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스러웠던 자퇴 이후
그렇게나 나를 괴롭혔고 막막하게 느껴졌던 학교라는 구속이 너무 쉽게 끊어졌다. 그리고 이제 아무도 강제하지 않는 진짜 공부를 해보겠다고 책상 앞에 앉았지만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 막막하고 어지러운 기분을 없애보려고 집을 벗어나서 PC방을 잠자는 시간보다 더 오래 들락날락 거렸고 그 전에는 수업이 있는 날에만 갔던 대안 교육 단체인 ‘교육공동체 나다’에 평일에도 가서 노닥거리다가 오곤 했다. 사실 노닥거리는 시간보다는 잠자는 시간이 더 길었지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고 불안함만 늘려주던 게임과는 다르게 나다는, 정확히 말하면 나다에서 자주 지내던 친구는 공동체에 대해 이야기 해보는 ‘땡땡이’라든가 청소년들끼리 하는 세미나를 제안해 왔다. 별로 즐겁지는 않았다. 그냥 그 친구랑 같이 있고 싶어서 계속 나다에 갔던 것인지, 아니면 나다에 감도는 ‘자퇴생이고 말 없고 어눌한 나도 괜찮다’는 그 공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 둘이 구분되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고. 그 때의 나는 확실히 무기력했고 그 때문인지 ‘땡땡이’도, 어떤 책을 가지고 하려고 했던 세미나도 전부 안하게 되었다. 그런 식의 시간이 지나고 2010년 봄이 찾아왔다.
저공비행으로 시동을 걸다
그 때 이미 ‘저.공.비.행’(저항을 공부하는 비행 청소년들의 줄임말)이라는 명칭이 붙어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돈이나 공간, 사람 수 등에서 어쩔 수 없이 열악한 청소년활동가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활기(청소년활동가 활동기반 조성 프로젝트)’에서는 청소년활동가들끼리 학교가 가르쳐주는 공부가 아니라 스스로 공부하는 학습공간을 준비하고, 거기에다 ‘저공비행’이란 이름을 붙였다. 어쨌든 나다의 그 친구에게서 항상 그랬듯이 또다시 ‘같이 하자’라는 제안을 받게 되었다. 무슨 말이 오가는 건지도 잘 이해하지 못하겠는 회의에 몇 번 참석했고 그 와중에도 붙잡고 있던 ‘요리모임’이라던가 ‘작곡모임’ 등을 안 하게 되었다.
그냥 그런 기억이었다. 내게 저공비행의 시작은 저공비행을 소개하는 자료에 주구장창 들어가 있던 ‘청소년의 손으로 직접 만드는’ 공부도 아니었고, ‘약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불안해서였다. 6월인지 7월인지 저공비행 시작 전에 하는 사전 모임이었던 저공비행 예행 ‘연습비행’을 하고 이리저리 운영비를 구하려고 아름다운재단이나 ‘꿈, 희망, 미래 재단’을 돌아다니면서 잊어버릴 뻔했던 학교의 모습을 다시 체감하고, 그럼에도 아무것도 안하는 나를 보면서 내가 무기력하다는 사실을 느꼈다. 그런 와중에 9월이 되었고, 다른 사람들이 며칠 만에 짜 준 커리큘럼과 아는 사람들을 반쯤 억지로 강사로 모셔 저공비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저공비행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저항한다.’라는 것에 대한 공부 모임이다. 이리저리 일에 채여 바쁜 청소년 활동가(물론 다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에게 없는 시간을 애써서 내서 만들어 진 모임이었다. 철학, 인권을 공부하는 인문학 수업과 웹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실용 지식 수업으로 나누어 졌고 인문학은 화요일에, 웹 강좌는 목요일에 광흥창역에 있는 ‘사회과학아카데미’를 빌려서 진행되었다. 나는 화요일의 인문학 수업에만 참여하였는데 오후 2시부터 저녁 10시 정도까지 진행하는 빡빡한 일정이었다. 더군다나 나는 그 때 막 알바를 시작해서 아침에 알바가 끝나자마자 저공비행을 해야 했었다.
저공비행의 인권강좌는 초반에는 강사들을 초빙해서 그 강사들의 진행에 따라가고, 후반에 참여하는 청소년들이 자기 손으로 직접 수업을 준비해서 진행하는 프로젝트 수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많은 분들이 강사로 왔다. <인권을 외치다>로 수업을 할 때는 그 책의 저자이신 류은숙 님이, 대부분의 강좌는 인권교육센터 ‘들’의 활동가들이, 그 밖에도 청소년 인권단체인 ‘아수나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애학 수업 때는 ‘장애인차별철폐연대’ 김도현 님이 왔다.
고공비행과 저공비행의 아슬아슬한 고도조절
내가 저공비행을 하면서 가장 신기했던 것 중에 하나는 내 자신이 안 변하는 듯하면서도 다시 보면 많이 변해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학교에서 벗어났는데도 불구하고 집중해서 공부를 하지 못했던 것이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무기력한 내 자신에 그저 자책만 하지 않게 되었다. 또한 가장 중요한 변화는 내 방식대로 남을 생각하려 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수업에 불과했던 저공비행이 내 주변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갈 때 내 이런 태도가 상대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를 알게 해 준 것이다.
강사들을 초빙해서 진행한 초반부도 흥미로웠지만 후반의 프로젝트 수업이 저공비행의 감초인 듯 했다. 프로젝트 수업은 총 네 번에 걸쳐서 이루어졌는데 둘, 셋 씩 짝을 지어서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수업을 준비해오는 방식이었다.
빈곤, 가난……. 신문이나 뉴스에서 매일매일 떠드는 소재를 가지고 첫 프로젝트 수업을 열었다. 그 날은 나를 꽤나 자책하게 했는데, 중산층에서 태어나서 용돈은 없었지만 그래도 피자를 먹고 싶을 때 피자를 먹고 외식을 하고 싶을 때 외식을 했었던 내가 느끼기에 ‘빈곤’은 그저 단어일 뿐이었다. 그 날 신문이나 뉴스의 냉소적인 관찰자로서 ‘빈곤’을 가지고 이야기를 한 내가 ‘빈곤’이 생활인 친구들에게 어떻게 느껴졌을까? 그런 태도, 어쩔 수 없이 달랐던 자라왔던 환경, 그 때문에 나오게 되는 가난에 대한 배려 없는 말들……. 그 수업은 많은 감정적인 선긋기가 있었고 서로서로를 적처럼 차갑게 대하기도 했었고 어떤 친구는 그런 분위기에 아무런 말도 꺼낼 수 없기도 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옆에는 그 날에 화를 냈던 친구가 옆에 있다. 나는 내 ‘빈곤’이라는 단어가 지금도 여전히 그저 ‘단어’만은 아닌지 확신을 못하겠다. 그래서 지금 이 친구와 그 이야기를 다시 한다고 내가 감정을 긁지 않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자기 이야기인 빈곤을 직접 준비해 와서 본인 입으로 하는 그 경험이 어떤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겠다. 그럼에도 이야기를 해준 친구에게 고맙기도 하고.
지난 시간의 일과 그 당시에 한참 보이던 내 이기심 때문에 마음속으로 잠수를 타곤 했던 때에 두 번째 프로젝트 수업인 ‘감정의 디퍼(deeper)’를 시작하게 되었다. 박민규의 소설 <더블>의 단편에 나오는 단어인 감정의 디퍼는 자기 자신을 드라마로 만드는 것, 가장 대표적인 증세가 바로 흔히 ‘중2병’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내 감정은 나만이 느낄 수 있고, 나는 세상을 홀로 살아가는 외로운 사람이고 등등……. 자신과 타인들 사이에 선을 그어놓고서 계속해서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드는 사람들을 감정의 디퍼라고 부르기로 했다.
청소년인권활동가들의 대부분은 감정의 디퍼이다. ‘평범함과 분리되어서 자신은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 같은 종류의 생각을 가지게 되기 쉽기 때문이다. 나는 청소년활동가만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비청소년(어른)활동가들도 매한가지 아닐까.
감정의 디퍼들은 자신을 세상과 분리시켜 생각하기에 급급하다. 자신만은 특별해야 하고 완전해야 한다고. 그런 점에서 <매트릭스>의 네오와 비슷하지 않을까. 매트릭스에서 빠져나오게 된 네오는 다시 매트릭스 안에 들어갈 수는 있지만 그는 ‘진짜 세상’과 ‘가짜 세상’을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 둘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다. 그 누구도 ‘인권 활동의 세상’과 ‘평범한 사람들의 세상’을 구분 짓고 오갈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내게 감정의 디퍼는 그런 맥락이었다. 차별적인 시선이나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은 나 또한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계기였다. 자신은 사회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이어야 하고 그래서 조금은 더 완벽해야 하는 강박(중2병 에너지의 원동력이다.)을 벗을 수 있었다. 나도 이 사회에서 자랐기 때문에 나를 사회에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사실. 일단 몸부림치지 않고 인정해야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이 남는다는 생각이 든다. 못난 자신이 싫어서 그 뒷수습에 모든 에너지를 다 쏟다 보면 지치는 법이니까.
그 뒤로도 두 번, 세 가지 주제를 가지고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했다. 확실히 프로젝트 수업은 그 전에 했던 강사 초빙 수업과는 달랐다. 강사 초빙 때는 의욕 없었던 친구가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할 때는 가장 말을 많이 하기도 했다. 자기가 제일 하고 싶은 이야기를 준비했기 때문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저공비행은 이제 1학기가 끝났다. 아직 2학기에 대한 구상이나 이야기가 자주 오가지는 않지만 이번 목요일에 저공비행 2학기 준비 회의를 하게 된다. 프로젝트 수업의 형식을 빌려 와서 2학기 계획을 짜면 어떨까. 정말 ‘청소년’들이 공부 모임을 준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글을 쓰면서 다시 힘을 내야겠다고 생각한다. 매번 다짐에만 그치지 않기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
덧붙임
형우 님은 교육공동체 나다에서 활동하고 있는 청소년이고, <저.공.비.행> 프로젝트 수업에 함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