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한 활동가들과 마을 여기저기를 살펴보다가 어찌어찌 강정 포구를 거쳐서 구럼비에 도달했다. 사실은 마을 삼촌들을 쫓아서 간 것인데, 그곳이 구럼비라는 멋진 이름을 가졌다는 것은 그 이후에나 알았다. 삼촌들은 중덕바위라고 불렀다. 눈이 부시도록 푸른 바다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그리고 맨발로 서 있으면서 진가를 알게 된 구럼비 바위는 따뜻한 사람의 품과 같았다. 맨발로 걷고 푸른 바닷물과 용천수를 오가면서 이 바위가 깨어지고 부서지고 콘크리트로 매워진다는 생각을 하니 턱! 가슴이 막혀왔다. 동요 '노을'의 배경이 되었다던 대추리 황새울의 너른 들녘을 속수무책으로 짓밟힐 때가 생각났다. 국책사업 더구나 국방사업은 어떻게 해도 막아낼 수 없는 것 아닌가....!
하지만 구럼비에서 바다를 바라보던 그 감동은 그 무엇과도 바꾸기 힘든 것이었고, 그곳에서 살아가며 자신들의 터전을 지켜내기 위한 삼촌들의 끝없는 싸움은 강정으로의 발걸음을 멈출 수 없게 했다. 그리고 이제 강정마을은 '우리마을'이 됐다. 제주 대부분의 하천이 비가 와야만 물이 흐르지만, 강정천은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른다. 이 물을 서귀포시민 70%가 사용하고 있다. 물이 귀한 제주에서 물 많던 강정은 농사가 잘되어서 예로부터 '일강정'이라고 불리며 마을 사람들의 자부심이 되었다. 이 강정에 물이 마르지 않는 이유는 냇길이소라는 용천수 연못 때문이다. 은어, 맑은 물, 암석, 폭포라는 네 가지의 길상이 있다고 해서 냇길이소인데,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신성한 기운이 흐른다. 강정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은 머리를 풀어헤친 할머니가 누워있는 모습을 닮았다...... 이 아름다운 강정을 자랑하고 싶다. 얼마나 아름다운 동네인지, 얼마나 풍요로운 동네인지를 말이다
이 풍요로운 동네가 지금은 공권력의 희생양이 된 것 같아 안타깝다. 하루라도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쉽게 연행되고 병원에 가고 때론 구속된다. 강정에 사는 사람들은 밥을 먹다가도 빨래를 널다가도 밭에서 일을 하다가도 달려나와야 한다. 밭에서 일하던 차림 그대로 공사장 정문으로 달려나온 삼촌들을 만날 때 가장 가슴이 아프다. 흙이 묻은 손과 발로 땀범벅이 되어 나타난 삼촌들의 눈에는 핏기가 서리고 입에선 거친 말들이 쏟아진다. 누가 이들에게서 일상을 빼앗아 갔는가! 이들에게 무슨 죄가 있어서 밭에서 맘 편히 일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것인가!
말로 외치던 평화가 결국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일상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밥 먹고, 빨래하고, 밭에서 일하고, 이웃들과 웃으며 이야기하는 이 모든 것이 평화다. 우리가 흔히 행복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평화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마을 벽화에 쓰여 있는 말처럼 '이 정경 그대로 평화'이다. 하지만 이것이 깨어진 강정마을에는 불안한 침묵과 고요가 흐른다.
거대 권력과 싸운다는 것은 낭만적이지도 쉽지도 않은 일이다. 끝없는 좌절과 분노, 불안이 사람들을 감싼다. 그래도 지킴이들과 주민들은 어디서 나오는지 힘을 내고야 만다. 아마도 강정의 풍요로운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루 종일 공사장 정문 앞에서 레미콘과 씨름을 하고서 멀리 보이는 한라산과 바다로 흘러드는 강정천의 아름다움이 가슴을 파고든다. 거대한 권력 앞에서 초라함을 느낄 때 한 시대를 풍미하는 권력이 아닌 영원히 지속되는 거대한 자연 속에서 뭔가 해결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 혹은 희망, 꿈이 부풀어 오른다. 비록 그 희망들이 내일은 절망으로 바뀌고 절규로 바뀌는 일도 허다하지만 그래도 그 희망이 뿌리째 없어지지는 않는다.
강정마을이 투쟁의 현장만이 아닌 풍요의 고장으로도 기억되길 원한다. 강정마을이 애처로운 마음만 뿐 아니라 희망도 함께 전달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강정마을이 아름다운 한라산과 강정천, 구럼비 그리고 더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는 '우리마을'이 되길 바래본다.
덧붙임
딸기 님은 평화바람 활동가입니다. 현재는 제주 강정마을에서 평화는 그냥 오지 않는다는 말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