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활동가의 편지

한국민중의 역린

역린(逆鱗). 전설 속 동물 용에게 있는 거꾸로 난 비늘. 평소에는 착한 용이지만, 건드리면 용의 화를 불러 반드시 죽는다는 어떤 방아쇠이다.

몇 년 전에 비폭력직접행동 국제워크숍에 참여했었다. ‘사회운동’의 의미와 방식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배운 자리였는데, 그때 미국에서 온 활동가가 들려준,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다.

필라델피아에 카지노가 영업할 수 있도록 허가가 났다. ‘카지노 없는 필라델피아’라는 단체에서 행동을 시작했는데, 그들이 펼쳤던 캠페인은 “카지노는 나빠요!”가 아니라 <투명성 작전(Operation Transparency)>이었다! 카지노에 대한 찬반논쟁에 휘말리는 대신, 허가를 내준 ‘게임통제위원회’가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음에 집중해서, 민원넣기, 위원회 사무실 창문닦기 등 캠페인을 진행하고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호응해서 결국 카지노 허가를 취소시켰다나 뭐라나.

이 얘기를 들으면서 생각한 것은, ‘미국에는 그래도 낚시를 걸어볼만한 몇몇 가치가 존재하는구나’였다. 내가 미국사회를 잘 알 수는 없지만, 예를 들면 투명성, 거짓말, 인종차별 등등 잘못 건드리면 누구라도 단단히 대가를 치러야 할 것 같은, 기준이 되는 어떤 가치들이 그 사회에 있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때로는 사회운동이 그런 가치들로부터 시작할 수도 있구나 싶기도 했고.

근데 우리는?? 사실 파란만장한 근현대사를 가진 한국사회에도 그런 기준이 될 만한 것들이 있을 법하다. 수십 년의 식민지배를 경험했으니, ‘친일’이라는 것에 사람들이 이를 갈만도 하고, 수십 년 동안 이어진 ‘군사독재’ 시절의 갑갑함을 떠올리며 부르르 떨만도 하다. 그런데 웬걸, 친일이든 군사독재든 아무 상관이 없다. ‘독재자의 딸’보다는 ‘엄마잃은 불쌍한’이 더 중요한 수식어라니! 아니 뭐 이런 이상한 일이. 우리가 너무나 관대해서 그런 걸까. 부정부패도, 거짓말도 괜찮다. 그때 그 시절 고문의 대명사, 그 무시무시한 안기부였던 사람들이 나와 같은 인터넷 공간에 앉아 댓글을 쓰고 있어도 괜찮다.

꼭 신선하거나 진보적인 것이 아니어도 좋다. 대부분의 성인 남성이 거쳐 간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의 대상인 군대, 그 경험이 중요하다면 육군병장으로 만기제대한 사람이 아니면 정치권에 발도 들이밀지 못하도록 할만도 할 텐데? 군납비리, 방산비리, 병역비리 이런 것에 연루된 사람들은 예비역들의 분노의 철권을 맞을 만도 할 텐데? 전혀 그렇지 않다. 아니 뭐 이런 이상한 일이. 예전에 무려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으로 지지율이 떨어졌다던 대선후보가 있었다는 시절이 오히려 순진하게만 느껴질 정도다.

“독재? 니들이 배를 곯아봤어?”, “지금 대한민국은 기성세대가 만든 거야!” 등등의 어르신들 얘기에서부터 시작해도 좋다. 설사 새마을운동의 ‘잘 살아보세’라도 어떤 기준이 되어만 준다면!! 그런데 그럼 잘 살게라도 해줘야지, 이건 뭐, ‘지금 전 세계적인 경제 불황 때문에 노동개혁 법안이 반드시 필요하니, 니들은 알아서 조지다 알아서 디지세요.’ (바르고 고운 말이 아니라 죄송합니다만,) 라는 분위기다. 중동에 나가 디지든, 여기서 삼포, 칠포하다가 디지든. 게다가 경제발전의 주역이었던 아버지, 어머니들이 노년층 일자리인 경비일, 청소일을 하시더라도, 최저임금을 올리든, 비정규직 차별을 줄이든, 고용안정을 강화하든, 집세를 내리든 뭐라도 한 가지는 되어야 웬만큼 지내실텐데 정부정책은 완전 거꾸로이고. 한 나라의 정부가 국민들에게 이렇게까지 노골적이고 직접적으로 ‘나가 디지세요’ 하는데도 괜찮다니, 그래서 헬조선이라는 말이 생겨난 걸까. ‘그래도 당신은 보수이시니 추억삼아 표 하나 몰아주고 가시면 더 좋고요.’ 헐.

얼마 전, 호주에 있는 교도소에서 폭동이 났다고 한다. 이유는 교도소에서의 금연 조치. 법적으로 자유를 제한당한 그들이지만, ‘담배’는 그들의 역린이었던 셈이다. 지금 우리들에게는 그러한 역린이 있을까. 먹고 사는데 바쁘고 정치를 제대로 돌아볼 여유도 없는 우리들을 움직이게 할 어떤 가치, 어떤 계기들. 그것이 정의감이든, 생존에 대한 본능이든, 자녀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든, 우리들 마음에 ‘역린’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보자. 그것마저 건드려지면 다같이 들고 일어나 분노의 일격을 날릴 수 있도록. (아직 조금 부족하고 애매하기는 하지만 그 역린에 ‘인권’이라고 적혀있으면 좋기는 하겠다. 유성매직으로는 말고. 흠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