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의 반복된 교과서 수정 요구
국방부는 지난 2008년에도 ‘고교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개선 요구’라는 제목의 공문을 교육부로 보낸 바 있다. 전두환 정권과 박정희 정권에 대한 미화를 주장하고, 제주 4·3사건을 비롯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 정부 공식 진상조사 결과와도 판이하게 다른 ‘개선 요구’를 보낸 것이다. 공문에 따르면 당시 국방부는 금성출판사 교과서 내용에 있는 “전두환 정부는 (…) 권력을 동원한 강압정치를 하였다”라는 부분을 지적하며 “전두환 정부는 (…) 민주와 민족을 내세운 일부 친북 좌파 활동을 차단하는 여러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수정할 것을 요구했다. 박정희 정권과 관련해서도 ‘헌법 위에 존재하는 대통령’이 아닌 ‘민족의 근대화에 기여한 박정희 대통령’으로 고치라고 요구했다. 제주 4·3사건에 대해서는 “남로당이 1948년 전국적인 파업과 폭동을 지시했고 그 같은 건국 저지 행위가 가장 격렬히 일어난 것이 제주도에서 4월 3일 발생한 대규모 좌익세력의 반란이며 그 진압 과정에서 주동세력의 선동에 속은 양민들이 다수 희생됐다”라고 수정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군의 교과서 개정 요구는 군사정권 이후 처음 있는 일로 문제가 되었는데 국방부는 2011년에도 유사한 내용으로 교과서 수정 요구를 한 바 있다.
‘올바른 역사교과서’는 성우회 작품?
보다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군의 역사 기술 개입이 국방부뿐 아니라 국방부의 외곽세력을 통해서도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디어오늘’의 분석기사(11월 7일자 보도)에 따르면, 현재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 대표적 홍보 표어인 ‘올바른 역사교과서’라는 표현은 2013년 4월, 국방부 정신전력과가 퇴역 장성들의 모임인 성우회 산하 연구단체인 성우안보전략연구원에 위탁 의뢰한 ‘청소년 나라사랑 정신 함양을 위한 군의 협력방안 연구보고서’에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이 보고서의 연구 목적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나라사랑 프로그램의 효과적인 진행을 위한 군의 협력 방향으로 되어있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현행 역사교과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 방향을 제안하는 내용이다. 보고서에 포함된 6·25에 대한 편향 서술, 건국 누락, 천안함 사건 누락 등의 내용은 현재 정부가 국정교과서를 집필해야 하는 이유로 주장하는 것과 거의 동일한 내용이다. 성우회는 이보다 앞선 2013년 1월, 범국민 국가정체성 및 애국심을 고취하는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의 친서를 당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전달한 바도 있다. 성우회뿐 아니라 다른 군 관련 단체들의 움직임도 주의 깊게 읽힌다. 정부가 국정교과서 강행을 발표한 10월 12일로부터 일주일 뒤인 10월 19일, 육군사관학교 총동창회는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의 국정교과서 편찬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육사 총동창회 김충배 회장(예비역 중장)은 기자회견에서 중·고교에서 편향·왜곡된 검정교과서로 오도된 역사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이 군에 입대해 대한민국을 지키려면 역사적 진실의 백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10월 27일, 또 하나의 우익·보수를 대변하는 군 단체인 재향군인회는 전국 235개 각 지부에서 일제히 역사교과서 국정화 지지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결의대회에서 재향군인회는 현 교과서가 좌편향 되어있다며 역사의 다양성은 대학에 가서 공부해도 늦지 않다고 주장했다. 다음날인 28일에는 ROTC 중앙회도 성명을 내어 국정교과서 집필에 반대하는 지식인들을 국론 분열의 주범이라고 겨냥했다. 육사 총동창회나 ROTC 중앙회에는 군 간부 출신의 예비역뿐 아니라 현역 간부들도 회원으로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국방부와 그 외곽단체들이 조직적으로 정부의 국정교과서 정책에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을 피할 수 없다. 지난 11월 4일, 국사편찬위원회 김정배 위원장은 국정교과서 집필진 구성에 있어서 역사학자뿐 아니라 정치·경제·사회전공자도 필진으로 참여시킬 것이며 6·25전쟁과 관련해서는 군사전공자도 참여시킬 것이라고 발표함으로써 국정교과서 집필에 군이 개입할 수 있는 길을 터 주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기다렸다는 듯이 국정교과서 집필에 참여하겠다는 발언을 했다. 국방부와 군 관련 단체들의 움직임과 박근혜 정권의 국정교과서 편찬 강행이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판단하는 이유들이다.
반성하지 않는 군, 다시 정치사회 전면에 나서나
이러한 군의 역사교과서 수정에 대한 집착은 우리 현대사에서 군이 저질러 온 악행과 연관이 있다. 정부가 인정한 사망자만 14,000여 명에 달하는 제주 4·3사건, 그리고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2월, 경남 거창군 신원면에서 자행된 민간인 학살사건의 중심에는 군이 있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보다 지배권력의 정권 창출과 유지 도구로 이용된 군은 한국전쟁 이후에도 두 번의 군사쿠테타를 일으키고 80년 광주에서 민중들을 학살하며 이 땅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압살하는데 앞장섰다. 그럼에도 이 땅의 군대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오욕된 역사에 대해 반성한 적이 없다. 반성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노태우 군사정권 이후 30여 년 만에 등장한 민간정부였던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는 과정은 우리 역사에서 더 이상 군대가 정치의 전면에 나서는 것을 봉쇄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군대를 다시 정치에 이용하기 시작했고, 군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정치와 사회의 전면으로 나서고 있다.
군의 국정교과서 개입 위한 모든 시도 중단돼야
긴 역사의 과정에서는 공·과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잘못된 것을 없다고 해서 없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미화한다고 해도 아름다워지지 않는다. 잘못된 것은 냉정히 평가하고 반성해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역사를 기술하는 가장 큰 이유다. 일본 아베 정권이 일제하 우리 민중에게 저질렀던 잘못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 행태에 우리는 모두 분노한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그들의 잘못된 역사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다시 오래전의 시간대로 회귀하고 있으며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박근혜 정권은 아베 정권과 같은 잘못을 범하고 있다. 국정교과서는 철회되어야 한다. 더욱이 그 잘못된 역사 기술에 군까지 개입해서는 안 된다. 특히 군대는 기본적으로 적대감을 통해 움직이는 조직이다. 나(我)와 적(敵)을 구별하는데 능하며, 대결적 의식이 충만한 조직이다. 이런 군대가 당대의 다양한 정치적 맥락을 고려하면서 총체적 사회 상황에 대한 객관적 기술을 할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무엇보다 이 땅의 군대는 이미 우리 국민들에게 큰 상처와 고통을 준 역사를 갖고 있다. 한국군은 역사적 평가의 대상이지 주체가 될 수 없으며, 지금은 그 잘못된 역사에 대한 진지한 평가와 반성이 필요한 시간이다. 군의 국정교과서 개입을 위한 모든 시도들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덧붙임
박석진 님은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