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대는 궂은 날씨에도 성균관대 그 길고도 높은 언덕길을 올라와 사회운동포럼을 찾은 이들은 과연 어떤 이야기와 기대를 품고 왔을까요? 여러 사연들이야 있겠지만, 패배와 절망의 기록만 쌓이고 있는 상처투성이 운동에 연고를 바르고 새 활력을 불어넣고자 하는 뜨거운 마음만은 분명 하나씩 품고 왔을 겁니다.
소통, 연대, 변혁에 대한 갈증으로 모이다
올 3월 사랑방이 4개 단체와 공동으로 사회운동포럼을 한번 열어보자고 공개 제안했을 때 서있던 인식의 출발점은 '사회 변혁은 사회운동의 혁신으로부터 비롯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관성에 찌들어 활력과 변혁의 열정을 잃어버린 운동, 스스로 대안사회의 원리를 실현하지 못하는 운동, 담장을 넘어 서로에게서 배우려는 겸허함을 놓친 운동으로 과연 어떻게 현실의 억압을 뚫고 변혁을 향해 돌진할 수 있나, 그런 생각이었지요. 뭔가 쌈빡한 대안을 내놓겠다는 욕심과 자만은 저만치에 내려놓고 출발했습니다. 자기 운동이 내린 결론을 쌈빡하고 완결된 대안인 양 늘어놓는 박람회장이야 많이들 있지 않나, 그런데 박람회장에서 맘에 드는 상품을 골라가는 방식으로는 진정한 변화가 불가능하지 않나, 소통을 통해 신뢰와 연대성을 회복하는 일이 어쩌면 먼저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다들 대안을 찾아 꿈틀거리고 있으니 그 꿈틀거림들을 모이게 하고 제대로 바라봐줄 수 있는 고리를 만들면, 변혁의 밑그림도 함께 그려질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었지요.
그렇게 각자 제 갈 길 가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소통과 연대에 사무치고 변혁을 꿈꾸는 이들이 모여 사회운동포럼을 함께 준비했습니다. 대중조직이라야 민주노동당 서울시당과 민주노총 서울본부 정도였고 나머지는 대개 노동·인권단체 활동가들이었습니다. 기대보다 다양한 운동 단위들이 모이지도 못한 것 같은데, 고만고만해 보였던 운동들 안에서도 많은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각자 경험도 다르고 사용하는 말도 다르고 운동의 기반으로 삼고 있는 이념과 가치도 다르니 어찌 보면 그 차이야 당연한 것일 테지요. 그렇게 머리를 맞대는 과정에서 얻은 결실이라면, 그만큼의 차이를 뛰어넘을 가능성도 함께 확인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더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 논의가 좀 더 풍성해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요.
비록 준비 과정에 함께 하진 못하더라도 운동의 혁신과 자본주의를 뛰어넘는 대안 사회를 꿈꾸며 곳곳에서 무언가를 실험하고 있는 이들을 '풀씨'로 불러 모으는 일에도 공을 들였습니다. 그 풀씨들이 모여야 포럼의 정신이 곳곳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고, 돈 가진 이들에게 기대지 않고 우리들의 힘으로 포럼을 치러낼 수 있는 밑천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7백여 명이 포럼의 주춧돌인 풀씨가 되어주었습니다. 풀씨들을 중심으로 적자 없이 큰 행사를 치러낸 경험은 이후 다른 행사를 조직할 때도 독립적인 재정 마련에 자신감을 불어넣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행사가 아닌 운동의 과정으로 조각보를 엮다
나흘간 열린 사회운동포럼은 아래와 같은 조각보로 엮였습니다. 이 조각보를 엮는 동안 수많은 사전토론이 다양한 방식으로 열렸습니다. 자기 운동의 담장을 뛰어넘어 서로를 가로지르는 논의가 오고갈 수 있도록, 뻔하지 않은 고민과 경험들을 나눌 수 있도록, 다양한 형식을 통해 각 워크숍의 문제의식이 가슴에 팍팍 와 닿을 수 있도록, 눈높이와 생각의 틀을 맞추고 문제의식을 명료화하기 위해 사전 논의과정을 충실히 밟을 수 있도록 노력했던 결실이 본행사에서 조금씩은 드러난 것 같습니다. 물론 충실한 준비를 거치지 못한 워크숍들도 있어 아쉬움을 남겼지만요. 그래도 사회운동포럼을 하나의 행사가 아니라 운동의 과정으로 보고 준비하자는 다짐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경험은 앞으로도 여러 운동에 좋은 모범사례로 기억될 거라 생각합니다.
미완의 밑그림, 첫걸음 내딛은 횡단 대화
첫날 한국 사회와 사회운동의 현재를 짚는 쟁점 토론 자리에서나 둘째 날부터 펼쳐진 워크숍 논의 자리에서나 87년 20주년, IMF 10주년을 맞는 오늘 한국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이나 구체적인 변혁의 밑그림을 그리는 데까진 나아가지 못했다는 생각입니다. 구체적인 의제들을 다룬 워크숍 자리에서도 수차례의 사전 논의를 밟아왔음에도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들이 남아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번 포럼이 강조한 ‘횡단 대화’의 시도는 중요한 첫걸음을 내딛은 것 같습니다. 많은 이들의 관심과 고민이 여전히 자기 운동영역 안에 머물러 있는 듯 보였지만, 운동 간/가치 간 횡단을 고민하고 서로의 운동을 새롭게 엮을 수 있는 소통은 시작되었으니까요. 운동들 사이에 보이지 않게 가로놓여 있는 경계들을 뛰어넘어 함께 내용을 생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댄 경험은 이후 운동에서 중요한 자산이 될 게 틀림없습니다.
포럼 이후, 우리 앞에 놓인 길은?
많은 이들이 사회운동포럼이 끝난 이후 어떤 변화가 있을지 주목하고 기대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아직까지 사회운동포럼이 남긴 것과 앞에 놓인 길이 무엇인지를 가리는 평가가 마무리되지 못했습니다. 조금씩 다른 구상과 기대를 내놓고 있기도 하구요. 그래도 갈증이 있어 만났고 미처 다 그리지 못한 밑그림이 남아 있으니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만나야 하지 않을까 하는 데는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고 있습니다.
사회운동포럼이 던진 문제의식이 과연 어떤 운동의 변화로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문제 의식을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나가면서 전망을 구체화시키고, 그러한 실천을 기반으로 다시금 이야기꺼리를 찾아야 공중에 떠있는 막연한 논의를 되풀이하는 말잔치에 그치지 않을 테니까요. 운동간 실질적인 횡단과 연대가 이뤄지는 달라진 연대 방식, 열정과 민주주의가 꿈틀대는 집회, 대중 속에 뿌리박고 검증받는 운동, 인권·평화·생태·여성주의라는 보편가치로 변혁의 이념이 더욱 풍부하게 재구성되는 과정, 새로운 사회운동을 고민하는 자율적인 개인들과 운동들이 같은 곳을 내다보며 다양한 네트워크로 교차하는 운동 등이 만들어지려면 지난한 실천이 이어져야 할 겁니다.
만나고 나니 막힌 속도 뚫리고 힘이 된다는 소박한 가능성을 맛보았고 변혁을 꿈꾸는 이들이 곳곳에서 꿈틀대는 모습도 보았으니,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운동포럼의 문제의식을 이어나가는 후속 발걸음들이 있을 거라 믿습니다. 상처투성이 운동에도, 사랑방의 운동에도 변화가 있겠지요. 변화된 모습으로 사랑방 운동도 여러분을 만날 거라 약속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