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의 당선 소식을 접하면서 눈물짓는 많은 흑인들의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있었다. 그의 대통령 당선은 그 자체로만도 세계사적인 사건이다. 1960년대 흑인민권운동을 이끌던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당한 뒤에 미국의 흑인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래서 흑인들 중에 경제적으로 중산층에 편입되는 이들도 생겨났다. 그렇지만 이들이 흑인들의 만성적인 빈곤구조를 해결한 것이 아니다. 흑인 사회를 벗어나서 백인사회로 떠나갔을 뿐이다.
오바마가 흑인들의 빈곤과 불평등, 그리고 미국사회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것으로 기대한다는 희망을 언론들은 보이지 않고 있다. 다만 흑인들의 역할모델로서는 기능할 것이라고는 한다. 인종차별을 완화하는 데는 기여할 것이겠지만, 제국주의적 미국의 역할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는 시장을 규제하고, 중산층 이하 계층의 감세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하고,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하겠다고 선거운동 중에 공약한 바가 있어서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를 변화시킬 것으로는 보인다.
이명박과는 확실히 다른 오바마
그러므로 그는 이명박과는 다르다. 웃을 일 없는 현실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가끔은 웃는 일을 만들어준다. 자신과 오바마가 닮은꼴이라고 했다지 않는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좌파로 몰던 이 나라의 보수들도 오바마는 좌파가 아니라고 한 입으로 말하고 있다. 정책을 놓고만 보면 노무현보다 한찬 좌로 가고 있는 오바마인데도 말이다. 역시 이 나라의 보수들은 미국이라면 기를 못 쓴다. 상전 미국의 대통령을 좌파라고 우길 수는 없지 않겠는가.
미국발 금융위기는 실물경제로 급격하게 실물경제로 옮겨가고 있다. 미국의 경제는 대공황 이후 가장 긴 경기침체에 빠져들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GM 자동차를 살릴 것인가를 논하고 있고, 은행권들의 감원 회오리가 몰아치고 있다. 그에 따라 당연히 미국 소비자들은 소비를 줄이고, 시장은 얼어붙어 있다. 미국시장에 수출을 해서 살아왔던 한국의 수출기업들이 초비상에 걸린 것은 당연하다.
미국과 유럽국가들을 중심으로 신 브레턴우즈 체제를 짜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국제적인 수준에서 투기자본을 규제해야 한다는 점에는 합의를 하면서도 구체적인 대안에는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다. G7이 아니라 G20을 중심으로 새롭게 경제 질서를 짜야 한다고는 하지만, 각국이 자국의 경제위기를 넘기 위해 각자의 갈 길을 가는 상황은 앞으로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심화시키는데 일조할 것이다. 어디서부터 다시 폭발성 있는 폭탄이 터져 나올지 모를 일이다. 세계적 차원에서 공황이 진행 중이라는 말이 좌파 정치경제학자들만의 예측은 아닌 게 작금의 현실이다.
닥쳐올 구조조정의 칼바람
대강 세계경제를 예측하는 전문가들은 내년 3, 4월에 가장 심각한 위기가 올 것이라고 한다. 중국마저 무너질 것이라는 예측이 동시에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매년 경제성장률이 10%를 웃돌던 중국경제가 거품이 꺼지면서 5%대 이하로 성장률이 떨어지면, 전 세계에 미칠 양향은 가히 폭발적일 것이다. 미국 시장에 이어 중국 시장까지 얼어붙을 때 한국으로서는 수출이 마이너스로 떨어질 수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국내에서는 벌써부터 인력 감축을 위한 구조조정본부들이 기업들마다 들어서고 있다. 실제로 라인 가동을 멈춘 공장들이 생기고, 비정규직 노동자들부터 감원하고 있고, 정규직 노동자들의 잔업도 줄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이 더욱 심화된다면, 그래서 겨울과 내년 봄에 집중적으로 해고 바람이 불고, 구조조정이 단행되면 거리에는 실업자들도 넘쳐날 것이라는, 매우 고통스러운 예측이 가능하다. 노숙인들이 다시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자살자가 속출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런 불행한 사태가 바로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인가. 정부나 한나라당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한사코 사수하려고 몸부림이다. 건설업을 살린다고 미분양 아파트를 사준다고 하고 은행들을 압박한다. 은행들은 건설업의 부실화가 어느 정도인지 몰라서 서로 눈치를 보면서 선뜻 나서지 않으니 대통령이 나서서 은행을 압박한다. 역시 건설업체 CEO답다. 그러면서 조금 남아 있는 기업에 대한 규제마저 이번 기회에 확실히 풀려고 작정하고 있다. 금산분리 완화와 출총제 폐지 법안이 올라가 있다. 조중동이 방송업에 진출할 수 있도록 신문법과 방송법도 개정한다고 한다. 물 민영화, 의료 민영화 등 공기업 민영화를 위한 법적 토대도 마련한다. 이와 같이 기업이 이익을 낼 수 있는, 즉 기업이 경제위기에서도 최대한 착취를 최대한 할 수 있도록 공공영역도 모두 시장에 내맡긴다는 정책을 밀어붙인다. 헌재에서 결정난대로 종부세를 완화하겠다고 서두른다. 자신들의 계급의 이익을 위해서는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겠다고 결기를 세운다. 참으로 계급이기주의를 법이란 이름으로 관철시키려고 하지 않는가.
이명박 식의 독재 시스템을 완성할 12월 국회
그런 한편 저항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서 이제는 의회정치도, 여론정치도 포기하겠다는 선언을 하고 있다. 국정원의 권한을 강화하는 법안을 정부와 한나라당이 5개나 내놓고, 집시법 개악안을 마련하고 있는 점이 바로 그에 대한 증거이다. 왜 이 시점에서 국정원의 권한을 강화하기 위한 법안들을 줄줄이 내놓고 있을까. 국정원법 개정안,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 테러방지법 제정안, 국가사이버위기관리법 제정안, 비밀보호법 제정안 등 이들 5개 법안 중에서 어느 한 가지 법안만이라도 국회를 통과하게 되면 국정원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다시 장악하게 된다. 오프라인에서만이 아니라 온라인상에서도 일상적인 감시와 통제를 할 수 있고, 정부 부처들을 실질적으로 지휘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국정원은 이메일과 핸드폰 도청도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합법적인 권능을 부여받게 된다. 대통령은 독대하는 국정원장으로부터 국정원이 일상적으로 사찰한 정보들을 직접 들을 수 있고, 이에 따라 의회나 정부 부처의 의견보다는 국정원이 제공하는 정보를 더욱 신뢰하게 되며, 국정원장은 대통령의 입맛에 맞게 정보를 가공하게 된다. 즉 정보정치의 시대로 넘어가게 된다는 말이다. 국정원은 오로지 대통령과 정권의 안위를 위해서 얼마든지 정보를 가공하고, 정치인과 기업인을 비롯해 전 국민을 감시하게 된다. 개인정보파일마다 다시 두툼하게 개인정보들이 모여질 것이다. 국민들의 저항의 움직임은 미리 국정원에 포착되고, 이에 따라 경찰과 군대까지 동원하여 국민들의 저항을 사전에 진압하게 될 국정원을 우리는 보게 될지 모른다.
그래서다. 12월 국회가 걱정되는 것은. 결국 이명박 식의 독재위한 시스템을 법적으로 완성하는 국회가 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경제 시스템을 더욱 신자유주의적으로 변화시킬 법안과 국정원을 중심으로 국민 감시체계를 더욱 확실하게 짤 법안을 막아야 할 힘이 야당에게도 없고, 진보운동진영에도 없지 않은가. 언론들이 ‘한편 정당’이라고 비웃듯이 야당인 민주당은 자신들의 정체성마저도 보여주지 못한다. 5석의 민주노동당은 17대에 비해서 의제를 치고 나가면서 국민들에게 정책대안을 제시하지도 못한다. 경제위기가 가져올 엄청난 후과에 대해 진보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전혀 준비가 없지 않은가. 당장 문제의 법률안을 막아내고자 결기를 세우고 투쟁할 기세도 없기 때문에 더욱 걱정이 된다. 한나라당은 정략적으로 12월 31일에 예산안과 함께 법안을 무더기 처리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이를 막을 힘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12월 10일, 인권의 이름으로 연대하는 날
12월에는 인권사에서 기억해야 할 날들이 꽤나 많이 있다. 우선 12월 1일은 국가보안법 제정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최근에 사회주의노동자연합 관련자들에 대해서 검찰이 영장을 재청구했지만 법원은 이를 다시 기각했다.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고, 이적단체라는 소명이 부족하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법원이 주장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위를 위법의 판단 잣대로 유지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12월 1일은 또 세계에이즈의 날이다. 에이즈 감연인들의 인권을 생각할 수 있는 날인 것이다. 그리고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이기도 하다. 12월 3일에는 세계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의 권리가 선언된다. 12월 6일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인권선언도 준비되고 있다.
그리고 12월 10일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세계인권선언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을 맞아 ‘2008 인권선언’이 준비되고 있다. 다양한 현실의 요구들을 릴레이선언으로 발표해왔던 그간의 과정이 인권선언으로 집대성될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 인권선언은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럴싸한 기념식으로 대충 넘어가는 12월 10일이 아니라 인권이 무시되고, 묵살되고, 버림받는 현실을 넘자는 투쟁을 다짐해야 하는 날이다. 실제로 투쟁에 나서는 이들이 자신들의 절박한 요구들을 걸고 연대하는 날로 기념해야 할 일이다. 우리의 현실이 참담할수록 연대의 힘으로 야만의 질서를 깨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 실현되는 사회적인 질서와 국제적인 질서를 위해 투쟁을 결의하는 날이다. 이날을 시작으로 다시 겨울의 전열을 가다듬는다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이후 투쟁의 새로운 기운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인권이 조약이니 헌법이니 법률의 조항으로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에서 드러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래서 인권의 이름으로 반인권 질서를 강화해가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맞서 싸우는 것, 신자유주의를 거부하고, 새로운 인간적 질서를 만들자고 합의해내는 일이 지금은 필요한 때다. 그렇게 세계인권선언 60주년과 12월을 맞았으면 좋겠다. 인권이란 이름으로 연대하는 가운데 희망의 싹이라도 일군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덧붙임
* 박래군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