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이 가오리,『섹스 자원봉사 - 억눌린 장애인의 성』, 육민혜 옮김, 아롬미디어, 2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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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책읽기모임 ‘꿈꾸는사람들’은 2차례에 걸쳐 ‘장애인의 성’에 관한 책과 다큐멘터리를 보고 이야기를 나눴다. 결코 양립할 수 없을 것이라 여겨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섹스와 자원봉사의 결합’. 하지만 장애인의 성이라는 영역에서는 섹스와 자원봉사가 결합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고, 이것은 비장애인에게도 섹스란 무엇인가, 즉, ‘비장애인(에게)도 섹스를 자원봉사(서비스) 할/받을 수 있는가’라는 근원적 물음을 던지게 만든다.
단행본 『섹스 자원봉사 - 억눌린 장애인의 성』은 일본의 프리랜서 작가가 ‘장애인의 성’이라는 주제로 2년 가까이 취재한 르포들을 엮은 것이다. 영화 <핑크 팰리스>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서동일 씨가 직장을 그만두고 ‘장애인의 성’이라는 주제로 1년 넘게 촬영한 장편 다큐멘터리 작품이다. <핑크 팰리스>는 ‘섹스 한번 해보는 것’이 평생 소원인 48세 중증뇌성마비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섹스와 자원봉사는 결합할 수 있는가? 사실 이러한 물음 자체가 지극히 비장애인적인 시각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러한 물음 속에서 ‘억눌린 장애인의 성’이라는 본래의 문제가 어느덧 망각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꿈꾸는 사람들’은 ‘섹스 자원봉사’에 대해 명확히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어쩌면 이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직면한 어려움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번에는 조금은 관점을 달리하는 두 명의 이야기를 모두 싣기로 했다.
『섹스 자원봉사』에는 자원봉사, 호스트, 장애인 전용업소, 부부관계 등으로 성욕을 해소하는 일본과 네덜란드 장애인들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자원봉사를 한다는 것은 섹스대상이 되어주는 것 외에도 자위를 돕거나 성교육을 하는 등의 폭넓은 활동을 의미한다. 책은, 이미 성욕을 어떤 방식으로든(봉사자에게서 혹은 호스트에게서) 어느 정도는 충족시키고 있는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따라서 그 결과 얻어지는 부작용에 대해 우리는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의 여성성을, 남성성을, 가장 근원적으로 확인하고 싶은 욕망을, 간단히 적나라하게 말해 성욕을 이런 장치가 하나도 없어 평생 충족시키지 못하는 장애인들에게 이런 식의 관계는 의미가 없다라고 교육시키는 것이 맞는 일일까. 판단은 그들이 하는 것이다. 섹스 자원봉사자들의 행위가 동정이든 성욕이든, 호스트의 행위가 돈벌이이든, 그것은 받아들이는 사람이 직접 경험하고, 직접 판단할 문제이다.
난 일생의 단 한 소원이 여자와 자보는 것이라는 슬픈 고백을 하는 48세의 장애인 앞에서, 그에게 그것은 도덕적, 법률적으로 나쁜 일이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 그들이 당신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 당신은 봉사받는 대상이 아닌 주체여야 한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풀어놓을 자신이 없다. 수십 년 동안 억눌리고 짓밟힌 한 사람의 소원 앞에서, 손을 가누지 못해 샤워기 물줄기로 자위를 대신하는 장애인의 이야기 앞에서, 나는 비장애인인 나의 도덕적 가치로 그에게 말을 건넬 수 없다.
「성매매는 비장애인에게 바람직하지 않다」라는 도덕적 명제는 비장애인이 매매춘 외의 다른 방법으로 성욕을 만족시키거나 성욕을 해소할 수 있다는 기본명제 위에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매매 외에 성욕을 해소할 수 없는 장애인에게, 섹스 대신 자아실현 같은 고차원적 욕망을 선택할 수도 없는 장애인에게, '바람직한 성욕해소'라는 단어는 과연 얼마나 당위성을 가질 수 있을 건인가.
책에서 이야기한 '섹스 자원봉사'를 나는 지지도, 반대도 할 수 없다. 분명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지지이나, 내가 할 용기도 의지도 없다는 점에서 난 지지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서울역 혹은 용산역 어디에선가 최동수 아저씨가 내게 펜과 종이를 주며 성매매 여성에게 보여줄 쪽지를 - “난 48세의 중증 장애인입니다. 내 소원은 여자와 자보는 것입니다. 충남에서 서울까지 올라왔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얼마면 되겠습니까?”라는 - 대신 적어달라고 힘겹게 부탁해 온다면, 그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
ps 1. <핑크 팰리스>라는 장애인들의 성에 관한 다큐에서, 최동수 아저씨는 용산역에서 몸 파는 여인들을 보며 “저 여자들한테 주긴 아깝지만……”이라는 말을 한다. 그에게도 역시 왜곡된 성의식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것은 비장애인에게도, 장애인에게도 존재할 수 있는 편견이다. 그 스스로 상대와 정당하게 거래를 하면서도 상대를 멸시하고 폄하하고 있는 성의식 자체를 교육시켜야 하는 문제이지, 이 이야기가 '장애인의 성욕'을 충족 대신 다른 것으로(ex. 교육) 해소해야 한다는 논리의 근거는 될 수 없다.
ps2. 성매매에 관하여. 최동수 아저씨는 차악(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누군가에게 상처주지 않고, 현실적으로 가능한)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짐승도 할 수 있는 섹스를 이 땅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위법이지만, anyway, there's no rule without exception.)은 그뿐이었다. 성매매에 대한 논의가 지금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 세상과 구조와 장애인의 성의식에 관한 논의, 그리고 그들의 욕구를 해소시킬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ps 3. 다큐 <핑크 팰리스>에 나타난 남성주의, 성욕에 목숨 건 사람으로 전락한 장애인상 등의 논의 역시 내 글에서는 다루지 않았다. 내가, 그리고 당신이 수십 년간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장애인의 성' 문제만 생각해 보자, 좀.
처음부터 이 책은 나에게 새로운 질문이었다. 섹스와 자원봉사. 제목은 그냥 제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섹스와 자원봉사라는 절대로 공존할 수 없는 두 가지가 나란히 제목으로. 떡하니. 섹스가 자원봉사가 될 수 있을까? 그것도 장애인을 상대로 한 자원봉사의 한 아이템으로? 책에서 접한 내용은 무척 쇼킹했다. 섹스 서비스를 장애인에 대한 서비스 아이 템에 넣은 것도 그러했지만, 그러니까 단순히 성교육이 아니라 진짜 섹스를, 실제로 여러 가지 실험이 진행되었음이 무척 놀라웠다.
다시. 섹스는 자원봉사가 될 수 있는가. 아니 자원활동이 될 수 있는가? 직접 성행위가 자원봉사의 영역인가가 가장 핵심적인 논쟁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성행위, 섹스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이 굳이 필요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비단 네덜란드나 일본과 우리나라의 정서 차이를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중심적인 논쟁점을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다. 섹스, 직접 성행위는 자원봉사, 혹은 자원활동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
첫째, 장애인은 봉사의 대상이 아니다.
굳이 봉사에 대한 구구절절한 말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장애인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은 봉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느 장애인도 자신에게 한없이 불쌍한 마음을 가지고 동정으로 봉사해 주는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 도움을 주고 받는 것이 즐거운 사람들이 자원활동을 하는 것이고,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즐겁고 적성에 맞는 사람들이 그런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것뿐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그리고 실제로는 봉사자들이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장애인의 성생활을 이야기할 때, 장애인의 욕구충족이나 더 확장된 서비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장애인을 봉사의 대상으로 여기고 이야기를 시작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첫 단추를 심각하게 잘못 끼우는 일이며, 장애인을 이용한다는 비난을 피해갈 수 없는 길이다. 나는 장애인들을 위해서 자원봉사를 한다는 사람들을 의심한다. 차라리 장애인 성매매업자들처럼 인생의 결산 장부를 맞춘다는 것이 더 솔직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직접 성행위는 서비스의 대상이 아니다.
성행위는 돈을 주고 사거나 어떤 대가와 교환하거나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다. 그런 경우들은 바람직하지 않은 경우이다. 성행위는 감정이고 사랑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결혼을 하고 성행위를 통해서 2세가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장애인에 대한 섹스 서비스는 직접 성행위가 아닌 광범위한 성교육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다만 그 실제에 있어서,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처럼 직접 성행위를 보여주거나 코치해 주는 등등의 사례들을 읽으며 공감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장애인 성교육의 실제. 최근 교실에서 우리 반 한 아이가 자위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6학년 나이라 조금 이른 듯도 하지만, 남자 아이고 충분히 그럴만한 나이가 되었다. 이 친구에게 자기 몸을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을 몸으로 사랑하는 것을 어떻게 알아가도록 도와주어야 할까. 막막하기만 하다. 그 사람들의 실험을 공감하는 부분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스킬이 아니다. 성적 쾌락을 즐기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만약 성적 쾌락이 목표라면 자위기술에 좀 더 중점을 맞춘 교육과정을 짜거나 성매매 서비스를 이용하는 기술을 교수하면 될지도 모른다.
장애인에 대한 성적 서비스를 이야기하면서 성적 쾌락에 중심이 맞추어 시작하면 안 된다. 일반인들은, 비장애인들은, 물론 쾌락을 위해서도 섹스를 하지만 인간에게 섹스는 단순히 즐기는 것만이 아니지 않을까? (이 부분의 쾌락에 대해서는 좀 더 부연설명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쾌락에 중심이 맞추어진 섹스 서비스 제공은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것이다. 비장애인들에게도 바람직하지 않은 섹스가 낳는 부작용은 심각하다. 강간이나 성매매, 상대에 대한 폭력, 낙태 등등 장애인들의 경우 이런 부작용은 더욱 심각할 수 있다.
이 책은 대개 지체 장애인들에 대한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자폐인, 정신지체인, 정서장애인들에 대한 성적 서비스를 이야기할 때 우리가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는 점이 이것이다. 우리에게, 당신에게 섹스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