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미 '테러와의 전쟁‘ 제2 전진기지
무력갈등예방국제연대(Global Partnership for the Prevention of Armed Conflict) 동남아시아 지역협의회는 분쟁예방과 평화 확립을 위하여 2003년에 출범하였다. 이 동남아시아 협의회는 2003년에 작성한 지역 아젠다에서, 민다나오(필리핀에서 두 번째로 큰 섬) 내 미군 주둔이 지역 평화를 위협하는 요소로 보았다. 이 아젠다에 따르면, ‘테러와의 전쟁’은 국가폭력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고 있으며, 미군의 영향력을 확장하는 결과를 가지고 오고 있다. 특히, 미국은 필리핀에서 테러리스트 진지가 구축되어 있고 훈련이 진행된다는 혐의를 부여하며 필리핀을 테러와의 전쟁을 위한 제2 전진기지로 삼았는데, 이는 실제 ‘무슬림 공동체를 겨냥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지난 2월 무력갈등예방국제연대 동남아시아 지역협의회는, 민다나오 주둔 미군 철수와 필리군-미 합동군사훈련의 중단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끝나지 않은 미군 주둔, 계속되는 군사훈련
1898년부터 1946년까지 미국의 식민지배를 경험한 필리핀에게 있어 미군의 주둔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필리핀과 미국간의 전쟁은 1899년부터 1902년까지 3년간 지속되었고, 필리핀 민중들은 미국지배에 대해 필리핀 북쪽 평야지대에서부터 남쪽 무슬림 지역까지 광범위한 저항이 있어왔다.
하지만 미군은 저항세력을 강경하고 잔인하게 진압해왔다. 필리핀이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을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해군과 공군을 필리핀에 배치해 필리핀을 연속적으로 통치해왔다. 필리핀 의회가 1991년 미군기지를 더 이상 확장하지 않겠다는 안을 처리하였으나, 행정명령, 상호방위조약, 쌍방 조약 등을 통해 미군이 필리핀의 시설과 영토를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승인했기 때문에 미군의 군사훈련과 원조는 계속되었다. 종종 미국인은 방문 협약(Visiting Forces Agreement/ VFA)하에서 군사교관이나 군사고문의 지위를 가지고 필리핀에 등장해 왔다.
연합 군사훈련(RP-US)이 민다나오에서 몇 차례 진행됐다. 2004년 첫 번째 군사훈련(Blance Piston)은 2004년 7월 26일부터 8월 13일까지 북쪽 코타바토(Cotabato)의 카르멘(Carmen)에서, 두 번째는 2005년 4월 11일부터 5월 5일까지 바실란 (Basilan)에서, 세 번째는 2005년 11월 3일에서 12월 2일까지 잠보앙가 페닌술라(Zamboanga Peninsula)에서 열렸다. 올해 1월과 2월에는 카르멘에서 군사훈련(훈련명 Blance Piston 2)이, 2월과 3월에는 술루(Sulu,필리핀 술루 군도 북부의 군)에서 미군-필리핀군 합동 군사훈련(Balikatan)이 있었다.
학살의 기억, 폭력의 현재
모로 이슬람 해방 전선(MILF, Moro Islamic Liberation Front, 이하 ‘MILF'라고만 함) 기지가 있는 민다나오 북쪽 코타바토에도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데, 이는 주민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있다. 술루(Sulu) 섬 주민들도, 한 세기 전부터 민다나오에서 자행된 미군의 잔인성을 잊지 않고 있다. 20세기 초 미군은 바로 이 술루섬에서 모로 민중을 정복하기 위하여 주민들을 대량학살한 바 있다. 1906년 3월 뷰드 다후(Bud Dahu)에서 1600여명의 주민을 학살했고, 이후에도 1913년 부드 바가삭(Bud Bagasak), 부드 탈리파오(Bud Talipao) 등에서 학살을 저질렀다. 미군 레오나드 장군 지휘하에 진행된 뷰드 다후 대량학살 사건에 대해, 그 당시 신문은 ‘어떠한 부상자도 살아남지 못했다. 600여명이 인정사정없이 죽임을 당했다. 마을의 부녀자들과 아이들과 살아남지 못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지난 해 올롱가포시 수빅에서 4명의 미군이 필리핀 여성을 집단 강간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 이후 민다나오 주민들 사이에 강한 반미 감정이 일어나고 있다. 미군 주둔에 따른 사회적 비용 부담도 상당하다. 게다가 신문보도에 의하면, 지난 12월부터 술루의 미군 캠프 주변에 성매매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지역 연합 대표에 의하면, 미군들이 일부 10대 여성들을 성매매 여성으로 취급하고, 미군 종사 필리핀 사람들이 성매매 알선까지 하고 있다고 한다.
미군 군사훈련 정보, 공개조차 되지 않아
군사훈련 과정에서 발생한 민간인 사고의 경우, 모로 여성 사망 사건을 제외하고는 공식적으로 잡히지 않고 있다. 모로-기독인 연합(Moro-Christian Poeple's Alliance)에 따르면, 잠보앙가에서 필리핀 해군-미군 군사훈련 과정에서 발생한 오발탄 사건으로 19세의 모로인이 사망했다고 한다. 하지만 필리핀 시민사회는 군사훈련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한다. 시민사회가 알게 된 지난 1월과 2월의 미군 군사훈련에 대해서조차 아무런 정보가 공개되지 않고 있다. 2002년 1월부터 7월까지 진행된 미군 군사훈련도 지금까지 시민사회의 감시 밖에 있다
미군은 군사훈련이 필리핀 군 캠프 안에서만 진행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 군사훈련은 카르멘, 술루, 바실란 등 민다나오 분쟁지역이나 MILF 또는 모로민족해방전선(MNLF, Moro National Liberation Front, 이하 MILF라고만 함) 기지 안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시민사회단체에 따르면, 1970년대 준군사단체에 의해 대량학살이 자행된 카르멘은 엄밀한 의미에서 미군의 군사훈련이 용납될 수 있는 중립지역이 아니다. 술루 역시 지난 세기 내내 모로 무장 투쟁의 온상이었고, MNLF와 필리핀 정부가 평화 조약을 체결한 이후에도 무장 충돌이 계속 발생하고 있는 지역이다. 지난해 2월에는 무력충돌로 인해 5만여 명의 주민들이 강제추방을 당했고, 같은 해 11월에는 무슬림 가족이 학살을 당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MILF와 MNLF는 미군-필리핀 합동 군사훈련에 간섭하지 않고 충돌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으나, 미군-필리핀이 이들을 충돌로 유인하고 있다. 실제 MILF 주요기지가 있는 코타바토에서 아부사야푸 조직원들을 소탕한다는 명목으로 필리핀 정부가 공격을 단행한 바 있다. 사실 필리핀 정부는 미군 장교들과 함께, 위 MILF가 외국 테러조직을 훈련한다고 주장하면서 1997년 이래 계속된 정부-MILF 협상을 번복해왔다. 정부는 이처럼 MNLF 조직원들이 아부사야푸와 연계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이들을 ‘테러와의 전쟁’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필리핀, 제2의 아프간 우려
술루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은, 평화의 장애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미군은 미군의 역할이 필리핀 군대의 교관이나 고문에 국한된다고 주장하지만, 술루 시민사회단체는 미군이 직접 민다나오 무력 충돌에 개입하고 내정간섭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술루 시민사회단체는, 미국-필리핀 합동 군사훈련의 목적이, 테러리스트 아부사야프의 절멸이 아니라 MNLF의 절멸이며, 필리핀이 제2의 아프가니스탄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그들은 미국이 이야기하는 ‘테러와의 전쟁’이, 술루에서는 ‘미국의 테러를 위한 전쟁’이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민다나오의 시민사회단체 역시 점차 증가하는 미군의 개입을 평화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보고 있다. 여성단체 반타이 밀리칸(Bantay Milikan, 미군 감시)은 미군이 무력충돌을 유발하거나 개입하지 않도록 감시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세기 미국은 소위 ‘개화와 선교’라는 목표 아래 필리핀에서 제국주의 전쟁을 진행했다. “테러와의 전쟁”하에, 미군은 필리핀의 배후에 있다. 그러나 무력갈등예방국제연대가 지적했듯이 내정간섭과 군사적 행동은 많은 한계를 갖고 그 의도하는 바를 이룰 수는 없을 것이다. / 번역 : 박현주
덧붙임
* 저자 디오메데스 에비오타 주니어(Diomedes Eviota Jr.)는 남반구 인민들의 연대를 위한 민간단체, International Dialogue(IID) 소속 활동가입니다. IID는 1997년부터 2003년까지 네 차례나 분쟁이 발생했던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섬에서 평화만들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