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인권위는 "불법체류 외국인에 대한 단속·연행의 권한이 명문화되어 있지 않고, 권한 행사시 검사의 지휘나 영장주의의 적용을 받지 않고 있어 인권 침해 논란이 있어 왔"다며 법무부장관에게 출입국관리법령 등을 개정해 △불법체류 외국인 등에 대한 강제 단속 및 연행의 권한과 요건, 절차를 명확하고 엄격하게 규정하고 △특히 단속·연행·보호·긴급보호 등 사실상 체포와 구금으로 작용해 신체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약하는 조치에 대해서는 형사사법절차에 준하는 수준의 실질적 감독체계를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강제단속, 법적 근거 미비
법무부가 단속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현행 출입국관리법 제51조는 제1항에서 "출입국관리공무원은 (외국인이 강제출국 대상에) 해당된다고 의심할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도주하거나 도주할 염려가 있는 경우…보호명령서를 발부받아 그 외국인을 보호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제3항의 "긴급을 요하여…보호명령서를 발부받을 여유가 없는 때에는 그 취지를 알리고 출입국관리공무원의 명의로 긴급보호서를 발부하여 그 외국인을 보호할 수 있다"는 예외규정이 적용되고 있다.
이날 인권위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04년 한 해 동안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가 △단속하여 보호 조치한 외국인 6185명(거리 단속 5765명, 업소 단속 420명)은 100% 긴급보호 조치됐고 △단속 과정에서 수갑을 사용한 사례도 4230회(68.4%)에 달하며 △보호명령서를 사전에 발급하여 보호 조치한 경우는 1건도 없었다.
긴급보호 100%, 수갑사용 68.4%
이에 대해 인권위는 "법무부가 단속 및 연행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긴급보호 조항은, 특정한 요건하에서 특정한 절차에 따라 외국인을 긴급보호할 수 있는 예외조항으로서 일반적인 단속과 연행의 근거로 해석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는 길거리 무차별 불심검문과 작업장 난입까지 자행되는 단속행태가 '보호명령서를 발부받을 여유가 없는 때'라는 예외 규정에 의해 면죄부를 받을 수 없다는 것.
인권위는 "실제로 불법체류 외국인 단속 과정에서 출입국관리공무원들이 예외 규정인 긴급보호 조항을 사실상 절대적 기준으로 남용하고 있는 사실이 인정되고, 이러한 법 집행 과정에서 임의적이고 과도한 공권력 행사의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9일 해명자료를 통해 "보호의 개념이 불명확하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고 "출입국관리법은…불법체류자에 대한 단속근거를 명시하고 있"으며 "출입국관리업무 특성상 국가간 상호주의를 적용하는 사례가 많아 대부분의 국가에서 불법체류자 단속에 영장주의나 검사의 지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지 않"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다만 실질적 감독체계 마련 권고에 대해서는 "개선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향후…인권침해가 없도록 각별히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권고가 그동안의 강제단속이 위법이라는 점을 선언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는 지적이다. 황필규 변호사(아름다운재단 공익변호사 그룹 공감)는 "영장주의 도입 필요성을 지적한 것은 긍정적"이라고 환영하면서도 "현행 강제단속과 연행의 법적 근거가 미비하다고 애매하게 표현된 점은 아쉽다"며 "보호소 감금은 인신에 대한 전면적인 구속으로 충분한 법적 근거가 있을 때만 합법적이므로 근거가 불충분하면 위법임이 명백하다"고 밝혔다. 또 법무부에 대해 "앞으로도 위법이 사라져야 하지만 과거의 위법에 대해서 법무부는 사과하고 영장주의 도입 대책을 포함해 출입국법령의 전반적인 점검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한편 권고에서 언급된 '영장주의의 적용'이 법령의 구체적인 개정방향 없이 제시된 점도 한계라는 지적이다. 관행으로 사용되는 긴급보호서 대신 보호명령서를 사전에 발급 받더라도 행정기관일 뿐인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발급하는 명령서가 형사사법절차상 체포의 요건인 '판사가 발부하는 영장'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
"야간 주거단속·작업장 침입 중단해야"
황 변호사는 법무부에 대해 "수색영장 없이 진행되는 야간 주거단속이나 작업장 침입 등 강제력이나 물리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스스로 자초하는 단속방식부터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단속시 행정기관의 판단만으로 강제 출국당하는 일을 막기 위해 "헌법과 국제인권기준이 보장하는 적부심 제도의 도입 등 인신보호법 제정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인권위는 "지난해 1월 방글라데시 대사관 앞 집회 후 경찰이 집회참가자들을 포위한 상태에서 출입국 직원들이 가스총을 쏘는 등 강제 단속을 실시해 인권을 침해했다"며 평등노조 이주지부(현재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노조로 확대) 조합원들과 한국인 등 62명이 제기한 진정에 대해, 서울용산경찰서장에게 당시 경찰측 현장 책임자에 대하여 주의 조치할 것을, 법무부장관에게는 △당시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현장 책임자와 가스총 발포자에 대해 주의조치할 것 △전국출입국관리사무소 조사 담당 직원들에 대한 인권 교육 실시 △출입국관리공무원의 경찰장비 사용 요건과 절차, 교육 및 감독체계에 대한 별도 규정 마련 등 재발 방지 조치를 권고했다.
이번 권고에 대해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노조는 10일 성명서를 통해 "이주노동자들을 공권력으로 짓누르려는 탄압들이 극에 달한 시기에 나왔기에 반가운 결정이 아닐 수 없다"며 법무부에 인권위 권고를 존중할 것을 요구했다. 또 "단속요건의 강화라는 절차적 문제는 본질이 아니"고 "오히려 인권침해를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강제단속이 필요 없도록 만들기 위한 한국정부의 정책적 변화의지가 필요한 것"이라며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전면 합법화와 노동허가제 입법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