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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1] 한반도 전역을 전쟁훈련장으로 만드는 RSOI

남북 화해와 한반도 평화에 역행하는 대북선제공격 훈련

“(한미)연합사령관은 평양을 직접 압박하고 고립시키기 위하여 상륙작전을 결정하였으며, 이를 위해 상륙이동 부대를 3월 30일 09시에 ○○(북 서해안 지역) 일대에 상륙작전을 실시하기 위해 최초 지시를 하달하였습니다.”

지난해 3월 <오마이뉴스>는 충남 태안군 만리포 해수욕장에서 벌어진 상륙훈련에서 국방부 관계자가 한미 양국군 인사들에게 브리핑한 내용을 위와 같이 소개했다. 언론에만 공개된 이날 훈련장에는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아래 평통사)과 범민련 남측본부 활동가 20여명이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역행하는 RSOI & FE 즉각 중단하라’는 현수막을 펼쳐들고 기습적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수송정에 실려 육지로 진입하는 탱크를 막아서기도 했다.

이날 투쟁에 대해 일부 언론과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일부 시민단체와 학생들이 ‘방어’훈련을 ‘북침’훈련이라고 주장하면서 군사훈련장에 침입해 심지어 장갑차 위에까지 올라가는 위험천만한 시위가 매년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기습 기자회견 당일에는 문제삼지 않았던 국방부는 이날 기자회견 참가자들을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고발했고 검찰은 이 가운데 8명을 기소했다.

선제공격계획 훈련하는 RSOI

대표적인 대북 선제공격 훈련으로 알려진 한미연합전시증원훈련(아래 RSOI)이 올해도 한국 전역에서 벌어진다. 지난 6일 한미연합군사령부(아래 연합사)는 올해 RSOI를 이달 25일부터 31일까지 한국 전역에서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훈련에는 순수 증원병력 6천명과 주한미군을 포함해 총 2만9천여명의 미군 병력이 참가한다. 또 일본에 임시 배치된 핵추진 항공모함인 로널드 레이건호와 지난 1월 군산에 배치된 F-117 스텔스 전폭기(일명 나이트호크) 1개 대대도 참가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순수 증원병력은 지난해 3천명에서 올해는 6천명으로 2배 증가했다.

RSOI에는  F-117 스텔스 전폭기도 동원될 예정이다. <출처; 평통사>

▲ RSOI에는 F-117 스텔스 전폭기도 동원될 예정이다. <출처; 평통사>



RSOI는 한반도 유사시 미 증원전력의 한반도 군사적 대응 절차를 익히는 훈련으로 ‘수용(Reception), 대기(Staging), 전방이동(Onward Movement) 및 통합(Integration)’ 절차와 이를 지원하는 한국군 동원 등의 훈련으로 이뤄진다. RSOI는 대표적인 대북 핵공격 연습인 팀스피리트훈련이 폐지된 1994년부터 시작되어 이듬해인 1995년부터는 한미연합훈련으로 실시되었다. 2002년부터는 야외기동훈련인 독수리훈련과 통합 실시되고 있다. 독수리훈련은 팀스피리트훈련을 대체하는 방안으로 1995년부터 사단급, 1997년부터는 군단급 야외기동훈련(FTX)을 추가했다.

2003년 이후 RSOI에는 핵항공모함, 핵잠수함, 이지스 구축함, 스트라이커 부대 등 미국의 군사력을 보여주는 각종 최첨단 무기가 동원됐다. 또 오키나와의 미 해병대와 미국 본토 병력도 동원되고 있다. 지난해 벨 주한미군사령관은 올해 RSOI에 사상 처음으로 중무장한 미증원군 1개 여단을 참가시키는 등 최대 규모의 미군 전력을 투입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연합사는 이번 훈련을 북측에도 통보했으며 연례적인 군사대비태세 연습으로, 도발적인 훈련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국방부도 매년 이 훈련이 북침 훈련이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다. 하지만 RSOI는 대북 선제공격 개념을 담은 연합사의 ‘작전계획(작계) 5027’에 따라 벌이는 대규모 군사훈련이다. <통일뉴스> 정명진 기자에 따르면 지난해 만리포 해수욕장에서 국방부 관계자는 현장브리핑을 통해 “오늘 실시되는 연습은 ‘작계 5027-04’ 3단계 2부에 의해 적용된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작전계획으로는 북의 공격능력과 지휘통제체계를 정밀타격하는 ‘작계5026’, 북이 천재지변이나 내부 붕괴에 이르면 대응하는 ‘개념계획 5029’ 등이 있는데, ‘작계5027’은 상륙작전을 포함한 전면전 계획이다.

1990년 이전까지만 해도 ‘작계5027’은 북의 남침에 대비한 방어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1단계로 북이 전면 남침하면 2단계로 휴전선 남쪽 20-30km에서 한국군이 저지하고 3단계로 미군이 증원군을 보내 개성 정도까지 반격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1991년 1차 이라크전쟁을 평가하면서 전쟁에서는 승리했지만 후세인 정권을 제거하지 않아 건재한 것을 큰 실수로 평가했다. 이에 따라 1998년 작성된 ‘작계5027-98’은 한미연합군을 북진시켜 개전 한두 달 만에 평양을 함락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 증원 병력도 1990년대 초반 48만명에서 중반에는 63만명으로 늘어났고, 2000년 작성된 ‘작계5027-00’에서는 전쟁이 일어날 경우 90일 이내에 병력 69만명, 함정 160척, 항공기 1600여대를 투입하는 것으로 확대됐다. 2004년 ‘작계5027-04’는 △북한군 격멸 △북한정권 제거 △한반도 통일여건 조성 등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일 미 대사관 앞에서 열린 RSOI 규탄 기자회견 <출처; 평통사>

▲ 지난 7일 미 대사관 앞에서 열린 RSOI 규탄 기자회견 <출처; 평통사>



첨단 무기로 정밀 타격…‘5026’이 ‘5027’ 부른다

‘작계5027’은 ‘작계5026’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작계5026’은 2005년 10월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의 폭로로 일부가 드러났다. 권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한미 연합사의 작전기획을 위한 대한민국 국방장관과 미합중국 국방장관의 군사위원회에 대한 전략기획지침’을 공개했다. 2002년 12월 이준 한국 국방장관과 럼스펠드 미국 국방장관이 서명한 이 문서에 따르면 양국은 북한의 화생방 능력과 지휘·통제체제를 파괴하거나 무력화시키는 ‘작계5026’을 2003년 7월까지 완성하기로 했다. 권 의원에 따르면 2003년 4월 미래한미동맹(FOTA) 1차 회의에서 미국 측은 무인정찰기 프레데터 등 첨단 무기 도입계획을 밝히면서 “새로운 작계(5026)가 완성되면 전통적인 전쟁수행에 새로운 전쟁수행능력이 추가되어 엄청난 능력을 발휘할 것”, “정밀타격에 있어 가공할 능력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언급했다. 권 의원은 이 폭로로 기무사의 소환장을 받기도 했다.

한미 국방장관이 ‘작계5026’ 작성을 합의한 시기는 김대중 정권 말기에서 노무현 정권 초기로 2002년 10월 이른바 2차 북핵위기가 시작되고 이듬해 3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북에 대한 ‘폭격설’이 제기되던 때다. ‘작계5026’은 ‘북한의 공격을 신속하게 격퇴하기 위해’라는 단서를 달고 있지만, 어떤 나라도 ‘공세’ 개념을 공개적으로 표방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선제공격 계획으로 볼 수 있다. 권 의원은 “‘작계5026’으로 정밀 타격을 실시하고, 북한이 반격하면 전면전 계획인 ‘작계5027’을 적용해 북한 정권을 제거하며 이후 ‘개념계획 5029’로 북한 지역을 점령하는 것이 한미연합사 작계의 순환고리”라고 분석했다.

‘위기’는 미국이 일방적으로 판단

RSOI의 문제는 단순히 공격계획의 하나로 ‘미 증원전력의 전투력 이행’을 훈련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위기’를 판단하고 ‘증원’을 승인하는 것이 한미 연합사령관과 미 국가 통수기구라는 점은 더 큰 문제다. 게다가 지난해 초 ‘전략적 유연성’ 합의에 따라 미국은 한국 정부의 개입과 통제 밖에서 더욱 자유롭게 미군 병력과 장비를 한반도 내외로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의 악순환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연합사가 RSOI 계획을 발표하자 지난 10일 북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조선반도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파탄시키고 북남관계 개선의 문을 도로 닫아 매며 대결과 전쟁의 길로 계속 줄달음치기 위한 고의적이며 계획적인 음모”라고 반발하면서 “북침전쟁연습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대화와 전쟁연습은 절대로 양립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2.13 합의 이후 봄을 맞고 있는 남북 관계에 RSOI 문제가 걸림돌로 떠오른 것이다. 북은 지난해에도 RSOI 중단을 주장했으며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제18차 장관급회담을 3월에서 4월로 연기한 바 있다.

RSOI가 모처럼 찾아온 남북 화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출처; 평통사>

▲ RSOI가 모처럼 찾아온 남북 화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출처; 평통사>



이런 상황은 이미 예측됐다. ‘2.13 합의’는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조치’에서 “참가국들은 상호신뢰를 증진시키기 위한 긍정적인 조치를 취하고 동북아에서의 지속적인 평화와 안정을 위한 공동노력을 할 것을 재확인”한 바 있다. 6자회담 러시아 측 수석대표인 로슈코프 외무차관도 “(군사훈련 계획)이 회담 분위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한국과 미국은 그들의 계획을 조정하길 바란다”고 주문한 바 있다. RSOI의 전신인 팀스피리트훈련이 1992년 중단되었고 1994년에는 폐기된 역사도 있지만 미국은 RSOI를 강행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민중의 통제 벗어난 RSOI

한국 정부는 RSOI를 방어훈련이라 강변하고 있다. 하지만 ‘국익’을 내세워 세부 내용은 공개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RSOI를 비판하는 이들을 탄압하고 있다. 통일연대는 오는 25일 서울 용산미군기지 앞에서 RSOI 중단요구 집회를 열겠다며 집회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행사 주최단체인 통일연대가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하급단체이기에 한미FTA반대 집회로 변질될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금지를 통고했다. 게다가 지난해 만리포 해수욕장 기자회견 사건으로 기소된 8명의 활동가들을 상대로 한 처벌 과정도 착착 진행되고 있다. 이들은 지난 1월 19일 열린 첫번째 재판에서 “만리포 훈련은 헌법 5조의 침략전쟁부인 원칙, 6.15남북공동선언 등을 비롯해, 주한미군의 임무를 소극적 방어에 주력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위배된다”며 ‘위법한 공무집행을 방어하는 것은 정당방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방·외교와 관련된 사안에 대해 ‘고도의 정치적 결단을 요하는 문제’라며 사법심사를 회피해온 사법부가 한미군사훈련의 위법성을 따질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헌법 제5조 1항은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정부는 이라크 파병,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 평택 전쟁기지 확장 등을 감행함으로써 평화주의 정신을 문구로라도 가지고 있는 헌법을 스스로 훼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국회나 사법부를 통해 어떠한 통제도 받지 않고 있다. 정부와 국회, 사법부의 이해가 결국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권력의 이해가 평화를 지향하는 민중들의 이해와 다르다면, 한반도 전역을 전쟁훈련장으로 만드는 RSOI를 저지할 수 있는 힘은 민중들의 저항으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