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삐 광화문에 가려고 택시를 탔다. 잘 가고 있는데, 함께 탄 활동가가 사무실에 휴대폰을 두고 왔단다. 다시 돌아 가야하는 상황이었는데, 택시 기사님께 말하기가 민망한 마음에 더듬거리며 혹 왔던 곳으로 돌아가 주실 수 있냐 물었다. 그랬더니 대뜸, “더듬거리지 말고 똑바로 말하세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다시 돌아가려면, 재빨리 차선을 옮겨야 하는 상황이긴 했다. 무안해서 얼굴이 빨개졌다. 같이 있던 활동가가 다시 길을 설명했고, 놓고 온 걸 찾아서 최종 목적지인 광화문에 도착할 때까지 기사님께 내가 하는 말은 무시되었다. 가는 도중, 이 쪽 길로 가달라는 거예요, 하고 덧붙여 설명하려고 하니 “제가 말하고 있잖아요” 하면서, 왜 이 길로 가야하는지 설명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결국 좌회전이 안 되기 때문에 너희가 원하는 곳 바로 앞까지는 못갈 것이라는 말도 함께. (하지만 막상 근처까지 오니 그 길은 좌회전이 가능했고, 기사님은 말이 없었다) 나는 왜 이런 무례한 언사에 기분 나쁨을 표현하지 못했을까. 광화문으로 오는 내내 내가 남자라도 이런 취급을 받았을까, 누군가는 이것을 과도한 예민 반응이라고 하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머릿속이 복잡했다.
#죄송하다
나는 평소에 택시를 타고 영수증을 받아야 할 때, “죄송한데, 영수증 좀 주시겠어요?” 라고 말하곤 하는데 이것은 정말 고치고 싶은 버릇 중에 하나다. 죄송하지 않은 일에 죄송하다고 말하는 것. 영수증을 달라고 하는 것은 ‘죄송한’ 일이 아닌데도 자동적으로 죄송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고치고 싶은 이유는 모든 일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 것을 그만하고 싶어서다. 자기반성 보다는 더 자주 자기비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광화문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했던 생각 중 하나는 ‘내가 또박또박 빨리 잘 말했으면 안 그랬을까?’도 있었다. 나는 왜 (차선을 빨리 바꿔야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렇게 더듬거리며 말했을까, 탓하며 내가 너무 초라해지는 것이었다. 그러고 싶지 않다! 어째든 광화문에 도착했고, 값을 지불해야 했다. 나는 오늘에서야 그 버릇을 말끔히 고칠 수 있었다. “영수증 좀 주시겠어요?” 죄송하지 않았다.
#광화문
사과해야 할 사람들이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다. 참사의 진상은 아직 어둠 속에 있다.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 길을 함께 가고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 광화문. 지난 7월 8일(금) 저녁 7시부터 11일(월) 저녁 7시까지, 세월호의 온전하고 조속한 인양을 위한 72시간 철야 기도회가 열렸다. 계속 일정이 미뤄지고 있는 세월호 인양 작업을 조속히 추진하라는 대국민 압박 활동이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7월 11일 예정되어 있던 세월호 선수들기가 또 연기되었다. 벌써 4번째다. 해수부는 최종 인양이 8월말 이후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뼛조각 하나라도 찾고 싶은 가족들의 마음은 기대와 절망을 오간다. 불교에서 중생들의 번뇌를 108가지로 보았다던데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미수습자 가족들의 마음은 그 어디쯤에 있을까. 108배를 하면서 미수습자 9명을 생각했다. 박영인, 남현철, 조은화, 허다윤, 고창석, 양승진, 권재근, 권혁규, 이영숙.
# 모든 것의 자리
참사 초기, 진도 체육관에서 시신이 먼저 수습된 가족들은 아직 남아 기다리는 가족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먼저 찾아서, 더 기다리지 않아도 되어서, 어떻게든 보내줄 수 있어서, 미안하다, 미안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서로에게 미안할 일이 아닌데, 그렇게 했다.
무례함에 대해 아무 말 못하거나 꼭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게 될 때, 들어야 할 말을 듣지 못했을 때, 자기를 잃어버리고 자리를 찾아 헤매게 된다. 그 자리를 다시 찾는 과정은 “여기가 너의 자리야”라고 말해주는 누군가들이 있을 때 가능하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활동들이 어쩌면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수습자 9명이 있어야 할 곳은 차가운 바다 속이 아니라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들 곁이다. 세월호는 뭍으로 꺼내져서 참사의 진상을 밝혀내는데 그 역할을 해야 하며, 똑같은 참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모두의 기억 속에 자리 잡아야 한다. 국가의 자리 또한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할 때, 비로소 ‘제 자리’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임
이은정 님은 천주교인권위원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