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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 사회운동포럼이 낳은 새로운 사회운동의 가능성

"사회운동의 대안이념과 변혁의 전망, 실천할 준비는 되어있는가?"

[기획] 사회운동포럼이 낳은 새로운 사회운동의 가능성 (7) 대토론회 1부 - 사회운동의 대안이념과 전망

사실, 사회운동포럼 대토론회 기획팀으로 참여하면서부터 영 풀리지 않던 찝찝한 고민이 하나 있다. 지금까지 세계사회포럼이나 한국사회포럼 등 운동 진영이 공동의 전망을 논의하고 활동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가 다양하게 마련되어 왔지만 행사의 규모나 취지에 관계없이 결국은 진정한 소통과 공감 그리고 포럼 이후의 실천이 담보되지 않는, 화려한 말잔치에 불과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회의적인 느낌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운동의 대안이념과 변혁의 전망’ 이라는 거창한 주제를 사회운동포럼의 첫 번째 토론 주제로 마주했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이것이 ‘남의 이야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다. 앞에 앉은 사람들이 장황한 수식과 거창한 이론으로 쏟아내는 이야기가 아니라 모두가 공감하는, 모두가 알고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토론회 기획의 과정에서 발제자들이 준비한 발제문을 발표하는 형식이 아니라 다양한 패널들이 참석해서 토론을 벌이는 형식을 택한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아쉬움이 많이 남는 토론이었다. 차이를 드러내고 동의지점을 찾아내는 것만으로도 세 시간은 너무 짧았고 할 말은 너무 많았다. 이 글에서는 토론에서 드러났던 주요한 인식의 차이와 전망의 쟁점들을 중심으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대중운동 그리고 새로운 전선의 모색

올해 상반기에는 내내 ‘87년 이후 어쩌구’ 하는 화두가 습관처럼 얘기되어 왔다. 이른바 ‘87년 이후’의 주요 쟁점은 ‘시민운동의 확대’, ‘다양한 영역운동의 등장’, ‘노동운동의 제도화’, ‘정당 운동의 본격화’ 등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쟁점들을 둘러싼 평가의 과정에서 혹자는 ‘87년 이후 전선을 잃었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대토론회 1부 토론의 첫 번째 쟁점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되었다. 과연 우리는 전선을 ‘잃은’ 것인가 아니면 전선을 ‘확장한’ 것인가. 혹은, 전선이 ‘왜곡된’ 것인가. 그리고 그동안 ‘대중은 어떤 위치에 있었던가’.

지난 8월 30일 열린 사회운동포럼의 대토론회 1부 토론자들 [출처] 사회운동포럼 홈페이지(www.smf.or.kr)

▲ 지난 8월 30일 열린 사회운동포럼의 대토론회 1부 토론자들 [출처] 사회운동포럼 홈페이지(www.smf.or.kr)



토론의 과정에서 이에 대한 평가가 갈리는 지점은 결국 ‘대중운동’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드러났다. 사회진보연대의 이상훈 활동가는 “노동운동이 보편성을 잃은 것이 문제이고 따라서 노동운동을 일반화시키고 확장시켜야 한다”고 평가한 반면, 인권운동사랑방의 미류 활동가는 “87년 이후 장애인, 청소년, 성소수자 운동이나 보건의료운동 등은 대중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보편적 운동으로서의 의제를 끊임없이 발굴해 나가고 있음에도 운동의 위기에 대한 분석은 여전히 87년 이전의 패러다임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같은 맥락에서, 장애여성공감의 박김영희 활동가는 “장애인 운동이 소수 운동으로 묶여지면서 타자화 되는” 문제를, 여성운동전략기획단의 호성희 활동가는 “87년에도, 그 이후에도 여성은 온전히 운동의 주체로 자리하지 못했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결국 사회운동을 평가하고 전망을 그리는 데 있어서 반자본 운동으로만 귀결될 수 없는 다양한 의제들과 ‘노동자’로 한정되어 있던 ‘사회변혁의 주체’에 대한 관점을 어떻게 확장하고 새롭게 재구조화할 것인가 중요한 과제로 남겨졌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사회운동이 노동운동을 한 축으로 두고 다른 의제와 운동들은 이에 단선적으로 연결되어 온 형태라면, 이제 새로운 ‘전선’은 다양한 의제와 주체가 입체적으로 복잡한 교차점을 만들어 내면서 ‘선’이 아닌 ‘다차원 도형’으로 영역을 넓혀나가는 형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지역’과 ‘사회공공성’

이번 토론에서 빠질 수 없는 주제는 역시 최근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지역’과 ‘사회공공성’이라는 주제였다. 이 두 가지 주제는 몇 년 전부터 당과 노동운동 조직을 비롯한 여러 운동 조직들이 신자유주의 대응의 중요한 고리이자 사회운동 변혁의 방향으로 중요하게 생각해왔던 부분이고 이번 사회운동포럼에서도 열쇠말 워크숍을 통해 보다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있는 것들이다.

인권운동사랑방은 주택과 의료, 물 등 인간다운 삶의 기본 조건들을 모두 상품화/사유화하고 있는 자본의 운동에 맞서 생산수단과 공적 기반들을 사회화하기 위한 운동의 방향으로 ‘사회공공성 투쟁’을 중요한 고리로 제시하였다. 또한 ‘전진’의 경우 ‘사회변혁적 노동운동’을 주장하며 노동 의제를 넘어서 교육, 생태, 여성주의, 인권, 반전평화 등 사회공공성 의제를 결합하는 실천을 지역운동을 통해 벌여나가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사회진보연대 이상훈 활동가가 지적하듯, 사회공공성 투쟁은 자칫 현재의 국가 체계에 머무르는 방어적 투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민영화/사유화 저지 투쟁을 넘어 ‘노동자민중의 새로운 권리목록, 그리고 그것을 위한 새로운 합의와 자기 통치를 위한 사회운동’으로 고민을 확장해 나가야 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지난 8월 30일 열린 사회운동포럼의 대토론회 1부 [출처] 사회운동포럼 홈페이지(www.smf.or.kr)

▲ 지난 8월 30일 열린 사회운동포럼의 대토론회 1부 [출처] 사회운동포럼 홈페이지(www.smf.or.kr)



한편, 최근 사회공공성 투쟁과 지역운동에 대한 수차례의 논의 속에서 문화연대 역시 마포, 노원 등 구체적인 지역에서의 실천까지 모색하고 있지만 ‘지역’이라는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공간은 보다 복잡한 고민과 실천을 요구하고 있다. 우선 부딪치는 문제는. 지역은 분명 삶의 공간이면서 생산의 공간인 동시에 착취의 공간으로서 다양한 주체와 의제가 만나는 중요한 매개고리이지만 생활의 공간과 노동의 공간이 괴리되어 있는 대부분의 개인들에게 공동체적 생산과 삶의 공간으로 지역을 재구조화하는 실천을 제안하기에는 많은 한계와 제약이 따르게 된다는 점이다. 현재 대부분의 지역운동이 여성 중심, 소비자 생활 협동조합 중심의 형태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노동현장과 생활현장이 가깝고 거주지역에 근거하고 있는 여성들이 지역운동의 주체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역운동에 참여하는 여성들 역시 자신의 노동현장 문제를 지역에서 풀어낼 수는 없는 구조이다. 결국 여성은 가정과 노동현장에서 뿐만 아니라 지역운동의 현장에서마저 생활영역의 굴레에 엮여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는 단순히 노동운동 조직이나 당 조직, 운동 단체가 목적의식적으로 지역에 개입하고 의제를 발굴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쿠바나 베네수엘라가 그러했듯이 지역에서 ‘자치에 기반한 새로운 생산’의 조건들을 만들어내야 하며 그러한 활동을 통해서 지역 공동체를 함께 구성하기 위한 새로운 주체를 형성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속도와 공간 역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부분일 수밖에 없다. 장기적 전망을 가지고 오랜 시간을 들여 지역에서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새로운 생산과 삶의 공동체를 만들어 낼 각오를 가지지 않는다면, 결국 ‘사회운동 변혁의 전망으로서의 지역운동’은 곧 터져 공기 중으로 흩어지고 말 거품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사회운동의 변화와 새로운 연대를 위한 고민들

마지막으로 사회운동 변혁의 전망을 논의하는 데 있어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사회운동포럼 기간을 통해 ‘소통과 연대’로 구분되기도, ‘새로운 활동양식’으로 구분되기도 했지만 사실은 ‘변혁의 핵심고리’라 할 수 있는 조직방식과 활동방식의 문제이다.

‘대중없는 대중 투쟁’을 한탄하지만 우리는 과연 진짜 대중을 만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던가. 지금까지 ‘대중’이란 곧 ‘상층부에서 지침을 통해 동원한’, ‘사전 조직화된 대중’ 아니었던가. 그런 의미에서 사회운동진영의 효율성, 조직주의, 성과주의를 비판하며 활동의 경험과 이해 정도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 운동 문화에 대해서 지적했던 박김영희 활동가의 발언은 대토론회에서의 그 어떤 발언보다도 중요한 발언이었다고 생각한다. 일방적인 선전활동과 고립된 언어, 대규모의 조직 동원만을 고려한 관성화 된 집회 문화는 우리의 운동을 점점 외롭게 만들고 있다. 우리에게는 아직 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다. ‘사회운동의 대안이념과 변혁의 전망’은 어떤 이론가로부터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관성으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상상력과 거침없는 실천을 통해 다양하게 그려질 수 있을 것이다. 자, 이제 실천할 준비는 되어있는가!
덧붙임

◎ 나영 님은 문화연대 문화교육센터 팀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