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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대다그대

내 인생의 일본

어쓰

일본 영화에 빠져 살던 중학생 시절이 있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이누도 잇신, 츠마부키 사토시, 우에노 주리, 주로 긴 문장형의 제목, 살짝 필터를 끼운 듯 희뿌연 색감, 슬랩스틱과 말장난. 생각해보니 영화라는 매체를 좋아하게 된 계기도 일본 영화였다. 처음 일본으로 여행을 갔던 20대 초, 영화에서 봤던 골목길을 실제로 보고 살짝 감동했던 기억도.

 

가원

나를 각별히 아껴주던 외삼촌이 있었다. 젊은 시절 일본에서 회사를 다닌 그는 철저히 '친일파'를 자처했다. 한일전 스포츠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부친과 삼촌간에 설전이 벌어졌다. 삼촌은 집안에서 유카타를 입고 지낼 정도로 온몸으로 '친일'이었다. 온갖 진귀한 일제 생활/가전제품들로 채워진 그의 집은 어딘지 세련된 맛이 있었다. 삼촌은 늘 새로 들인 일제 물건들을 자랑했는데 그 중 제일은 손톱깎이였다.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굵은 손톱은 딸깍하는 순간 부드럽게 잘려나갔다. 손톱 파편은 사방으로 튀지 않고 손톱깎이 몸통으로 쏙 들어갔다. 태어나서 그토록 제 값 하는 물건을 처음 접했다. 곧 삼촌이 돌아가신지 이년이다. 일본과 대판 큰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요즘, 삼촌이 살아 계셨다면 우리는 또 어떤 설전을 벌이고 있으려나.

 

정록

나의 첫 해외 경험은 일본이었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반대 목소리가 한국에도 크게 울려 퍼질 무렵, 어떻게 연결이 되어서 일본의 반전평화단체 행사에 초청을 받아가게 되었다. 행사는 도쿄에서 있었지만, 오사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올라왔다. 특히 일본인들과 잘 통하는 영어로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다들 어려운 형편에 바쁜 시간을 쪼개서 이런 행사를 기획했다는 것도 감동적이었다. 약간은 무섭기도 한 요즘, 그 때 만났던 일본인들과 더 많이 만나고 더 목소리를 내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미류

엄마 칠순 여행을 가려고 삼남매가 작년부터 돈을 모았다. 목적지는 일찌감치 홋카이도로 정해두었다. 갑자기 불매운동의 바람이 불었다. 분위기를 살피면서도 여행지를 변경하지는 않기로 했다. 불매운동이 과하다거나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집단적으로 의견을 표명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사회운동에서도 종종 제안하는 캠페인이 아닌가. 그렇다고 적지 않은 수수료를 감수하면서 여행지를 바꿀 일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정도다. 그러나 결국, 동생들 내외와 조카까지, 모두 9명의 항공권을 취소했다. 일본에서 혐한 분위기가 심해진다는 소식이 발걸음을 무겁게 했던 것. 수수료가 ㅠㅠ 작년 3월, 류은숙 덕분에 홋카이도를 가본 기억이 그나마 아쉬움을 달래주고 있다.

 

세주

중고등학교 때 소니워크맨과 디스크맨이 너무 갖고 싶어 오랫동안 용돈을 모으고 그러고도 모자라서 부모님지원으로 그것들을 사서 음악을 들을 때 참 기분이 좋았던 기억도 있다. 특히 전자제품은 일제라고...ㅜㅜ 또 만화영화나 만화책도 일본산(?)이 좀 있었고.. (알고도 보고 모르고도 보고)

그런데 여행에서 일본은 다른 곳을 갈 때 잠시 환승하느라 밟았던 게 전부였던 것 같다. 아주 오래전에는 우리나라 항공사는 취항하지 않았지만 일본국적 항공사는 취항했던 곳이 몇몇 있었고, 나는 그때 처음으로 일본 땅, 공항 건물을 밟았던 것 같다. 십여 년 전쯤 유럽 가는 도중에 일본에서 스톱오버 하였고, 그렇게 하룻밤을 보냈다. 신용카드가 되지 않아 당황했던, 하지만 나쁘지 않았던 라멘집의 기억. 그러나 여행지를 고민할 때도 사실 일본은 항상 후순위였던 것 같다. 가까워서 인지 언제든 갈 수 있을 것 같고, 그렇지만 너무 비싼 여행비용이 든다는 생각이었던 듯.. 여러모로 가깝고도 멀다는 말이 진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작년 가을쯤에 일본 오사카 민의련(민주의료기관연합)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한 분의 가슴에 달린 뱃지가 인상적이었는데, 세월호 노란 리본 뱃지와 모양은 똑같았지만 흰색으로 채워져 있었다. 흰색 리본은 어떤 운동의 의미를 담은 것인지 여쭤보았더니 일본의 평화헌법 9조 개정에 반대하는 의미라고 하셨다. 그때 민의련 분들에게 받은 평화헌법 9조 열쇠고리는 여전히 내 USB에 달려있다. 만남 직후 오키나와 현 지사 선거에 미군기지를 반대하는 후보가 당선되어 민의련 전체가 축제 분위기라는 소식을 전해들었는데... 요즘 분위기를 떠올리면 마음이 무겁다. 얼마전 대용이 쓴 인권으로 읽는 세상 글에서 “평화를 자신의 책임으로 삼는 일본 사람들과 더 많이 연대해야 한다”는 말이 요즘 더 와 닿는다. 10월에 일본 나고야에 갈 예정인데, 그때 그런 연대의 만남이 더 많이 갖게 되길 기대하는 마음.

 

민선

동생의 유학과 결혼으로 일본에 다녀올 일이 수년 전부터 자주 있었지만, 별 생각 없던 일본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얼마 전 갑자기 스치면서 학원을 다닌 지 한 달 됐다. 누가 일본어는 배우기 쉽다고 그랬는가. 긴장했던 첫 수업, 글자인지 그림인지 모르겠는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를 접하며 왔던 멘붕이 살짝 사그라지니 오래 전 학교 다닐 때 포기했던 한자가 계속 튀어나와서 괴롭다. 언어는 무조건 외워야 하는 거였구나. ㅠ 그런 깨달음과 함께 초급레벨 수업에서 이미 뒤처졌지만 두 번째 달 등록을 했다. 그 사이 경제 ‘전쟁’이란 표현이 등장하며 치닫는 한일관계를 둘러싸고 감정적으로 부추기며 이용하는 양국 기득권들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는데, 지난 주말 도쿄에서 열렸다던 일본 시민들의 연대시위 소식은 무척이나 반가웠다. 이제 겨우 히라가나를 구분할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하지만, 한일 연대시위에서 한국어와 일본어로 한 목소리를 낼 때 같이 외칠 어떤 순간을 기다리고 기대하며 우선, 오늘 수업도 빼먹지 말아야겠다.

 

아해

만화를 보고, 애니메이션을 보고, 무술을 하고, 착한 사람들도 몇몇 안다. 물건도 사고, 음식도 먹고, 방문도 수차례. 이 정도면 그 나라를 좀 아는 정도는 되려나?

그런데, 내 마음 한켠에 뭔가 불편함이 켕기는 것은, 우리나라의 "역사"와 그 속에서 이 땅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정작 내가 잘 모르는구나 싶어서일 수도 있겠다.

동학 - 35년의 일제강점기 - 해방 - 한국전쟁... 겨우 100여 년 동안 나라 자체가 엎치락뒤치락 하는 동안, 항일세력과 부역세력, 사회주의세력과 자유주의세력, 독재세력과 민주세력 등등이 서로 섞이고 나뉘고 하면서 엄청 복잡해졌으니... ㅜ.ㅜ

지금은 하루하루 그 시절과 전혀 상관없이 살고 있지만, 친일인명사전에 실린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아, 아직 그 역사가 그대로 계속되고 있는 거구나 싶기도 하고.

만약 우리 역사 속에서 적어도, "내 한 몸의 평안과 욕망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고 팔아넘기고 고문하는 것은 나쁜 일이었다"는 작은 전제만 확실히 했던 경험만 있었어도, 나는 일본/친일파를 보면서 조금이나마 덜 불편할 수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