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경범죄처벌법 시행령에 관한 이야기가 끊이질 않습니다. 처음 논란이 시작된 건 트위터에서 과다노출규정을 이야기하면서였습니다. 하의실종패션을 처벌할 것이냐는 이야기부터 미니스커트를 입으면 처벌했던 유신시대를 부활시키느냔 우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경찰청에서는 과다노출 범칙금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했습니다. 과다노출 조항은 1963년 기존 경범죄처벌법에도 있었고 오히려 처벌범위도 축소되었다는 것입니다.
경찰청 해명을 보며 처음엔 각 조항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이내 각 조항에 대한 물음보다 사람들 일상의 자질구래한 면까지 범죄로 규정하는 경범죄처벌법이 본질적으로 어떠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경범죄처벌법은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경범죄처벌법은 일제 강점기 시기에 만들어진 경범죄처벌규칙의 연장선에서 1954년에 만들어졌습니다. 독재정권 시기에는 이 법이 더욱 강화되어 시민들의 일상과 문화를 통제하는 대표적인 수단이었습니다. 미니스커트를 입었다는 이유로, 남성이 성별을 구별할 수 없게 머리를 길렀다는 이유만으로도 국가가 시민들을 처벌할 수 있었습니다.
경범죄처벌법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고 사회공공의 질서유지에 이바지함”이 목적이라고 합니다. ‘거짓신고’하거나 ‘빈집 등에의 침입’과 같은 45가지의 조항에는 사람들의 일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행위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국가에서는 45가지 조항을 우리사회의 공공질서라고 표현했습니다. 국가가 공공질서를 법률로써 규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법률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는 행위는 공공질서를 위반하는 행위로 규정되고 처벌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독재정권 아래에서 국가보안법, 안기부, 대공분소가 사회변혁세력을 억압했다면 경범죄처벌법은 사람들의 일상과 문화를 통제하는 억압수단으로 작동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청년문화의 상징이라는 미니스커트, 장발은 처벌의 대상이었습니다. 이외에도 국가가 만든 공공질서의 테두리에서 벗어나는 행위들도 경범죄로 처벌되기도 하였습니다. 지금도 남겨져 있는 조항 중 하나인 ‘물건 던지기 등 위험행위’는 사람들이 있을 만한 곳에 주의를 하지 않고 물건을 던지는 경우에 처벌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이 다칠 수 있는 행위가 위협적이란 걸 부정하진 않습니다. 사람들이 관계를 맺고 활동하면서 위험이라고 인식하며 주의하며 만드는 문화나 질서가 아닌, 국가가 직접 나서서 해서는 안 될 행위로 규정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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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의 첫 국무회의는 정부가 무엇을 주목하고 있는지를 시민들에게 보여줍니다. MB정부는 경제대통령을 표방해서인지 첫 국무회의에서 '물가' '감세'를 다뤘고, 참여정부에서는 '대구지하철 사고 이후 국가안전관리 대책 수립' '외국인 투자 제한 완화'가 논의되었습니다. 복지와 안전이 이슈였던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박근혜정부의 첫 국무회의에서 경범죄처벌법시행령 개정안이 심의·의결된 건 박근혜정부가 주목하는 문제가 '질서'임을 보여줍니다. 박근혜 정부의 '질서'는 국가가 주도하여 내용을 규정하고 시민들이 규정을 따르게 하는 것 같습니다.
경범죄처벌법 시행령 개정안 통과를 사람들이 비판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으로 보입니다. 가부장제에서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하지 말라고 하는 행동들을 가훈이나 가정질서로 만든 것처럼, 경범죄 처벌법도 같은 맥락에서 국가가 만든 법률입니다. 더 이상 시민들은 국가를 가부장제의 아버지로서 이해하지 않는데 정부는 여전히 아버지처럼 시민들을 통제하니 당연히 반발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더욱이 박근혜정부는 인수위시절 준법교육을 실시하겠다고 해서 “아직도 시민을 훈육의 대상으로 생각하냐”는 비판을 받은 적이 있기에, 경범죄처벌법개정안 통과를 보며 시민들은 어처구니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경범죄처벌법은 폐기되어야
경범죄처벌법은 국가가 질서를 주도적으로 수립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국가가 시민들의 일상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작동되어왔습니다. 이 법의 세부규정에 사회구성원들이 함께 만들어낸 질서를 포함한다고 해도 법의 본질적 성격까지 바뀌지는 않습니다. 국가가 주도적으로 질서를 만들려는 경범죄처벌법은 따라서 폐기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