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한 씨는 고용허가제로 입국해 지난 연말 3년을 채우고 재계약을 위해 고향 베트남에 다녀왔다. 보통 한 달 동안 다녀오는데, 투한 씨네 공장에 일이 없어 두 달을 고향에서 보내고 왔다. 돌아와 월급을 받는데, 그동안 없던 공제 항목이 두 개나 늘었다. 지난 3년 동안 회사에서 제공했던 기숙사와 점심 식사비로 15만원이 책정되어 있던 거였다. 그렇게 제하고 남은 금액이 63만원이었다. 돌아와서도 두 달 간 워낙에 일이 없어 경기가 어려운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경기가 풀리고 일요일 특근을 해야 할 만큼 일이 많아졌어도 공제 금액은 그대로였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부장님한테 물었다. 그랬더니 계약서를 보여주며 “재계약 할 때 이미 말한 거 아니냐”며 “새삼스럽게 왜 그러냐”는 거였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그런 말을 들은 것도 같다. 그런데 그게 이런 건지는 실감하지 못한 투한 씨였다. 3년을 더 있을 수 있다는 말에, 그리고 3년 일 했으면 나름 기술자인데 월급이 더 작아 질 수 있다는 걸 그의 경험으로는 상상할 수 없었다.
최저임금은 국경에서 멈춘다
지난 밤 다른 공장에 일하는 고향 친구들 만나 얘기를 나누면서 그동안 참았던 일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의 새 애인은 핸드폰 부품 조립공장에서 일한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 하루 종일 돋보기 같은 걸 보면서 조그만 부품들의 불량을 검사한다. 같은 한국인 아줌마들과 월급 차이도 없단다.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최저임금에 맞춰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투한 씨는 CNC작업을 한다. 하루 종일 서서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려 깎고 내려놓는 중노동이다. 그런데 둘의 월급이 같다. 투한씨도 최저임금이다. 하지만 투한 씨의 한국인 직장 동료들은 그의 두 배 이상을 받고 있다. 정확한 금액은 얘기를 해주지 않아 모르지만 그런 눈치다. 3년을 일한 자신보다 아직 기계를 다룰 줄 몰라 이 대리에게 쇠자로 뒤통수를 얻어맞는 신참 월급이 높다. 그런데도 한국 대통령은 외국인 월급이 비싸다고 깎으라고 했단다. 정밀하게 깎는 건 투한 씨 전공기술인데, 윗사람까지 구지 나서서 우리들 가슴을 깎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투한 씨가 아침부터 홧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투한 씨가 아침에 마신 술은 한국 소주다. 그 소주 값은 외국인이라고 할인해 주지 않는다. 그 안에 포함된 세금도 마찬가지다. 한국 땅에 살고 있는 거다. 일하러 온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무슨 생활비가 필요하냐, 그러니 월급 할인해도 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진짜 밉다. 3년 동안 가족도 없이 혼자 와서 딱 그만큼만 일하다 다시 가라고 하는 것 자체가 사람이 아닌 일하는 기계를 만드는 거지만 그래도 그런 대접을 감수하고 이곳 한국에 오는 거 아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아니 있다. 시작은 분명 그랬다. 그런 줄 알고 왔다. 그런데 그 마음이 달라졌다. 이곳에서 살아가면서 화나면 친구를 찾아 아침부터 술도 마실 수 있는 인간의 감정을 아예 고향 베트남에 다 두고 온 게 아니기 때문이다.
곧 무슨 일인가를 벌일 것처럼 상기된 얼굴로 돌아간 투한 씨가 또 한참 만에 나타났다. 다른 한국인 동료들 월급도 20%씩 할인했단다. 아니면 나가라고 해서 투한 씨는 얘기도 꺼내지 못했단다. 한국말이 서툰 투한 씨지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기분이 이상했다고 한다. 위안도 되기도 절망적인 기분이 들기도. 그 이후로 한국인 동료들과 많이 친해졌다고 한다. 나중에 투한 씨 재계약 할 때 힘을 써준다고 했다는데, 그들의 월급삭감에도 속수무책인데, 어떤 도움이 될지 고개가 갸웃해진다. 아무튼 그래서 1년 계약이 만료되는 날까지는 그냥 참기로 했다며 다시 그의 새 애인 이야기로 이마가 환해진다.
최저임금법 개악 속에 묻혀버릴 인권
논란이 있는 최저임금법이 개정되기도 전에 최저임금에 숙박비 공제를 잘 할 수 있는 비율까지 정해 전국의 업체에 공문을 보내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중소기업협동중앙회(이하 중기협)가 항의하는 시민사회에 보낸 답변이 기가 막힌다. 그동안 연수생들은 노동자가 아니어서 숙식을 제공했지만, 고용허가제 하에서는 노동자이기 때문에 노동자성 대우 차원에서 숙식비를 공제하겠다는 거였다. 같은 노동자끼리 한국인은 안 주고, 외국인만 주면 그거야 말로 차별이라는 거다.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밀어붙이고 있는 정부와 정치권의 논리도 매 한가지다. 그동안 이루어졌던 무수한 인권침해와 수많은 투한 씨가 이곳에 두 눈 뜨고 살아가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안면몰수가 가능한지 궁금하다.
고용자가 피고용인을 저임금으로 부리는 착취를 막기 위해, 국가에서 정한 노동자에게 지급해야 할 최소한의 임금이 최저임금이다. 그런데 최저임금을 피부색으로, 국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명백한 인종차별이다. 대통령이 나서서 인종차별을 하는 곳에, 물가상승률보다 낮은 최저임금 인상이 통과는 곳에 이주노동자의, 그들과 함께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의 최소한의 생존권, 인권이 있을 리 만무하다. 켄 로치 감독이 만든 영국영화 ‘자유로운 세계’를 보면 외국인력 업체를 운영하는 딸에게 아버지가 최저임금은 주냐는 대사가 나온다. 전 세계 이주노동자들의 마지막 보루가 되는 최저임금의 문제가 비단 한국에서만 논란이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아 씁쓸하다.
덧붙임
이상재 님은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