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영화 <지슬>을 보고나서 한동안 몸과 마음이 힘들었다. 뭘 해도 무력감을 느꼈고 때로는 우울했고 무서웠다. <지슬> 몇몇 장면이 내 머리 속에서 반복해서 떠올랐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 계속 나를 일깨우는 그런 느낌. 특히 알 수 없는 한기와 배고픔, 살기가 피부 ‘감각으로’ 느껴질 때, ‘추체험이란 이런 것이구나.’라고 혼자 감탄사까지 나왔다. 가령, 영화 속 장면에서 사람을 총으로 쏘아도 그 아픈 느낌이 어떤 것인지 상상할 수 없기에 그냥 영화 속 장면에 불과한데, 영화 <지슬>에서 느껴지는 한기와 배고픔, 살기는 나에게 실재하는 감각으로 다가왔다.</p>
<p>영화 <지슬>은 시와 사진의 언어이다</p>
<img src="http://old.sarangbang.or.kr/kr/saram/220/img/jisul-poster.jpg" alt="지슬 포스터" border="0">
<p>영화 <지슬>은 1948년 겨울 ‘해안선 5km 밖 모든 사람들을 폭도로 간주한다’는 미군정 소개령으로 인해 3만 주민들이 국가권력에 의해 희생된 사건을 영화로 만들었다. 제2회 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된 <레드헌트>가 생존자들이 인터뷰로 전하는 4.3이라면 <지슬>은 시각으로 말하는 4.3이다. <레드헌트>가 인터뷰집이라면 <지슬>은 산문이며 시다. 영화를 전공하지 않은 감독 오멸 덕분에 우리는 기존의 영화 문법과는 아주 다른 새로운 영화를 만날 수 있었다. 감독 오멸은 <지슬>을 통해 4.3을 영화의 언어보다는 ‘사진의 언어’로 표현했다. <지슬> 속 장면 하나하나는 사진 ‘프레임’으로 재생해도 손색이 없다. 아마 이런 시각적인 요소로 인해 국가폭력을 추체험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p>
<p><지슬>은 명령을 따르고 따라야만 했던 군인, 군 시스템이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또한 국가폭력 앞에서 주민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어떻게 살아남고 사라져갔는지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국가폭력이라는 것이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농사를 짓고, 자식처럼 돼지를 키우는 사람들, 아이 낳고 부모를 부양하는 그냥 보통 사람-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 지도 드러난다.</p>
<p>영화 도입부부터 눈물이 흘러서 그냥 하염없이 울다가 후반부에서 뭔가 내 안의 결기 같은 것이 생겨났던 것 같다. 다리가 아파 함께 피난갈 수 없었던 할머니가 지슬(*제주도 방언으로 감자)을 품에 안고 죽어간다. 다시 어머니를 모시고 가려했던 아들은 어머니 품에 있던 지슬로 인해 생명을 이어간다. 내 안의 결기는 <지슬>을 품에 안고 죽어간 할머니를 보면서 생겨난 것 같다.</p>
<p>빨갱이가 대체 뭐길래……</p>
<p><지슬>은 50년 전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현재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슬>을 품에 안고 죽기 전에 할머니와 군인이 대화를 나눈다. 군인은 할머니를 칼로 찌르고 나서 툇마루에 앉아있다.</p>
<p>칼에 찔린 할머니는 서서히 죽으면서 말한다. “나도 자네만한 아들이 있네.”</p>
<p>피범벅인 된 얼굴로 군인이 말한다. “내 어머니를 빨갱이가 죽였어요. 빨갱이는 다 죽여버릴 거에요.”</p>
<p>할머니는 슬픈 눈으로 군인을 바라보며 말한다. “빨갱이가 대체 뭐길래…….”</p>
<img src="http://old.sarangbang.or.kr/kr/saram/220/img/redhunt.gif" alt="영화 레드헌트 중" border="0">
<p><지슬>이 현재 우리의 이야기라고 하는 이유는 4.3이라는 소재를 다루었다는 점에 대해 인터넷 댓글로 달린 글을 보면서이다. <지슬> “좋아요”에 반대로 “그저 그래요”에 달린 글을 읽어보면 ‘당시 제주는 빨갱이 손에 장악되었고, 국가로서는 그들을 잡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 빨갱이는 죽어도 된다.’ 등등의 댓글이 달려있다. 빨갱이 색출과 처단 앞에 인간으로 이성과 감성이 무너지고 오직 광기만이 남아있는 그 시각으로 우리는 되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새로운 빨갱이 ‘종북’세력으로 이 나라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호들갑 떠는 그들을 보면서 역사란 돌고 도는 것일까 자문해보기도 한다. <img src="http://old.sarangbang.or.kr/kr/saram/img/icon_ending.jpg" border="0" alt=""></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