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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2] 군사·안보주의에 맞선 평화적 행동

우리의 평화는 우리가 지킨다! 평화적 생존권을 직접행동으로!

대북 선제공격 훈련으로 알려진 한미연합전시증원훈련(아래 RSOI)이 이달 25일부터 한반도 전역에서 벌어진다. 한편에서는 2.13 6자 회담 합의를 추진하면서 북핵의 불능화, 폐기를 추진하고, 그를 통해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겠다는 흐름에 명백히 역행하는 전쟁연습이 대대적으로 펼쳐지는 것이다. 이 전쟁연습은 한반도에서의 전면적인 전쟁을 가상하고 있다. 한국민이나 한국 정부의 정책결정과는 아무 상관없이 미국의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서 진행될 전쟁에 대한 예행연습이다.

우리는 이런 대규모 전쟁연습이 갖는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평화적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우리의 행동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군사전략에서 비롯되는 전쟁연습, 군사훈련은 거의 1년 내내 진행된다. 성역으로 남아 있는 안보문제에 대해 어떻게 ‘안보독점주의’를 깨고, 평화적 생존권을 지킬 수 있을까.

지난해 3월 평통사와 범민련남측본부는 만리포 해변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북공격연습인 RSOI&FE의 즉각 중단과 증강된 미군 병력 및 장비의 즉각 철수를 촉구했다. <출처; 평통사>

▲ 지난해 3월 평통사와 범민련남측본부는 만리포 해변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북공격연습인 RSOI&FE의 즉각 중단과 증강된 미군 병력 및 장비의 즉각 철수를 촉구했다. <출처; 평통사>



전쟁을 거부하는 ‘평화적 생존권’

전쟁은 인간의 생존 그 자체를 부정하며 대규모 환경파괴와 재난을 초래한다. 특히 전쟁에서 여성과 어린이·청소년 등 사회적 약자·소수자가 특별한 희생을 강요받는다는 점에서 평화는 모든 인권 의 바탕이 된다. 따라서 평화적 생존권은 ‘평화롭게 살 권리’로 모든 전쟁과 공포로부터 벗어나서 생존할 권리를 말한다. 대내적으로는 타국에 대한 무력 공격에 가담하지 않도록 국가에 요구할 권리이며 대외적으로는 타국에 대해 자국이 전쟁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요구할 권리를 포함한다. 즉 한미 양국의 민중들이 미국 정부에 의해 자신들이 전쟁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양국에 요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RSOI와 같은 군사훈련은 전쟁을 예방한다는 핑계로 열리지만 오히려 군사훈련은 인접국의 반발을 불러와 전쟁의 위험은 더욱 고조된다. 이런 이유로 평화적 생존권의 목록에는 군사훈련을 거부할 권리가 포함되어야 한다. 또한 평화적 생존권은 국가의 평화정책에 의한 반사적 이익으로 향유되는 소극적인 권리로 그칠 수 없다. 오히려 평화주의를 배반하는 국가에 대해 평화주의의 준수를 요구하고 관철시킬 수 있는 적극적인 권리가 되어야 한다.

헌법은 평화주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평화적 생존권을 명문으로 인정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아래 헌재)도 최근 평화적 생존권이라는 개념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헌재는 지난해 2월 ‘대한민국과 미합중국간의 미합중국군대의 서울지역으로부터의 이전에 관한 협정 등’에 대한 결정(2005헌마268)에서 “오늘날 전쟁과 테러 혹은 무력행위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기본 전제”라며 “달리 이를 보호하는 명시적 기본권이 없다면 헌법 제10조와 제37조 제1항으로부터 평화적 생존권이라는 이름으로 이를 보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그 기본 내용은 침략전쟁에 강제되지 않고 평화적 생존을 할 수 있도록 국가에 요청할 수 있는 권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헌재는 “이 사건 조약들은 미군기지의 이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고, 그 내용만으로는 장차 우리나라가 침략적 전쟁에 휩싸이게 된다는 것을 인정하기 곤란하다”면서 합헌을 결정했다.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군사·안보

평화적 생존권이 권리로 자리매김 되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지만 전쟁훈련과 같은 군사·안보 영역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를 지적하고 해소하는 일은 쉽지 않다. 전략적 유연성과 같은 중요한 문제가 양국 행정부의 재량으로 합의되었지만 다른 ‘국가적’인 사안에서와 마찬가지로 입법부·사법부 등 기존 견제 권력은 무력하다. 지난 5월 헌재는 전략적 유연성 합의에 대한 위헌소송에 대해 “양국의 외교관계 당국자간의 동맹국에 대한 양해 내지 존중의 정치적 선언의 의미를 가지는 데 불과”하다며 각하했다. 헌재는 “고도의 정치ㆍ외교적인 행위로 헌법재판소의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는 것이거나 또는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하여 청구인들의 국민투표권, 납세자의 권리 등 기본권이 침해되는 문제가 발생된다고도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국회 또한 전략적 유연성의 의미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용산미군기지이전협정에 손을 들어줬다.

한편 한미 군사관계의 중요한 부분들은 한미상호방위조약 등 포괄적인 조약에서 언급되지 않고 대부분 상설 협의기구를 통해 결정된다는 점도 대응을 어렵게 한다. 양국 국방장관이 참여해 방위비 분담 등 현안을 논의하는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 한미 양국의 합참의장을 대표로 하는 군사기구인 한미군사위원회의(MCM), 2003년 첫 회의를 열었고 용산기지·미2사단 이전, 전략적유연성 등을 협의한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FOTA) 등이 있다. 따라서 현행 제도상 조약에 대한 비준권을 가지고 있을 뿐인 국회는 군사조약의 체결에만 관여하고 실질적으로 국민의 부담을 초래하는 세부적 합의에 관해서는 행정부를 통제할 길이 없다.

또한 국가기밀이라는 이유로 결정 과정이 밀실에서 이뤄지고 그 내용이 사전에는 물론 사후에도 알려지지 않는다. 전쟁훈련의 정당성도 전쟁대비라는 모호한 국익을 핑계로 하고 있어 다른 생각을 허락하지 않는다. 정당성을 따지기 위해 필수적인 훈련 정보도 국방 관료를 비롯한 소수가 독점한다. 군사·안보 정책은 외교안보권력과 군부에 의해 독점되고, 그 결과 빚어지는 기본권의 침해는 고스란히 민중의 몫으로 전가되는 것이 현재의 구조이다.

군사·안보 영역에서는 권리 주체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도 인권운동의 대응을 어렵게 만든다. 평택 전쟁기지 확장저지 투쟁의 경우 삶의 터전을 지키려고 나선 대추리·도두리 주민들이 권리 침해 당사자의 상징이 되었다. 이들의 전쟁기지의 확장 저지 투쟁은 단순히 강제퇴거에 반대하는 투쟁이 아니라 민중들의 평화적 생존권을 지키는 정치적 투쟁으로 인식될 수 있었다. 하지만 한반도와 동북아 전체 민중들의 평화적 생존과 밀접하게 연관된 전쟁훈련은 ‘모두의 문제’인만큼 ‘그 누구의 문제도 아닌 것’으로 여겨지기 쉽다. 전쟁훈련을 실행하는 장소 또한 훈련장 인근 주민들을 별도로 한다면 생활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훈련 자체를 체감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지난 50여 년 동안 지속된 한미군사동맹이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어, 한미연합 전쟁훈련을 그치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 묻는 회의적인 시선도 있다. ‘적’과 ‘위협’을 판단하는 권한은 권력자들의 특권이며 이들은 일상적인 ‘적’과 ‘위협’을 상정하는 안보논리를 반복적으로 주입시킨다. 한편, 의무만 있을 뿐인 군사·안보 영역에서 권리를 주장한다는 것은 커다란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군사훈련에 대한 불복종 저항의 가능성

군사안보정책은 민중들의 삶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는 중대한 국가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법과 제도적 영역에서 민중적 통제가 불가능하다. 군사안보권력들이 철저히 장악하고 있는 특권의 철옹성에 균열을 내기 위해선 저항권의 행사, 불복종 운동이 불가피하게 요청된다.

14일 열린 '미국의 군사훈련 RSOI 대 평화적 생존권' 토론회 <출처; 통일뉴스>

▲ 14일 열린 '미국의 군사훈련 RSOI 대 평화적 생존권' 토론회 <출처; 통일뉴스>



이런 점에 대해서 13일 열린 ‘미국의 군사훈련 RSOI 대 평화적 생존권’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이에 대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인권단체연석회의 김정아 활동가는 안보독점주의를 깨기 위한 방안으로 “군사안보정책에 대한 권력 감시를 통해 현재성을 획득하고 침해되는 권리 영역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군사안보정책이 전문적인 용어와 내용으로 서술되므로 이에 대한 민중의 접근을 차단한다는 점이 고민되어야 하고, 이에 따라 민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대중적인 접근을 할 수 있도록 할 것을 제시했다. 그리고 국제평화주의에 입각하여 “전략적 유연성에 따른 한미군사동맹의 변화는 전 세계의 평화라는 틀 속에서 평화적 생존권을 구체화해야”하며,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가치를 평화운동과 결합할 수 있도록 사업을 기획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렇게 보편적 양심, 인간성에 호소하는 방식을 통해서 “장기적이며 치밀한 불복종 직접행동”이 준비되고 나아가 “삶으로 운동을 실천하는 모습”으로 이어져야 함을 강조했다.

이날 토론에서는 시민들이 스스로 주체가 되어 안보를 말하는 시민행동 프로그램을 기획하자는 제안이 있었다.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고유경 사무국장은 자신의 시각으로 군사훈련이나 국가안보정책에 대해서 스스로 판단하고 말하도록 하는 것은 성역화된 안보문제를 허무는 일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제안일 것이다. 이를 통해 국가안보 문제에 대한 시민적인 각성을 이루어내고, 관심을 촉발할 수 있을 것이고, 시민들이 평화적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에 스스로 나서도록 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고 사무국장은 이와 함께 한반도를 둘러싼 평화정세에 대해서 정리하여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는 평화선언을 적극적으로 조직하는 일로부터 직접행동을 통한 불복종 저항을 실현하자고도 제안했다. 이런 점에서 지난해 RSOI를 반대하며 사회단체 회원들이 만리포 해수욕장에서 상륙훈련 중이던 탱크를 막아선 투쟁이나 2003년 학생운동단체에서 스트라이커 부대 훈련장에 진입하였던 점은 이런 전쟁훈련에 대한 불복종 저항운동의 한 참고할 만한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평택 미군기지 확장을 저지하기 위한 투쟁은 평화적 생존권을 사회적인 화두로 만들고, 나아가 다양한 사회구성원이 이 투쟁의 의미를 이해하고, 참여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평택 투쟁을 통해서 형성된 평화적 생존권에 대한 불복종운동의 가능성을 한 단계 높여서 군사안보정책에 대한 민중적 통제, 군사훈련 반대, 미국과의 불평등하고 굴욕적인 각종 군사협정의 폐기, 군축을 통한 전쟁의 위험성 제거 등 전면적인 반전평화운동으로 발전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