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한 진보운동의 새로운 기획, ‘사회운동포럼’
이러한 자본과 정부의 총체적인 공세를 운동진영은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지 못할뿐더러 과거의 운동구도나 사고방식에 매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분절화 되어 있다. 20년간 자유주의 세력이 주도한 절차적 민주주의는 신자유주의에서 앞으로 나갈 수 없기에 우리는 민중의 직접행동에 기반을 둔 다른 민주주의를 꿈꾸어야 한다.
인권운동사랑방은 평택투쟁을 하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저지투쟁을 하면서 인권운동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각 부분의 운동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현실에 부딪치면서 다른 운동과의 소통과 연대만이 이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문제의식으로 운동사회에 ‘새로운 운동의 흐름’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운동의 새로운 흐름을 통해 인권운동의 보편적 가치를 다른 운동으로 확산시키는 것이면서 동시에 미처 알지 못한 다른 운동의 가치를 인권운동 안에 녹여내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현실을 바꾸는 것은 비슷한 위기의식과 문제의식을 가진 운동가들과 개인들이 모여 소통하고 연대할 때만 가능하다는 생각으로 ‘사회운동포럼’을 제안했다.
사회운동포럼은 지난 3월에 문화연대,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민주노총서울본부, 사회진보연대, 인권운동사랑방 5개 단체의 공동제안으로 현실에서 꿈틀대기 시작했다. 4월 두 번째 간담회에 모인 성원들은 사회운동포럼의 위상을 △사회운동의 연대성 복원을 위한 소통과 교류의 네트워크 △기존 운동의 관성과 자기 운동의 담장을 넘어서는 사회운동으로서의 공동 전망과 실천과제를 모색하는 장 △생활/투쟁의 거점으로서의 '지역', 기층운동과의 결합을 모색하는 장으로 설정했다. 또한 운동간 횡단대화가 가능하도록 다양한 운동단위들을 가로지르는 방식으로 기획단을 구성했다. ‘사회운동포럼 준비위’를 5월에 만들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러한 문제의식 때문인지 ‘사회운동포럼’은 ‘소통/연대/변혁’이라는 기치를 앞에 걸고 있다.
또 하나의 포럼이 아닌 또다른 포럼의 모습
사회운동포럼은 운동진영이 처한 위기를 넘기 위해서는 과거 방식의 소통, 과거 방식의 연대, 과거 방식의 사고에서 뛰쳐나오자고 주장한다. 그러지 않으면 과거부터 이어온 많은 포럼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사회운동포럼은 조직체계를 표현할 때도 과거의 수직적인 계단형 도표를 그리고 있지 않다. 수평적 연대와 소통을 강조하듯 원들의 집합으로 준비체계를 그리고 있다. 위계적인 틀이 아닌 참가하는 단위나 개인의 자율적 소통을 보장하는 개방적인 틀은 '또다른' 포럼의 모습이었다.
과거 넘기 하나, 소통 과정으로서 사회운동포럼 준비
사회운동포럼은 준비과정이 단지 ‘행사만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준비과정 자체가 소통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열쇠말을 중심으로 워크숍을 함께 준비했다. 공통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열쇠말을 만들었다. △지역 △사회공공성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결합 △새로운 활동양식 네 가지 열쇠말을 준비하면서 여러 사회운동단체가 고민을 나누고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 자체가 소통의 과정이었다. 소통은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실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러하기에 소통과 연대를 통한 변혁이 변혁의 밑그림을 제대로 그릴 수 있는 것이다. 서로 다른 운동이어서 생기는 사고, 언어, 활동방식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기에 소통은 ‘몸만 대주거나’, ‘이름만 거는’ 연대를 넘어서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과거 넘기 둘, 중심이 아닌 운동들의 만남과 엮임
과거 운동조직에 대한 상은 노동운동과 당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중식 운동이 전체 운동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지금처럼 노동운동의 위기가 닥치거나 중앙의 지침이 없으면 운동은 무력한 모습을 보이며 돌파구를 찾지 못하였다. 이러한 현실은 진보운동의 새로운 흐름은 기성의 조직만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래서 사회운동포럼은 분야별로 각각의 전망을 만들며 자생적으로 커온 운동의 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단위들의 만남과 엮임을 주선하고 있다. 생태, 여성, 장애, 지역, 주거, 평화 운동 등 크지는 않지만 꾸준히 해왔던 단위들이 시민강좌나 열쇠말 워크숍을 통해 만났다. 또한 만남은 진보전략과제를 논의할 때, 새로운 진보운동의 담론을 만들 수 있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 서로의 차이를 표준화하거나 무효화하지 않는 엮임은 함께 만들 새로운 사회의 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각기 다른 운동들이 만남과 엮임으로 서로의 운동에 침투할 때 진보운동은 더욱 다양해지고 풍부해질 것이다.
과거 넘기 셋, 생각의 틀을 바꾸고 운동체질을 바꾸는 과정
높은 산을 넘으려면 산세(지형)도 알고 날씨도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산을 넘는 사람의 체력이다. 체력을 만들려면 운동도 해야 하지만 체질도 바꿔야 기나긴 산행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운동의 위기라는 큰 산을 넘으려면 운동진영 ‘안’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잘못된 체질을 바꾸어야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사회운동 포럼은 우리 운동 안에서 곪고 있는 문제들을 끄집어내고 고칠 수 있는 방법들을 함께 머리를 맞대어 모색하고 있다. 특히 새로운 활동양식이라는 기획 속에서 우리 안에 제대로 자리 잡고 있지 못했던 민주주의, 겉으로 보이는 진보성을 가늠하는 잣대로만 사용되는 도구적 여성주의,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며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고 몸을 움직이기에 부족한 대중성(민중성)을 조직구조· 연대방식· 집회· 운동언어· 교육 등에 비추어 어떻게 바꾸어낼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토론하고 고민하였다.
또한 대안사회에 대한 전략과제를 만드는 일도 여러 사람의 머리를 거쳐 각 운동의 고민을 담아내는 과정이었다. 서로 다른 사고의 틀을 바탕으로 다른 언어로 대화하며 전략과제를 수립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사고의 다층화는 자본과의 단절을 이루는 대안사회의 상상력을 높일 것이다. 그래서 사회운동포럼 총회에서 공유하며 만들어질 ‘선언문과 공동행동전략과제’는 아직 진행형이지만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다.
빈 것을 채우는 긴 여정의 시작일 뿐
공허한 이론을 떠들기보다 현실에 기반을 둔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오가는 과정, 스스로 변화하려는 반성의 이야기들, 주류운동에 갇혀 소통하지 못했던 과거의 모습이 아닌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려는 노력 등은 사회운동포럼을 준비하는 3개월간의 모습이었다.
이러한 사회운동포럼을 준비하는 과정의 ‘다름’은 우리에게 새로운 흐름이 당장 만들어질 것 같은 기대를 갖게 한다. 물론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첫발을 내디딘 것만으로도 새로운 흐름의 형성 가능성은 어느 정도 있다.
그러나 빈 곳은 여전히 많다.
제대로 된 소통은 영역별로 다른 운동들이 서로의 차이를 알고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게 만들며 그 차이에서 배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 소통은 서로의 영역을 서로에게 보여준 것에 지나지 않으며 다른 언어에 익숙해진 정도이다. 운동 간의 횡단 대화는 서로의 보편가치를 자기 운동 안에 사업적으로만, 관념적 구호로만 접목시키는 것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준비과정이 힘들 때도 있었고 많은 고민을 던져 주었다.
재원마련 또한 자본으로부터 독립해야 하는 것이자, 운동주체를 엮어가는 것이어야 한다는 지향으로 전개한 풀씨(조직위원)조직은 목표치에서 한참 모자란다. 아마도 그 이유는 아직도 사회운동포럼이 벌인 소통이 운동사회 내에서 큰 동심원을 그리지 못하고 작은 파문 정도를 그리고 있는 현재의 모습 때문일 것이다.
또한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진보운동의 담론은 이제 시작됐을 뿐이며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를 거부하는 새로운 운동주체들이 모이는 계기는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을 뿐이다. 그러나 참여한 많은 사람들이 느끼듯이 여기가 우리가 뛰어내려야 하는 지점이다.
사회운동포럼이 끝나는 9월 2일부터 빈 것을 채우는 여행을 시작할 것이기에 사회운동포럼은 ‘새로운’ 가능성을 지닌 ‘열린(FORUM)’공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