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부설 전쟁과여성인권센터 연구팀/ 펴낸곳: 여성과인권/ 359쪽/ 2004년 5월
"그걸 다 기억하고 살았으면 아마 살질 못했을 거예요. …나 혼자 말하고 나 혼자 위로받고, 그렇게 살아요 시방" 13살 어린 나이, 길원옥 할머니는 가막소 간 아버지의 벌금을 벌어보겠다고 만주로 건너가 '위안부' 생활을 시작했다. "술 팔고 노래하는 곳"이라는 건 알고 갔지만 위안소라는 곳이 "짐승보다 못한" 경험을 해야 하는 곳이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 서른도 되기 전에 자궁을 모두 들어내야 했던 길 할머니의 경험과 기억은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라는 공식담론을 아래로부터 해체하지 않으면 결코 들리지 않는다.
이 책은 이렇게 기존의 '위안부' 개념의 해체를 용기있게 시도한다. '위안부'가 되기 전에 순결한 처녀였는지, 강제로 끌려갔는지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위안소라는 곳이 체계적인 성착취 장소였다는 것이 핵심이라면, '위안부'라는 개념도 일본군에 의해 성 착취를 당했던 모든 여성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재구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온 5권의 증언집이 모두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큰 전환인 셈이다.
책에는 길 할머니를 포함하여 12명의 '위안부' 경험자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우리 사회가 듣고 싶어하는 '위안부로서의 생활에 관한 증언'을 넘어, 할머니들이 삶의 주체로서 자신의 생애를 기억하고 구술한 '그 너머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재현하고 역사화하기 위한 노력의 결실이다. 특히 할머니들을 만났던 연구자들의 참여기는 할머니들이 연구자들과의 만남에서 왜 자신의 경험에 대해 침묵하거나 왜곡하거나 과장하거나 회피하였는지 그 의미를 함께 고민해 보도록 한다. 또 구술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할머니들이 보였던 심경과 태도의 변화, 구술이라는 행위가 할머니들에게 갖는 의미, 구술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복잡한 요인들도 생생하게 전달받게 된다.
몇 차례에 걸친 인터뷰를 통해서도 끝내 듣지 못한 이야기들, 얼굴을 숨긴 채 지난 세월의 고통으로 주름진 손만을 드러낸 한 할머니의 사진, 여전히 침묵의 벽과 '죄지은 자'라는 낙인 뒤에서 인터뷰를 거절한 할머니들의 이야기도 가슴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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