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591건 중 하나일 뿐이었다
남자들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곳은 분식집이었다. 단속대상이 식당이고, 여성들이라 특별히 저항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수갑하나면 족했다. 손님으로 가장해 들어가 눈에 보이면 잡아 나오면 그만일 터였다. 특별히 거쳐야할 절차는 없다. ‘불법체류자 단속’이라는 말 한마디면 끝이다. 그날도 그랬다. 손님이 한가한 시간을 택해 들어갔다. 잡아 나오는데, 한명이 유난을 떨었다. 살려달라고 큰소리를 냈다. 우리가 무슨 저승사자란 말인가? 짜증이 밀려왔다. 바닥에 패대기를 쳐도 소용이 없다. 옷이 벗겨져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독종이다. 봉고차에 태워 수갑을 채우고 악을 못 쓰게 목울대를 몇 대 때리니까 조용해 졌다. 남자들은 실적이 담긴 봉고차에 기대 평소처럼 커피를 마셨다. 일을 마치고 마시는 커피는 늘 꿀맛이다. 오늘 밥값은 했다. 화창한 봄날의 일상이었다.
다음날 남자들은 황당했다. ‘이런 야만이 어디 있느냐? 백주 대낮 대한민국에서 할 짓인가?’라며 언론이 호들갑을 떨었다. 무슨 일인가 싶었다. 동영상에는 남자들의 지난 오후의 일상이 담겨 있었다. 평범했다. 어제 오후는 아주 평범한 일상 업무였다. 동영상을 다시 봐도 특별할 게 없었다. 대규모 단속에 비하면 액션 장면 하나 없는 재미없는 동영상이었다. 몰래카메라였나. 억울했다. 재수 옴 붙은 거다. 2008년 단속 추방된 미등록이주노동자 수인 32,591분의 1로 일어날 일이 남자들에게 생긴 거였다. ‘왜 때리세요?’란 여성의 애절한 목소리가 보는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식당 안에서 더 기를 꺾어 버렸어야 했었다. 여성이라고 봐준 걸 남자들은 후회했다. 동료들이 금방 잊혀 질 거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여론에 못 이겨 감찰이니 고소니 운운하는 조직에는 화가 났다. 2009년에는 15만 명으로 줄이자며 남자들의 등을 떠민 게 그들이었다. (2008년 목표는 불법체류 20만이었지만 이미 경기침체로 인한 자진출국과 강력한 단속추방으로 목표를 초과달성했다고 한다.)
국익으로 환산되는 이주자들의 인권
동영상 사건이 있기 전까지 남자들은 국가주권 수호자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국경에서 총을 들고 있지는 않지만, 그 못지않게 국경을 해치는 주범을 잡는 일 또한 중요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국익을 위한 일이었다. 국익을 지키는 일에 그 정도 마찰은 감수해야 했다. 국가 경제를 위해 국민의 목숨도 불길에 가두는 게 우리 현실 아닌가. 그런데 그깟 불법체류자를 밀고 목울대 한번 쳤다고 그 난리를 피운단 말인가. 인터넷을 뒤지면 지난해 그리고 올해 남자들보다 더 뛰어난 액션 배우들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거였다. 정말이지 억울했다. 한해 남자들이 땀 흘려 일한 결과로 얻은 국익을 국민들이 제대로 안다면 언론들이 그렇게 호들갑을 떨지는 않을 거였다. 왜 홍보를 제대로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방송이나 신문도 이제는 국익을 거의 이해하고 있는데 말이다.
수천억 원이 넘었다. 남자들도 자신의 일이 그만큼 큰 국익을 만들고 있는지 몰랐다. 자신들의 행위가 어떻게 돈으로 환산되는지 납득하기 쉽지 않았지만, 남자들은 그 수치가 마음에 들었다. 국가주권이나 법치란 말보다는 돈이 더 확실하게 국민들 가슴에 파고들 거였다. 법무부 출입국관리법 개정안 규제영향 분석서에 따르면 언제 어디서건 외국인을 불러 세워 단속을 강화하면 590억, 국제결혼을 잘 통제하고 감시하면 640억, 잠재적 범죄자인 한국에 들어오는 모든 외국인의 지문정보를 모으면 2,031억, 더불어 잠재적 범죄자카드인 외국인등록증에 지문을 추가하면 410억. ‘억, 억, 억’ 이 수치 앞에서 어느 국민이 법 개정 반대 목소리를 높일 수 있을 것인가.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법이 없어도 언제 어느 곳에서건 남자들은 단속을 해왔다. 그리고 지문은 대한민국 성인이면 누구나 감수하는 일이었다. 이건 외국인만 최저임금을 깎겠다는 것보다는 훨씬 더 세련되고 국익을 위하는 일이고, 법이라고 두 남자는 생각했다. 그래서 두 남자는 더 억울했다. ‘억, 억’
덧붙임
이상재님은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