소련이 개입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강대국들은 아량을 베풀 듯 이 땅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그들의 세력 확장을 위한 무대가 필요했던 것이었고, 6.25 전쟁을 통해 챙길 건 챙기고 배도 채운 것은 정작 미국이었다. 그리고 현재까지 주한미군은 남한을 미군의 전쟁기지로 여기고 있다.
현재 아프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미국의 전쟁게임이나 다름없다. 그들은 정당성이 없는 전쟁을 고집하고, 그 야만적인 전쟁판에 우리나라 국민들이 동참할 것을 강요한다. 할아버지는 끔찍한 전쟁게임을 그만하라고 손자를 구박하지만 그가 덕을 본 미국과 한국 정부는 현대 전쟁게임의 고수이다.
또한 분단국가라는 현실로 인한 국방비 규모는 북한뿐 아니라 남한도 엄청나다. 한국의 국방비는 2009년 기준으로 약 29조(28조 5,326억원)원 정도이며 한국군의 구조 특성상 실제 첨단무기/신장비/현대화 액수보단 현재로선 현상유비지(인건비, 각종 연료비 등 유비지)가 더 많이 나가는 실정이다. 국방비 문제는 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정부도 국방비를 줄일 수 있다면 우리의 복지현실은 좀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경찰청이 말하는 '국가안보'의 실체는 무엇?
여기에는 마치 남한은 사람들이 살기 좋은 세상, 천국인 것처럼 찬양과 고무가 난무한다. 과연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인가? 강제노동처럼 무서운 노동조건은? 언론, 사상의 자유는 제대로 보장 되고 있나? 여전히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면서 평화통일을 운운하는 그 모순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지? 내가 의심투성이 덩어리이고 호기심천국이라면 신이라도 나겠는데…….
이 안보홍보만화는 70년대 똘이 장군보다 못한 반공주의를 담고 있다. 현 정권이 반공주의 확산하여 실체 없는 ‘안보위험’을 조장하여 사람들의 인권을 채가도 어쩔 수 없다고 사전 경고하려는 의미 외에는 없다. 애써 국가의 불안을 조장하고 사람들의 다양성과 자율성, 주체성을 무시하는 횡포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우리의 의도와 사상을 자기검열하게 만들고 양심과 표현들을 주눅 들게 만든다. 다양한 생각들과 표현들이 공존하고 부딪치는 과정을 통해 자유민주주의체제는 더 성숙해질 수 있는 게 당연한 게 아닌가. 하지만 경찰청은 그러한 성숙을 받아들일 준비가 덜 되었나 보다. (폐지되어야 할 국가보안법지만) 안보홍보만화야 말로 국가안보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이적표현물’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이 책자를 마우스패드로 쓸까 생각 중이다. 그런데 경찰청 마크가 조금 찜찜하긴 하다ㅠ,ㅠ;;)
덧붙임
정인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