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거리도 되지 못하는 청소년 자살
저번에 내가 해달라고 부탁했던 설문지 기억나? 문항이 뭐 이리 많냐고 투덜거리면서도 열심히 답해줬지. 오늘은 그 설문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해. 나와 내 학교 밖 친구들이 그 조사를 준비하게 된 계기는 별다른 게 아냐. 주위에서 청소년 자살 뉴스가 점점 늘어나서 이제는 뉴스거리도 못 되고, 일제고사다 고교 선택제에 서열화다 해서 학교에서 우리를 붙잡아두는 시간은 더 늘어나고, 두발복장 단속이 더 빡세지는 데다, 심지어는 조례로 우리의 전자기기 사용까지 규제하겠다는 걸 보고 화가 나서야. 정부에서는 우리를 대상으로 하는 자신들의 정책이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얼마나 인권침해적인지 제대로 생각도 해본 적 없는 것 같고, 시행 이후에도 그 영향에 대해 제대로 된 조사조차 하나 하지 않고 있어. 만약 그에 대해 대충이라도 알고선 모른척하고 있다면 더 큰 잘못을 하고 있는 거구.
그래서 우리는 몇 날 밤을 고심해가며 문항을 만들고, 여러 단체와 선생님들, 학부모들 그리고 친구들을 통해 설문지를 나눠주고, 그걸 수합해서 추석 때는 합숙까지 해가며 엑셀에 답안들을 일일이 입력했어, 흑흑. 원래는 거의 4천 명의 학생들에게 설문지를 받았는데, 결국은 너무 힘들고 지쳐서 경남지역 친구들 건 그 쪽에서 따로 수합하고, 나머지를 좀 제한 656명의 중학생과 1366명의 고등학생들의 답을 입력하고 분석하게 되었어.
새로울 것 없는 학생인권 실태
매우 잘 보장 | 잘 보장 | 보통 |
---|---|---|
1.1% (15) | 3.5% (48) | 33.4% (456) |
침해 | 매우 침해 | 무응답 |
32.4%(443) | 27.3% (373) | 2.3%(31) |
설문의 결과는 예상대로야. 학생인권이 매우 잘 보장된다고 답한 고등학생은 전국에서 열다섯 명 뿐. 2008년 이후에 학생인권이 보장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고 답한 중고등학생은 4%에 불과하고 학생인권 보장을 위해 정부가 노력을 아예 하고 있지 않다고 보는 고등학생은 절반이 넘어, 제대로 본 거지 뭐. 원래부터 학생인권상황이 암울했지만, 그마저도 이번 정부 들어서 바닥을 뚫고 추락했다는 분위기였지.
중학생 | 고등학생 | ||
평균 등교시간 | 약 오전 8시 08분 | 평균 등교시간 | 약 오전 7시 45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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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 이전 등교 | 38.1% (250) | 오전 8시 이전 등교 | 86.9% (1181) |
평균 하교시간 | 약 오후 4시 15분 | 평균 하교시간 | 약 오후 8시 21분 |
오후 4시 이후 하교 | 60.8% (399) | 오후 9시 이후 하교 | 64.7% (884)분 |
학교에 있는 평균 시간 | 약 8시간 4분 | 학교에 있는 평균 시간 | 약 12시간 35분 |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의 평균 학원 끝나는 시간 | 약 오후 9시 31분 |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의 평균 학원 끝나는 시간 | 약 오후 11시 20분 |
사교육 받는 학생들의 평균 사교육 받는 시간(일주일) | 14.2시간 | 사교육 받는 학생들의 평균 사교육 받는 시간(일주일) | 8.3시간 |
평균 수면시간 | 6.7시간 | 평균 수면시간 | 5.6시간 |
6시간 이하 수면 | 40.7% (267) | 6시간 이하 수면 | 75.3% (1028) |
고등학생의 평균 수면시간 5.6시간, 중학생 평균 6.7시간의 통계는 충격적이었고, ‘야자’나 보충수업 등등이 강제 혹은 반강제되면서 학교에 머무르는 시간도 고등학생은 12시간, 중학생은 8시간이 넘었어. 내심 청소년들이 오랫동안 목소리를 내온 두발복장규제나 체벌 등은 상황이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학교에 두발규제가 없다는 중학생은 5명뿐이었고, 체벌을 일주일에 1회 이상 경험한다는 답은 전체의 절반이 넘었어.
학생들의 무지를 체계화하는 학교
그런데 오히려 더 암울했던 건, 이런저런 문항에 ‘모른다’고 대답한 학생들이 너무 많았다는 거야. 학생회나 동아리 등이 어떤 식으로 운영 되냐, 어떤 식으로 변화하였냐고 묻는 질문에는 거의 3명당 1명꼴로 모른다고 답했어. 학생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정부 정책들에 대해서는 잘 모르거나 전혀 모른다는 응답이 6~70%에 육박하는 문항들도 있었고. 물론 정부 정책들에 대해 잘 모르는 학생들이 많다는 건 정부 책임이야. 대상자들이 정책을 잘 알 수 있게 충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직무를 유기하고 있지. 그렇지만 학생회나 동아리 활동도 그렇고, 정부나 학교가 제 역할을 다하지 않고 있을수록 우리도 더 관심을 갖고 시정을 요구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편으로 들었어. 비슷한 맥락에서 ‘교복 안팎에 코트, 셔츠 등을 입는 것을 규제한다’는 항목에는 그렇다는 답을 하고, ‘교복 입는 것을 강제한다’에는 그렇다고 답하지 않은 학생들을 보면서는, 어쩌면 매일같이 교복을 입다보니 그것을 ‘강제’ 당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걱정도 되고 슬프기도 했어.
잠시 펜을 내려놓고 생각해야할 때
이런 결과를 가지고 지난주 일요일인 11월 1일에는 실태조사 발표 및 토론회를 가졌어.
꽤 많은 사람들과 그들의 의견이 방을 꽉 채웠는데, 1부에선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분석하는 시간을 가졌고, 학생, 학부모, 교사 한 명씩이 와서 자신이 느끼는 현장의 ‘실태’나 앞으로의 연대, 대응방안에 대한 이야기와 고민을 공유했어. 2부에선 각자 앞에 과자를 쌓아두고 자유로운 얘기를 나눴고. 처음에는 자기 학교 상황이 이러저러 하다는 푸념들과 자신의 투쟁방식(ㅋㅋ)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나왔는데, 토론회가 막바지로 갈수록 아직도 학생인권의 뇌관은 두발자유인가, 아니라면 이제 어떤 키워드로 공감대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인가 등의 포괄적인 이야기가 나왔어. 마지막에는 실태조사 결과를 갖고도 좋고, 다른 이슈를 갖고도 좋으니 정기적으로 만나서 학생인권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 해 보자는 의견들로 마무리를 했구. 너희도 왔으면 좋았을 텐데.
공교롭게도 토론회 다음날부터 학교에서 날 보지 못했을 거야. 꼭 집어 실태조사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제대로 인간취급도 받지 못하면서 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학교에 계속 다니는 거지, 하는 수면 아래에 있던 생각이 수치화 된 자료들을 보면서 둥실, 떠오른 것 같아. 피하기보다는 맞서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기는 해서, 학교를 쉬는 며칠간 고민을 좀 해봐야 할 것 같아. 물론 며칠이 아니게 될 지도 모르겠지만, 훗. 그동안 너희도 한 번 쯤은 펜을 내려놓고 고민해 줬으면 좋겠어. 인간으로서는 당연한 일들이, 학생인 순간 당연하지 않아지는 때가 많지는 않은지.
* 이 글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2008년 이후 중고등학생 인권 실태 조사> 결과를 분석하고 발표한 후 작성한 것입니다.
덧붙임
발칙한 님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