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절정 5월, 18일에서 24일까지 1주일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인권영화제. 꾸준한 호흡으로 달려온 12살의 인권영화제(하지만 올해 11회 인권영화제)가 올해는 어떤 모습으로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올해 인권영화제는 특정 주제를 잡았던 예년의 방식에서 살짝 벗어나, 인권이라는 그릇 안에 다양하게 담을 수 있는 26편의 작품을 선정했다. 국내작과 해외작 각각 13편은 이주노동자, 장애인, 성소수자와 자본의 독식에 맞선 세계 민중들의 투쟁 현장까지 폭넓은 주제를 아우르고 있다. 특히 올해는 영화 상영이라는 영화제 본연의 취지에 최대한 집중하고자 부대행사 대신, 소수자와 반전평화에 관련된 영화를 집중적으로 상영하는 날을 정했다. 영화제 3일째인 5월 20일은 ‘소수자의 날’, 마지막 날인 24일은 ‘반전평화의 날’로 정해, ‘소수자의 날’에는 소수자를 조명한 영화 <고스트> <동백아가씨> <우리학교> <레오 N이라는 사람> <사랑의 정치>를, ‘반전평화의 날’에는 평화를 향한 외침을 담은 <조각난 이라크> <내 사랑 블레인> <땅, 비, 불: 와하까 보고서> <전쟁 기지 필요 없다> <황새울 방송국 들소리>를 하루 종일 상영한다. 영화 상영뿐만 아니라 성전환자 운동이나 팔레스타인 평화운동, 그리고 평택 전쟁기지 반대운동 등 해당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들과의 시간도 마련되어 있다. 활동가들과의 대화를 통해 연대를 모색하고 고민을 공유하는 시간을 만들려는 취지로 기획된 이 날에는 알짜배기 영화들이 즐비하다.
‘소수자의 날’에 상영되는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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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고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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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사랑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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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우리학교>
‘반전평화의 날’ 상영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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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조각난 이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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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황새울 방송국 들소리>
수 십년을 미군기지 반대 운동을 하며 살아온 일본 오키나와 지역주민들의 다양한 반기지 운동(해상시위, 해안집회, 기지찬반투표 등)을 통해 미군기지를 비판하는 <전쟁기지 필요 없다>와 2006년 멕시코의 와하까 지역 교사들이 주축이 되어 임금 인상과 교과서 무료 배급 등 공공성 실현을 요구하며 지역 자치 투쟁을 이끈 사례를 다룬 <땅, 비, 불: 와하까 보고서> 역시 빠뜨릴 수 없는 작품들이다.
무료상영 원칙과 장애인접근권에 대한 인권영화제의 생각
일년 내내 계속되는 각종 영화제의 홍수 속에서 인권영화제는 묵묵히 제 길을 걸어왔다. 무료상영 원칙과 장애인접근권을 위한 노력을 통해 인권영화제는 많은 영화제 속에서도 고유한 발자취를 남겨왔다. 누구나 돈에 구애받지 않고 인권을 접하고, 문화적인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무료상영 원칙이라는 초심을 지켜왔던 것. 이는 문화조차 자본에 의해 배타적인 상품이 되어 가는 시대에 누구나 조건 없이 영화라는 방식으로 인권을 접할 수 있어야한다는 생각에 ‘소외된 이들’에게 문턱을 낮추고자 하는 시도이다. 무료상영의 원칙을 통해 노숙인들이, 기초생활수급권자들이, 가난한 청소년·노인들이, 빈곤으로 인해 인간답게 살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인권/영화를 접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또한 장애인들도 인권과 인권영화를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장애인접근권을 위한 조건을 갖추기 위해 나름대로 힘써왔다. 국내작품에도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자막을 제공하고, 시각장애인을 위해서 더빙한 작품도 상영하고 있다. 극장 곳곳에는 휠체어 장애인을 위한 경사로도 설치되어 있다. 물론 이것만으로 장애인접근권을 실현했다고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또한 인권영화제 역시 장애인접근권을 생색내기로만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되돌아보고 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이러한 시도가 더 큰 울림이 되어 전사회적으로 장애인들의 권리가 확보되는 데 인권영화제가 작은 힘을 보탤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매년 인권영화제의 내용은 달라지지만, 큰 틀은 변함이 없다. 올해도 역시 이런저런 노력들을 통해 관객 모두와 함께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관객들이 풍부한 색깔로 인권영화제를 채워주기를 기대하며, 영화제는 오늘도 밤새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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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11회 인권영화제에 대해 좀더 알고 싶다면, http://sarangbang.jinbo.net/hrfilm 로 가서 확인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