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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문]국회는 ‘보여주기 식’ 법안 통과가 아니라, 아동 성폭력 근절을 위한 근본 대책을 마련하라.

 연일 보도되는 성폭력 사건과 더불어 ‘대책’들이 물밀듯이 쏟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이번 5월 국회의 법제사법위원회에는 아동 성폭력 관련 법의 개정안들이 상정되어있다.  법안의 개정 내용은 아동 성폭력 가해자의 법정형을 상향 조정하고, 아동 성폭력 사범에게 위치추적장치 부착 기간을 늘리는 것이다. 이 개정안들의 공통점은 아동 성폭력 가해자 엄벌의 의지를 강하게 표명하는 것이지만, 실제 이 개정안이 제대로 된 현실 인식에서 비롯된 실효성 있는 정책인지에 대해 우리는 매우 회의적이다.
 아동성폭력 발생 원인에 대한 잘못된 현실 진단은 잘못된 법 개정안과 헛다리 짚는 정책을 생산한다. 이에 우리는 아동 성폭력의 발생 원인과 그에 따른 정책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가해자 엄단은 법정형 상향 조정이 아니라, 가해자 처벌 가능성 확보를 통해 가능하다.
아동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법정형을 상향 조정하고, 가해자에게 전자장치 부착 기간을 늘리는 등의 개정안을 발의하는 이유는, 아동 성폭력의 발생 원인이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낮은 법적 형량’이라는 판단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현재 아동 성폭력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되고 있지 않은 이유는 가해자에 대한 법적 형량이 낮기 때문이 아니라,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처벌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가해자에 대한 법정형을 상향 조정하는 것은 검거되고 기소된 가해자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이다. 그러나 아동 성폭력 가해자가 ‘엄벌’되기 위해서는 아동 성폭력 가해 행위자가 잘 신고, 검거되고 검거된 이후 재판 과정을 거쳐 ‘처벌’이 되어야만 가능하다. 하지만 성폭력의 경우 다른 어느 범죄보다 신고율이 낮고, 신고를 한다하여도 기소되어 재판에 까지 이르는 비율도 50%정도이다. 현재 성폭력 가해자를 엄단할 수 없는 이유는 성폭력특별법상 법정형이 낮기 때문이 아니라, 낮은 신고율과 신고된 사건이 재판조차 받지 못하는 낮은 처벌 가능성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 ‘아동 성폭력 가해자 엄단’을 위해서는 관련법 형량의 상향 조정이 아니라, 가해자의 처벌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급선무이다. 이에 대한 개선을 위해 필요한 것은 아동 성폭력이 신고 되었을 때 조사와 재판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대한 적극적 개입이다.

- 성폭력 전담제가 현실적으로 이루어져서 피해 아동의 보호와 함께 범인의 검거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현재 성폭력 사건 전담 수사관제도가 있고, 전담 재판부도 시범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이의 실효성은 매우 희박하다. 성폭력 사건과 관련한 수사 방식을 개발하고, 전문성을 키워야할 전담 수사관/판사의 수요가 절실하지만, 이들의 전문성을 위한 투자도 턱없이 부족하고 보직순환으로 이동도 잦다. 따라서 현재의 성폭력 전담제는 그 취지에 맞게 개선되어 현실화되어야 한다.

- 또한 성폭력 피해의 특성상, 증거는 아동의 진술일 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성인의 관점에서 아동의 진술을 판단하면서 일관성 등을 이유로 진술의 증거력을 인정하지 않아 무혐의, 불기소 등의 결과가 발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하여 사법기관은 아동의 진술을 제대로 받기 위한 다양한 수사 기법을 개발하여 아동의 진술 신빙성을 인정해야 하며, 반복되는 진술을 피하기 위한 진술 녹화제가 현실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
- 또한 아동이었을 때 피해를 입었지만 아동이 스스로 법적 구제 절차를 밟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피해를 성인이 되어서도 고소 가능하게 하기 위해, 아동 성폭력의 공소 시효를 성인이 될 때가지 정지하거나 배제하여야 한다.

둘째. 아동 성폭력 근절을 위한 필수적 과제는 공교육에서 강화된 성/인권 교육이다.
왜 정부는 아동 성폭력 사건이 터질 때에 현실에 근거하지 않는 ‘보여주기’ 식의 법 개정안을 내놓을 뿐, 성폭력범죄를 양산하는 이 사회의 성문화를 바꾸기 위한 성/인권 교육에는 근본적 대책을 내지 않는가?

성폭력범죄는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범죄예방을 해야하는 문제이다. 이번 대구 초등학생 성폭력 사건에서도 보듯이 아동들이 접하는 ‘성 문화’라는 것은 상업주의와 결탁한 포르노화 된 매체들이고, 이 매체에서의 이미지는 이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갖는 성인식에 반영된다. 타인의 몸을 성적 대상화/상품화하는 것에 익숙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에 기반한 포르노 이미지는 아동을 피해자로, 때로는 가해자로 만든다. 이런 현실에서, 공교육의 역할은 학생들에게 성이 단지 상품/대상/혐오와 자극의 소비재가 아니라 사회적 정체성을 갖기 위해 알아야할 통합적 성/인권 교육을 시행하는 것이다. 성교육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에 기반한 사회적 규범에 대해 비판적 인식과 인권 감수성을 키우는 내용이 중요하게 포함되어야 한다.

성폭력 범죄를 막기 위해서 왜곡된 성문화를 바꿔야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왜곡된 성문화를 내면화한 개인들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그 당연한 논리를 정부와 국회는 왜 외면하고 있는 것인가?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임을 왜 모르는가? 오히려 이명박 정부는 한 술 더 떠서 학교 교육을 각 시도별, 학교에 일임하는 등 학교자율화 조치로 역행하고 있어 ‘아동성폭력 근절’의 앞날이 심히 우려스럽다.

셋째. 성폭력 가해자 교육을 위한 구체적 실행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성폭력의 70%가 서로 아는 사이에서 발생하는 범죄이다. 이는 대다수의 성폭력 가해자가 ‘소아성기호증’이나 ‘성적가학증’을 앓고 있는 환자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성문화를 내면화한 사람들임을 보여준다. 정부는 소아성기호증 환자의 치료를 강화하겠다는 치료감호법 개정에 대한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이는 성폭력이 ‘정신 이상자’가 아니라 우리 주변의 친숙한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반영하지 못 한 정책이다. 많은 수의 성폭력 가해자들이 구치소에 수감된 동안 성인식 개선을 위한 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상태로 다시 사회로 나오게 되는 현실에서, 정부는 구치소에 수감중인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성폭력/인권 교육부터 당장 실시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국제기구로부터도 폐지 권고를 받은바 있는 인권 침해적 ‘사형’을 법정형에 포함시키는 성폭력 특별법 개정안을 제출함으로써 ‘성폭력 가해자의 사회적 제거’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성문화를 내면화한 사람들이 가해자가 되는 현실에서 필요한 것은, 가해자를 사형시키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에 대한 인권/성교육/성폭력 교육의 효율적 실행이다.

넷째. 아동의 안전 확보를 위한 지역 사회의 적절한 공조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사회적 취약 아동을 위해 보육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 개입이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 아동을 돌봐줄 수 있는 지역 아동센터나 방과후 학교 등의 사회적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 각종 아동센터와 공부방, 상담소들을 좀 더 작은 지역 단위로 나누어 확충하면서 인력을 늘려야 하며 이를 위한 국가 차원의 과감한 투자가 절실하다.
또한 현재 여성부는 방과후 시간연장형 보육사업, 교육부는 방과후 교실, 보건복지부는 지역아동센터와 청소년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 기관들의 원활한 네트워크 구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원활한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제도,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지역 사회 공조 체계의 롤모델을 발굴하고, 여러 분야의 전문 활동가들의 자문을 통해 빈곤 아동의 사회 복지 정책에 대한 장기적 마스터 플랜을 세우고 그것을 실행해야 한다. 이 마스터 플랜에는 아동성폭력 피해자와 가족의 고통을 살피고 회복 지원하는 구체적 대안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와 국회에 묻는다.

아동 성폭력 근절을 위한 최선의 정책은 무엇인가? 아동 성폭력 근절을 위해 정부와 국회가 해야 할 제대로 된 역할이 무엇인가? 성폭력 근절을 위한 정책으로 여성 인권 단체에서 끈질기게 문제를 제기해왔던 수 많은 법, 제도적 장치는 그대로 둔 채, 실효성 없는 보여주기 식 강성 형벌 정책을 법 개정안에 반영하는 것은 현실을 모르는 날림 정책에 근거한 졸속 법안이다. 정부와 국회는 더 이상 아동 성폭력 근절의 실속 없는 보여주기식 법 개정안으로 국민들을 우롱하는 작태를 중단하여야 한다.
성폭력 관련법 개정을 위해서는 기존의 법적 장치에 대한 철저한 평가를 토대로, 성폭력 근절을 위해 필요한 법의 개정 내용이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보다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관련 시민 사회 단체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더 나아가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마스터 플랜에 입각한 정책을 마련, 실행해야할 것이다.

2008. 5. 15

다산인권센터, 동성애자인권연대, 문화연대, 불교인권위원회, 서울여성의전화, 인권교육센터 들, 인권운동사랑방, 인권평화국제민주연대,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진보네트워크센터, 천주교인권위원회, 평화인권연대,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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