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2일부터 14일, 기후정의동맹 참여 단체 활동가들이 보다 깊게 교류하는 자리로써 <2023 기후정의 활동가 캠프 : 기후정의로 세계를 변혁하자>*가 열렸다. 평소라면 갈 엄두조차 못 냈을 충북 단양에, 좀처럼 만나기 힘들었던 전국 각지의 활동가들이 모였다. 올 2023년의 기후정의운동을 유의미한 사회운동의 전장으로 만들기 위해 무려 60여 명의 활동가들이 2박 3일이나 되는 일정에 함께해 주었다.
기나긴 이동시간으로 지친 활동가들을 위한 <몸풀기 마음풀기> 오리엔테이션으로 캠프가 가볍게 막을 올렸다. 두 명의 동맹 활동가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행사장이 떠나가라 박장대소하며 스트레칭을 한 덕에 하나둘씩 정신을 차릴 수 있었고, 이어서 비빔밥의 재료들로 조를 구성하여 서로의 얼굴을 그리고 또 공통점을 찾는 놀이를 진행했다. 그렇게 한층 활기차진 분위기에서 본격적인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급변하는 세계경제질서, 기후정의운동은 어떤 정치의 장을 열어야 하는가
지피지기가 백전불태인 법이라면, 기후정의운동은 현재 어떠한 지형 위에서 정치적 움직임을 만들어내려는지 알아야 할 테다. 그리하여 캠프의 첫 프로그램은 참세상연구소의 홍석만 씨가 준비한 발제를 토대로 ‘정세 읽기'를 해보는 시간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기후위기의 여파로 식량과 에너지 공급이 불안정해지며 전 세계가 경기침체를 직면하고 있는 지금, 자본주의 경제 패권을 점하려는 미국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안보와 무역 질서 재편을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이 흐름에 적극적으로 편승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으며, 동시에 철저히 ‘재벌 중심'의 경제 정책을 펼치려는 중이다. 물가 상승, 실업률 증가 등으로 민중의 삶이 더욱 힘들어지리라 예상되는 정세에서 기후정의운동은 어떠한 의제와 투쟁으로 돌파해나갈 것인가. 이러한 질문 위에서 올 2023년의 기후정의투쟁을 세워야겠다는 인식과 공감대가 형성된 시간이었다.
나의 언어로, 우리의 운동에 뛰어들자
작년 12월에 진행한 선언운동 집담회에 이어, 이번 캠프에는 <N개의 기후정의>라는 제목으로 라운드 테이블을 준비했다. 지난번과는 달리, 각 운동의 특성을 세심하게 고려하여 모둠을 구성해 보기로 했다. 노동건강, 반빈곤, 장애여성, 문화, 청소년, 동물권 등 다양한 영역과 의제의 운동을 한 곳에 묶고, 보다 긴밀하게 모여 논의를 진전시킬 필요가 있다는 판단하에 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또 지역이나 정당에서 기후운동을 벼리고 있는 활동가들을 한 모둠에 배치하는 식으로 말이다. 확실히 더 깊은 고민을 긴밀하게 나누기에 적절한 시도였던 것 같다.
‘여전히 갈 길은 멀지만, 그 길을 어떻게 가야할지 점점 감이 잡히는 것 같군!’ 모둠토론에 대한 개인적인 후기를 남기자면 이렇다. 지난 집담회의 경험이 나름 각 주체들에게 고민할 계기라도 되어준걸까? 기후정의를 자신의 운동에서 주력하는 구체적인 언어와 투쟁에 연결하여 이야기를 나누어주는 게 훨씬 수월해진 느낌이었다. 한편, 기후정의의 관점에서의 고민과 선언운동에 대한 이해도가 다 다르다는 사실이 확 와닿기도 했다. 공공성, 에너지, 탈성장 등의 이야기, 또 선언이라는 형식을 통한 주체화의 의미를 잘 나누는 시간이 계속해서 필요한 듯한 느낌이랄까. 앞으로의 과제가 조금 더 선명해졌다는 희망과 함께, 슬슬 본격적으로 운동을 그려나가고자 한다.
타자화를 넘어, 연결을 엮자
결국 운동도 시간과 체력 등의 에너지가 한정된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나 혹은 나에게 가깝게 느껴지는 운동부터 뛰어들기 마련이다. 낯설게 느껴지는 논의와 실천들은 점점 뒤로 밀리며 손을 대기 더욱 난감해지고, 그렇게 운동과 운동 사이에는 ‘지금? 굳이?’라는 벽이 세워진다.
이번 캠프의 성과 중 하나는 그 벽을 허물어보려고 했던 시도가 아닐까 싶다. 특히 <세션 1 : 종차별주의와 동물의 권리>에 있어 어쩔 수 없(었)다는 말 대신 “어쩔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나아가기 위해 많은 이들이 기꺼운 용기를 내주었다. 다소 어색하고 긴장되는 주제임에도 각자의 고민들을 끊임 없이 나누었던 그 과정은 혼자서만 끙끙 앓아왔던, 그리고 어쩌면 서로에게 답답함이나 서운함을 느끼기도 했을 지난날들이 솔직하게 드러나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처럼 운동과 운동의 연결을 늦추는 벽은 오랫동안 쌓인 만큼이나 허물어지기까지 꽤나 긴 시간과 꾸준한 노력을 필요로 할 테지만, 그 첫걸음의 소중함을 상기하며 앞으로의 시간을 기대하고자 한다.
정의로운 에너지, 정의라는 에너지
기후정의동맹에서 에너지‘원’이 아닌 에너지‘체제’의 전환을 외치는 이유는 명확하다. 삶과 존엄이 아닌 이윤을 기준으로 굴러가는 체제는 에너지원을 전환하지도, 기후위기를 극복도 못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수많은 이들의 삶이 점점 더 고통스러워지고 있다. 농어촌 지역에 수많은 에너지 발전/폐기물 시설들이 대규모로 들어서면서 지역 주민과 노동자의 생명을 위협한다. 땅, 노동, 생명 등 모든 것의 가치가 ‘싼 값’으로 매겨지는 한편, 공급망의 불안정과 발전소의 적자를 이유로 말 그대로 모든 이들이 존엄한 삶을 위한 에너지를 누리기 힘들어지고 있다. 다르게 보면, 에너지는 부정의를 직면케 하고 존엄한 삶의 기준을 다시금 세울 수 있는 재화이자 권리인 것이다.
적당한 때와 장소를 기다리지 않고, 일상으로 투쟁을 끌어오자
다가오는 4월 14일, 평일인 금요일에 자본주의의 쳇바퀴를 멈추는 저항을 하고자 한다. 존엄이 흔들리는 자신의 자리를 벗어나, 우리가 원하는 ‘일상’을 되찾기 위한 잠시 동안의 멈춤. 여기서 우리는 이 사회를 굴리는 에너지가 우리의 노동, 생명, 그리고 ‘정의’임을 똑똑히 밝히고자 한다. 그러니 <414 기후정의파업>은 성장으로부터의 후퇴가 아니라, ‘존엄한 성장’을 위한 전진일테다. 더 적당한 때와 장소를 기다리지 않고, 우리 일상의 시공간에 저항을 기입하자. 4월 대정부투쟁을 기점으로 하여 저항이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기를, 그리고 이 저항들이 사회에 더욱 크고 긍정적인 긴장을 줄 수 있기를. 이 글을 읽는 분들께 세상을 뒤집는 자리에 부디 함께해주시기를 간절히 요청드리고 싶다.
* [자료집] <2023 기후정의 활동가 캠프> 자료집은 기후정의동맹, 인권운동사랑방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