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글에 나온 회원 분께서 찍어주셨습니다.)
최근에 정신보건센터를 이용하고 있는 한 회원 분에게 당신이 쓰신 '문집'을 빌렸다.
빌린지 벌써 1주일이 지났고,
나는 그 문집을 반도 읽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왜 그의 문집을 빌려보고 싶었을까?
좋은 책을 곁에 두고 싶은 것과 같은 종류의.
나의 허접한 욕심이었을까?
몇 년 전 그 지역의 정신보건센터에서 나오는
회원들의 작품집을 보게 되었다.
일 년 동안 그녀/그들이 직접 쓰고, 찍고, 그린 글과 사진, 그림을 모아 내는 작품집인데, 이미 이 회원분이 그림을 잘 그리고, 감성이 풍부한 분인 줄 알았지만. 글을 잘 쓰시는 지는 작품집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잠깐 그의 시 하나를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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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바람이 떼 지어 신선하게 몰려다닌다.
빌어먹을 약 때문에 바람은 야멸치게
내 몸을 할퀴듯 지나간다.
자이프렉사, 인데랄 등등 잊어버리기 쉬운 약을 한 움큼 입속 털어 넣는다
약을 안 먹으면 안 되나?
30년을 반복한 일이다
몇 번을 끊었다가 재발하여 입원하고 그렇게 30년을 살았다
나는 그 어떤 것에 조종당하며 살았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자기 연민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낭비한 세월을 더듬거리네.
잊어라 잊고 살자
어차피 부유하는 것 붙들고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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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이곳저곳을 통해 알리고 싶었었다.
'아프면 무조건 약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약을 먹지 않으면 절대로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약을 먹는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를 조금이라도 고민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또한 정신장애인이 '약'을 완전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약'의 선택권에 대해 한번이라도 생각해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것이다.
한 달 전쯤 간만에 뵌 회원님이 나에게 이렇게 얘기하셨다.
"선생님, 요즘 사진이 잘 안 찍혀요."
"걱정하지마세요. 저도 그런 걸요. 사진이 잘 찍힐 때도 있고요. 그지 같이 안 찍힐 때도 있어요."
"그런가요?"
"네. 선생님은 글도 잘 쓰시잖아요. 저는 선생님의 글이 참 부럽거든요."
"요즘엔 글도 잘 안 써져요."
"곧 다시 쓰실 수 있겠죠. 참 선생님 멋진 글 잘 모아두고 계세요?"
"아. 모은 건 아니고. 써놓은 글은 있어요."
"와~ 저도 한번 볼 수 있을까요?"
"네. 다음에 가져 올게요."
몇 주 후 나는 그의 '문집'을 받았고, 다른 책 사이에 끼여 며칠을 있다가, '읽어야한다'라는 강박관념에 몇 장을 읽다가 다시 다른 책 위로 자리만 옮겼다.
사실 그의 글 보다는 나에게 작은 고민이 움트고 있었다.
그건 바로, '이런 예술적 감각이 있는 분들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을까?'하는 고민이다.
이미 몇 년 전부터 해왔던 고민이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된 대안을 찾을 수 없다는 핑계로, 미뤄왔던 것이다.
이제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만 머리에 가득차오다가, 최근에 '그래!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만이라도 우선 정리하고. 차근차근 하나씩 해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반부터 시작해보자는 생각과 함께.
일단 2006년부터 진행해온 정신보건센터 사진수업을 시작으로, 하나씩 정리해봐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나의 사진으로, 그녀/그들이 담는 사진으로,
아직 정해지지 않은 나의 바램을,
그녀/그들이 이루고 싶은 꿈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
완전 미약하겠지만,
함께하고 싶다.
너무나 순박하고 진심을 주는 정신장애인분들과.
덧붙임
박김형준 님은 사진가, 예술교육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