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 3월동안 인턴하기로 한... 간디학교....." "(당황) 에..."? "그... 오늘 1시에 오기로 했는데...." "(갸웃갸웃하다가) 아!~ 그게 오늘이였구나~!" "네ㅎㅎㅎ; 안녕하세요" "어서와요~ 일단 저쪽 방에 앉아있을래요"? "네ㅎㅎ;" 3월 초, 내가 사랑방에 처음 와서 은아 씨에게 인사를 드릴 때의 모습이다. 심한 길치라 처음부터 늦을까봐 일찍 출발했는데, 역시나 한참 또 헤맸다. 심한 오르막길을 헉헉대며 올라가서 닫히는데 오래 걸리는 문을 닫고 들어가니 아무도 없는 것 같이 조용한 모습이 첫 인상이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 대한 약간의 공포증도 있고 또 성격이 많이 밝다보니 조용한 곳에서는 적응을 잘 못해서 더 우물쭈물 하지 않았나 싶다. 나는 3월부터 짧지만 자유권에서 고3이란 나이에 나름 인턴을 시작했다. 사실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학교에서 간간히"까대기만"했지 이런 활동은 처음이거니와 단체 활동에 익숙하지 않아 굉장히 긴장상태였다. 이전에도 시위는 몇 번 참여했으나 자유권이란 말도 생소했으니 말이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제천 간디라는 대안학교다. 간디는 고3이란 나이가 되면 남들 다 하는 국영수사과 공부 대신, 학교를 떠나 나름 사회를 겪음과 동시에 진로에 대해 고민하게 하고 오라는 과정이 있다. 중고 통합 과정인 학교인지라 5년을 학교 안에서 살다가 사회를 나가보라니, 안주하던 곳에서 내던져지는 기분이다. 하지만 마지막 교육과정이기도 하고 어차피 거쳐야 할 과정이니, 학생이란 신분일 때 최대한 우려먹자, 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찾아간 그 날, 요이땅으로 시작된 내 첫 미션은 미신고 집회 연행사례를 문서로 정리하는 작업 이였는데 정말 오후 내내 땅만 열심히 팠던 것 같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어제 같다. 이런 문서정리는 해본 적도 없고 은아 씨는 계속 어딘가로 나가 안 계신데다 물어보기에도 왠지 주춤하게 되서 혼자 낑낑댔었다.(결국 내가 너무 안쓰러웠는지 저어기에서 미류 씨가 짠, 하고 이것저것 알려주셨지만) 그 후로도 여러 모임을 같이 쫄래쫄래 따라갔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쌍용노조 기자회견을 갔을 때다. 솔직히 지금까지는 이런저런 사건들을 기사나 잡지를 통해 들으면서"음... 심각하네. 이러면 안 되는데"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기자회견 때 사회자분이 쉬어터진 목소리로 언제까지 이런 얘기를 반복해야 하냐며 울부짖으시는데, 사진을 찍으며 멍하니 얘기를 듣다가 왠지 내가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목이 메여왔었다. 노동자 분들은 계속 외치고, 많은 활동가분들도 애쓰시는데 정작 다른 사람들은 자신은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며 남 일이라 치부하는 것인지 큰 관심이 없다. 나도 시사인이나 한겨레21 등을 보면서 비정규직 문제를 보며 비판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남 일이라 생각하는 건 아닌지 고민을 하게 한 날이었다. 확실히 이런 이야기들은 같은 내용이라도 어떤 매체를 통해 접하는 것 보다는 직접 보고, 들어야 진정으로 공감할 수 있는 건가 싶었고 동시에"정말 언제쯤 가능한 걸까"?라는 한숨도 새어나왔다. 하지만 이렇게 문제를 덮으려 하지 않고 싸우는 분들이 계시고, 이렇게 해결하려고 열심히 활동해주시는 분들이 있으니 분명 조만간 바뀔 거라는 생각이다!(또 학교에서도 대학 갈 때 쓰고 땡인 일회용 공부대신, 이런 좀 더 현명하게 살기 위해서 이런 것들을 가르치고, 느끼게 하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한길아. 지금 한국은 명문 대학을 나온 사람도 일자리 찾기 힘든 곳이 되었다. 남들과 다른 과정으로 자라는 너희들만이라도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자기 나름의 자리에서 계속 응원해라" 거의 10년 전에 아프리카 쪽으로 발령되었다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 아빠의 말이다. 어른들끼리 맥주 한 잔 하고 난 옆에서 얘기가 재밌어 조용히 듣고 있는데 갑자기 밖으로 불러내서 하셨다. 네가 하고 싶고, 했을때 정말 행복한 것을 하며 사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라고. 사회의 틀 안에서 성공하려 하지 말고, 밖에서 성공해서 사회가 널 부르게 만들라고. 분명 내가 앞으로 가려고 하는 길은 보편적으로 말하는 성공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꼭 돈방석에 앉아야 행복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사랑방의 활동가분들도 그렇고 쥐꼬리보다 못한 대안학교 쌤들도 나름의 가치를 품고 다르지만 비슷한 길을 걷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무언가를 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그동안 보면서 나름대로 많은 것을 배우지 않았나 싶다."그대는...", "이이들은"이라는 말들을 들을 때마다 어색한 미소를 짓고"~씨"라고 부르는 것이 불편해 부를 때마다 고민하던 것이 어제 같은데 지금은 나름대로 적응도 됐다. 그동안 처음 해보는 경험도 많았고, 처음 해보는 것인데도 무턱대고 맡아서 고생도 했지만 처음엔 누구나 다 이렇게 시작했겠지, 싶기도 하고ㅎㅎ 또 나는 그 짧은 시간동안, 8월의 태양보다 더 뜨거운 사랑방 활동가 분들에게 반해버렸다!! 모두 또 만나요! 인권활동 해시는 그대들부터 사랑방을 도와주시는 분들까지 꽃 한 송이와 희망을!!! |
활동가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