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의 지배력을 빼앗는 종편 사업자 선정
종편 채널 사업자 선정 과정의 문제는 딱 잘라 ‘짜고 친 고스톱’이었다. 처음부터 누가 할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고, 조선, 중앙, 동아만 주기가 머쓱해 매일경제까지 끼워 준 것 이상 이하도 아니다. 소수의 사업자를 선정했을 경우에 발생될 ‘정치적 부담’과 ‘조중동’에게만 줬을 때 발생할 ‘정치적 시비’를 피해 맞춤형으로 사업자를 선정할 것이란 예측은 너무 완벽히 맞아떨어져 민망할 지경이다. 청와대는 하루 전날 당첨된 종편 사업자들에게 사전 통보해주고, 발표 당일 날에는 개각으로 여론을 희석하는 용의주도함을 보여줬다.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부터 '신문방송 교차 소유'와 '대기업의 언론 진출'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언론계 일각에서는 이러한 언론정책이 'MBC 민영화, KBS 2TV 분리'목적으로 공영방송 지배력을 빼앗는 방송 지형 개편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고, 이 예측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정확히 적중했다. 방송 때문에 정권을 빼앗겼다는 한나라당의 피해의식은 지상파의 영향력을 축소하는 것을 지상과제로 하는 언론정책으로 이어졌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통령의 멘토'라고 불리는 최시중 씨가 내정된 것은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종편은 '신문방송 교차소유 및 겸영 허용'이란 설계 위에서 기획, 실행, 완성됐다. 기획 단계에서는 미디어 산업의 성장이 강조됐다. 신문·방송 겸영 규제 완화를 통해 미디어 산업의 파이를 키우자며 이러한 정책적 목표는 종합편성채널로 맺어지는 논리 구조였다. 이때 종편은 미디어산업 발전 근거이자 경제를 살리는 논리로 작동했다. 이후 그 논리에 아무런 적합성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지만, 버스는 이미 떠난 후였다.
2009년 7월, 종편에 법적 근거를 부여하는 미디어 관련법 처리 당시 여야의 대치는 치열했다. ‘조중동’의 방송진출을 핵심으로 하는 한나라당의 미디어 관련법은 기습적 국회 점거와 직권상정으로 날치기 통과됐다. 이후 날치기의 법적 정당성에 대한 지루한 헌법재판소 판결 공방이 진행됐지만, 헌법재판소는 '뺑소니는 있었으나 교통사고는 아니다'라는 궤변적 입장의 정치적 처세로 일관했다.
종편 선정 이후 심해질 방송의 황폐화
지금, 종편이 꼭 필요한 것이냐는 질문은 하지 말자. 그 처리과정이 동네 자장면 가게 개업만 못했다고 비판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다. 문제는 종편 선정 이후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따져보려 해도, 지금은 추가 특혜 없이는 독자적 생존 가능성이 희박한 방송사가 무려 4개나 더 생기는 상황이 되었다. 이 종편 채널들은 이르면 올해 말부터 전파를 쏘아 올릴 것이다. 그 땐, 어떤 일이 벌어질까?
멀리 갈 것 없다. 얼마 전 지상파 3사를 비롯하여 10여 개 채널로 동시 생중계된 '대통령과의 대화'를 생각하면 간단하다. 그런 류의 방송들이 차고 넘쳐나게 될 것이다. 각종 특혜를 통해 정부에 대한 종속성이 심화될 대로 심화된 방송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정부의 선전에 기여하고자 들 것이다. 낯 뜨거운 아부와 손발 오그라드는 찬양이 '시사'의 이름으로, '보도'의 형식으로 정당화될 것이다. 방송이란 매체 속성상 인물 중심의 접근이 될 수밖에 없고, 그것은 단적으로 지금의 KBS처럼 정부 인사와 친정부적 방송인의 출연 빈도를 높일 것이다.
방송 뉴스의 ‘연성화’ 경향 역시 극단화될 것이다. MB 집권 이후 방송사 보도국의 최대 화두는 '생활밀착형' 아이템이다. 말이 좋아 '생활 밀착형'이지 실제론 굳이 몰라도 되는 정보들을 호들갑스럽게 전하는 흥미 위주의 보도가 급격히 늘고 있다. 민감한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언론이 발언하기 힘든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심층 보도의 검열은 심해지고 있다. 방송 뉴스만 봐서는 도무지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다. 종편 채널이 보도 경쟁에 참가하면 이러한 경향은 롤러코스터의 속도로 빨라질 것이 자명하다.
드라마와 예능의 경쟁이 방송 자체를 황폐화시킬 것도 자명하다. 한계가 명확한 광고시장을 나눠 가져야 하는 입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자극적이고 훨씬 선정적인 콘텐츠를 전면 배치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종편이 치고 나가면 지상파라고 해서 자제하기 힘든 것이 현재의 방송 환경이다. 연예인들의 신변잡담을 바닥까지 파헤치는 형식이나, 선정적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위한 짝짓기 형식의 프로그램, 그리고 경쟁 만능주의를 강조하는 오디션 프로그램까지, 너무 한 것 아니냐는 케이블의 포맷이 불과 몇 개월 만에 지상파의 간판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는 풍토에서 종편이 가세한 이후의 드라마/예능 시청률 경쟁은 참담한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미국에서 미디어전문지 '페어'를 창간한 제프 코헨은 루퍼트 머독이 소유하고 있는 '폭스TV'가 등장한 이후 미국의 방송 환경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의 뉴스는 대부분 오락쇼나 마찬가지다. 사회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국민들에게 정보를 주는 시간이 아니다. 뉴스라고 할 수 없다. 오락을 제공하고 시청자들을 구경꾼으로 만들어 버린다. (폭스TV 이후) 뉴스는 모두 쇼로 변했고, 다들 흥미로운 뉴스거리를 포착해서 연속극으로 둔갑시킨다. 미국 국민 전체가 연속극의 주인공에 대해 잘 알게 만든 후 그 연속극에 열중해서 매 시간 눈을 떼지 않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게 만들다."
폭스TV 초창기, 전직 플레이보이 모델 안나 니콜 스미스는 미국 뉴스의 중심에 섰다. 26세 때 89세의 석유재벌과 결혼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산 그녀에 대해 폭스TV를 비롯한 언론은 연일 특집을 편성하고, 그의 죽음에 대한 추측 보도로 뉴스 시간을 채웠다. 시청률은 폭발적이었고, 다른 매체들까지 폭스TV를 따를 수밖에 없게 됐다. 미국의 미디어단체들은 그녀의 죽음을 대하는 방송의 태도가 '넬슨 만델라'의 사망 사건보다 더하다고 평가했다.
지금도 한국 방송은 석해균 선장의 병세의 보도는 건국 이래 한 개인의 병세에 대한 가장 집중적인 관심이라고 할 만큼 과보도를 쏟아내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과보도의 뒤편에는 정부의 1차 작전 실패에 대한 '엠바고'(보도유보) 요청에 동조한 언론 카르텔이 있다. ‘아덴만여명’작전에서 선원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었다는 점과 서방 국가의 폐기물 투척과 물고기 싹쓸이에 맞서 생존을 위해 해적이 된 소말리아인들의 삶은 언론의 관심 대상이 되지 못한다. 차분한 사실관계 전달과 냉정한 분석을 기대할 수 없는, 그저 우리의 영웅 석 선장이 어서 일어나기를 간청하는 화면과 지면만 가득할 뿐인 언론이 우리에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종편 채널은 그 자체로 반인권이 될 것이고, 또한 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흔한 말로 언론을 '사회의 공기'라고 한다. 사회의 공기가 일산화탄소로 채워진다면, 인권의 숨을 내쉬는 것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버거울 것이다. 언젠가 정태춘이 '종로에서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고 했는데, 진짜 그런 날이 올 것이다.
덧붙임
김완 님은 매체비평지 미디어스(www.mediaus.co.kr)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