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입성 일주일을 앞두고, 10월 28일 평택에서 하늘인 우리들이 원하는 세상을 위한 행동계획을 논할 것이라 들었다. 어떤 작전이 나올까 궁금했다. 작년 겨울 희망텐트가 쳐졌을 때 가고 못 가본 쌍용차의 현재 풍경이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나 평택에 가고 싶었던, 아니 가야만 했던 이유는 행진단을 만나고 싶어서였다. 20여 일을 씩씩하게 걸어 이곳까지 이른 그/녀들에게 진심을 다해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그/녀들의 자리에 같이 있고 싶었다. 단지 그 이유였다.
용산에서도 그랬고, 강정에서도 그랬고, 영도에서도 그랬고, 늘 그러했듯 연대하러 가면 내가 건네주고 싶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는다. 농사꾼으로 평생 살아온 한 강정 주민, 구럼비 바위가 파괴되는 소리에 마음 아파 울다가 해군기지 건설 반대 투쟁을 함께하면서 차곡차곡 써온 시를 엮어 시집을 냈다는 그의 시낭송을 들으며 내가 알지 못하는 해군기지 공사 이전의 강정 풍경이 그려진다. 그 풍경을 전해줘서 고맙고 또 고맙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되지 않는 이상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용산, 노동자는 일회용품이 아님을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수많은 장기투쟁 사업장들, 초록의 가치를 위해 싸우는 많은 사람들, 20대와 30대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10대의 경우 사망원인 1위는 교통사고, 2위는 여지없이 자살이다)이라는 조사 수치 그 자체가 보여주는 절망의 고리를 이제 끊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지 나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바쁜 일상이라는 핑계로 잊고 지냈던, 아니 외면했다는 게 솔직한 그 질문을 다시금 기억하게 해주어 고맙고 또 고맙다.
평택시민들과 함께 하는 생명평화문화제에 함께 하기 위해 평택역으로 자리를 옮겼다. 다양한 표정의 탈을 쓴 사람들이 한창 공연을 진행 중이다. 그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 앉는다. 옆에 비치된 공연 소개 책자를 주워들어 읽어보니 2012 민족극한마당이란다. “광대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힘든 현실 속에서 부대끼는 삶의 한계를 넘어서는 민중적 신명을 발현하는 데 힘을 보태는 것입니다.”라는 소개말. 공연을 보면서 웃고 박수치다 보니 어느새 추위도 사그라진다. 함께 이 자리를 지키고, 이곳에 있는 많은 이들이 같이 웃을 수 있게 해주어 고맙고 또 고맙다. 뒤쪽에서는 문화제에 함께 하는 모두를 위해 쌍차가족대책위에서 준비한 주먹밥과 오뎅국, 누군가 자발적으로 준비한 ‘따뜻한 연대의 고구마’를 나누고 있다. 뱃속뿐 아니라 마음까지 든든하고 따뜻해진다. 고맙고 또 고맙다. 11월 3일 서울 입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하늘인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향해 계속해서 ‘우리는 간다’고 외치듯 행진단의 힘찬 노래에 이어 ‘신봉건국가’에 다름없는 지금의 세상을 우리가 바꾸자고 열띠게 소리치던 강동균 강정마을회장의 이야기가 평택역 광장에 가득 울렸다. 쌍차해고자의 아내로 살면서 수없이 들은 ‘힘내세요’라는 말에 지금보다 어떻게 더 힘을 내라는 건가 싶어 그 말이 참 불편하고 무거웠다며 지금 싸우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힘드리고 싶어요’, ‘함께 하겠습니다’라 전하고 싶다는 쌍차가족대책위 한 분의 이야기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그들의 노래와 이야기를 들으며 서로 힘을 북돋을 수 있다는 것이 고맙고 또 고맙다.
평택을 떠나 다시 오산, 수원, 안산, 인천의 투쟁 현장을 찾아 지금 이 순간에도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그/녀들. 11월 3일에는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용산 남일당 현장을 지나, 해군기지 백지화를 위해 국방부를 지나, 쌍차문제해결을 위해 동조단식하는 서울역을 지나 서울시청광장에 모여 하늘인 우리들의 연대를 선포한다. 우리들의 바람을 모아서 함께 걷자. 걸으면서 우리의 바람을 막는 것들을 걷어내자. 많은 사람들이 그 걸음에 함께 할수록 우리의 바람을 막는 것을 걷어내는 힘은 커질 것이라고 믿는다. 11월 3일 함께 걷자.
덧붙임
민선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