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없는 군대는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다
지난주에 국방부는 불온도서 지정행위에 반발하여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던 군법무관 두 사람을 파면하였다. 이는 군대 내에서 이성의 위축과 압박을 극대화하려는 조치라고 볼 수 있다. 파면조치는 결국 당국이 스스로 이성적으로 논증할 역량이 부족하다고 고백한 것이다. 법적으로 꾸며진 이유를 걷어내면, ‘말 안 들으면 재미없다’고 한 것에 불과하니까.
우리는 한국현대사에서 군대가 저지른 쿠데타, 민간인학살, 사회정화, 녹화사업, 강제징집, 군의문사, 민간인사찰, 간첩조작사건 등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 10여 년 동안 시민사회와 정부는 대한민국의 군대가 민주주의에 충성하고, 시민의 인권을 보호하는 국민의 군대로 거듭나야 한다고 요구하였다. 이러한 요청은 군 안팎으로 좋은 반향을 일으켰다. 군대에 의한 불행한 역사를 겪은 곳에서는 한결같이 군인이 인권을 지닌 인간으로 대우받아야 하고, 그래야만 군대가 시민의 인권을 중시하고 민주주의에 헌신할 수 있다는 통찰을 공유하였다. 한마디로 인권이 없는 군대는 민주주의의 치명적인 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관의 명령이면 덮어놓고 맹종하는 군인상을 사절하였다. 억압적인 군대에서 똬리를 틀었던 특별권력관계이론을 근본적으로 폐기하였다. 군인은 제복 입은 시민(citizen in uniform)이라는 전제에 이르렀다. 불온도서 지정행위에 불복한 법무관들은 새로운 시대정신을 보여주는 좋은 군인이자 좋은 시민이다. 그런데 군 당국은 여전히 ‘군대를 자신의 장원’으로, ‘군인을 장원에 딸린 농노’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파면은 적법하지 않다
국방부가 제시한 이유는 파면의 정당함을 논리적, 법적으로 증명하지 못한다. 헌법소원 제기가 징계사유라면 군대에서 인사나 보직과 관련하여 이의나 소송을 제기하는 자는 모두 항명죄나 징계조치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군대 안팎으로 불복조치와 소송이 적지 않았지만 이를 이유로 징계조치를 내리지는 않았다. 헌법소원을 제기한 이후에 법무관들이 군 수뇌부의 말에 고분고분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는 독립적인 징계조치 사유가 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헌법재판소에서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다. 헌법소원을 함께 제출했다고 해서 합법적 행위가 불법적인 행위로 전락하지 않는다. 헌법에 합치하는 권리행사는 징계조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법무관들의 품위유지 의무 위반이나 명예실추는 생각할 수 없다. 오히려 ‘헌법에 충실한 법무관’으로서 상을 주어야 한다. 이 나라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고 파면하는 국방부라면 정말 대한민국의 국방부인지 궁금하다. 군대는 '국가 넘어 국가'가 아니다.
불온도서 지정행위는 위헌적이다
징계권의 빌미가 되었던 불온도서지정행위는 적법한 것인가. 오늘날 어느 자유주의국가가 불온도서를 지정하는 제도를 유지하는지 대단히 궁금하다.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들은 금서나 불온도서를 지정하는 권력에 대하여 단호히 반대한다. 따라서 정치적 사상을 통제하고 처벌하려는 국가보안법은 당연히 폐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국가보안법의 유효성을 전제하고 논의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 국가보안법에는 불온도서에 대한 단서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70-80년대에 국가보안법 사건에서 법원은 많은 도서들을 이적표현물로 규정하였다. 이에 따라 경찰들은 무차별적으로 도서를 압수하였다. 그러나 90년대 이후에는 사상을 검열하는 판결의 수효는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어쨌든 불온도서는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그런데 국방부는 일방적으로 최근 23권의 도서를 볼온도서로 지정하였다. 불온도서 지정자들이 해당 도서를 읽지도 않았다는 것은 지난 해 국회의 질의과정에서 이미 밝혀진 바이다. 원래 금서목록이라는 것은 이성적 논증을 포기한 자들이 즐겨 찾는 수단이므로 지적 열등감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국방부는 군인복무규율 제16조의2를 불온도서지정행위의 근거로 제시한다. 이에 따르면, “군인은 불온유인물·도서·도화 기타 표현물을 제작·복사·소지·운반·전파 또는 취득하여서는 아니 되며, 이를 취득한 때에는 즉시 신고하여야 한다.” 이 규정으로부터 군인은 불온도서를 소지하거나 반입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규정 자체가 불온도서를 독자적으로 지정할 국방장관의 권한이 있다는 것으로 추정․추론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법원이 할 일이다.
군 지휘부는 종교재판관도 아니며, 대한민국의 법관도 아니다. 결국 국방부의 불온도서 지정은 법원의 재판권을 찬탈하고, 군인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조치이다. 물론 아무리 국방부 측에 유리하게 논리를 구성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결론을 넘어갈 수 없다. 국방부는 '창설적으로' 불온도서를 지정하는 권한을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법원이 국가보안법에 따라 이적표현물로 판결한 도서에 대하여 '사후적으로' 지정할 수 있을 뿐이다. 결국 해당도서들이 정치적 불온도서인지 아닌지는 국가보안법 사건에서 내리는 법원의 확정판결에 달려있다. 그러나 스물 세 권의 도서 중에서 어느 것도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으로 문제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 책들이 불온도서가 되는 일은 참으로 요원한 꿈이다.
감독하는 자를 누가 감독할 것인가?
불온도서 지정행위는 병사들의 사물함을 검열하는 데에 익숙한 구세대의 구태라고 생각한다. 불온도서 지정 논란이 지난 해 사회적 조롱거리가 되었을 때 멈추었더라면 국방부의 명예는 더는 실추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군 당국이 오기로 파면조치를 감행하여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이러한 보복적 징계조치는 악의적 불법행위에 해당하므로 징계권자에게 개인적인 민형사상 책임을 추궁할 수도 있다. 더구나 이러한 정치적 보복조치야말로 과거 십수년간 청산하고자 했던 국가폭력이 아닌가! 감독하는 자를 누가 감독할 것인가? 징계권을 남용한 자를 누가 징계할 것인가? 이 고전적인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조직은 스스로 존립기반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직권남용을 벌하라!
불온도서의 지정행위와 연이은 파면조치는 직권남용에 해당한다. 그러한 행위는 형법에서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군인복무규율 제14조는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군인은 어떠한 경우에도 직권을 남용하여서는 아니 된다.” 부하에게 복종을 명령하려면, 상관도 법을 준수하고 부하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 군대는 게토도 아니고, 치외법권 지대도 아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인권침해를 방지하려는 독일의 군형법은 찬 서리처럼 엄하다. 부하가 국가기관에 진정하거나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방해하는 지휘관은 3년 이하의 자유형(독일군형법 제35조)에, 악의적으로 징계권을 남용하여 징계조치를 취한 상관은 5년 이하의 자유형(제39조)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성과 논리를 부정하는 군대를 국민은 원하지 않는다. 국방부는 하루 빨리 법치국가의 장기판으로 돌아오기 바란다.
덧붙임
이재승 님은 건국대 법학 전문대학원 교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