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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다음 대선쯤에는...

안녕하세요. 늦게나마 인사드립니다. 새로 상임활동을 시작한 디요입니다. 원래 상임활동가가 되자마자 썼어야 하는데 잠시 사무실을 비우는 활동가들이 둘이나 있어 저는 이제 쓰게 되었네요. 사실 상임활동 전에 돋움활동을 1년 반이 넘게 하면서 2015년 사람사랑 편집을 맡았었거든요. 그래서 상임활동가의 편지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게 제 이야기를 써나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컴퓨터 앞에 앉으니 무슨 이야기부터 써야 할지 막막하네요. 괜스레 요즘 이슈인 선거부터 이야기해 볼까요?

 

저의 첫 선거는 17대 대선이었거든요. 생일이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로 선거가 시작되어서 MB 당선과 함께 20대가 시작되었거든요. 그거였을까요? 제가 사랑방 활동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사랑방 활동가들과 촛불집회를 같이 나간 게 인연이 되어 지금 상임활동가까지 되었으니까요.

 

사실 저는 10대 중반부터 학교 선생님이 하고 싶던 사람이거든요. 지금의 저에겐 모두 ‘니가 선생을?’이라고 되묻지만, 당시의 마음으론 방학에 해외여행도 다니고 늦잠도 자고 뭐든 할 수 있는 교사라는 직업이 그렇게 매력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물론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도 하고 또, 저라는 사람이 누군가를 가르치는 역할을 견디지 못한다는 점을 알아차리곤 금세 접었지만 말이에요.

 

그렇게 꿈을 한 번 접고 MB의 당선과 동시에 하고 싶었던 일은 사실 변호사였습니다. 사법고시는 꿈도 못 꾸고 로스쿨이 생긴다는데 잘하면 나도 변호사를 할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이때쯤엔 사회문제에 관심도 좀 생겼는데 변호사를 하면 막 멋있게 집회도 나가서 막.... 하하 민망해서 말을 더 못하겠네요. 하여튼 그런 생각도 있었더랬죠. 그리고 집에서도 제가 시민사회운동에 관심 가져도 직업은 ‘사’짜 들어가는 것을 하고 싶다 하니 잔소리하지 않아도 되겠거니 하셨던 거 같아요. (어머니, 아버지 그때 왜 저를 놔두셨나요..하하하)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질 때쯤 마침 우연히 입시에 실패하고 마침 우연히 학원에서 만난 선생님이 사실은 운동권이었고..여자처자해서 사랑방 자원 활동을 시작했어요. 그리곤 난생처음 활동가라는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이야길 나누면서는 활동가라는 직업에 매료되었어요. 막 변호사 하면서 멋있게 법조문 뙇! 읊고 돈은 돈대로 좀 버는 이런 것만 생각했는데 활동가는 그 멋있는 법과 제도에 냉소를 날리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모습이 더 쿨내가 났달까요. 마치 드라마 속 경찰이 영장 없이 남의 집을 무단 침입할 때 멋있게 보이는 그런 모습을 보는 듯한... 하하

 

덕분에 변호사라는 꿈도 또 금세 접고 뭔가 이런저런 활동에 기웃기웃하다 보니 어느새 총선도 치루도 18대 대선이더군요. 18대 대선을 치르고 나서 보니(제가 치른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진짜 앞으로의 진로를 정하지 않으면 어영부영 백수가 되겠구나 싶은 시기가 와버렸어요. 그걸 인식하고 나니 덜컥 겁이 나더군요. 내가 인생에서 활동가를 고민해본 적이 있었나? MB를 지나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는 이 시점에 내가 무슨 대단한 사명감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저 익숙한 주변에 둘러싸여 너무 안일하게 생각해온 것은 아닐까? 그렇게 보니 막연하게 활동가를 정말 내가 하려고 했나 싶고 도대체 인권운동은 뭐 하는 것인지 의문도 들어서 모든 활동에 좀 거리를 두고 사랑방도 잘 안 가고 그냥 학교만 다녔던 거 같아요.

 

제가 그러는 사이 사랑방이 20주년을 맞이하고, 사랑방 친구들이 점점 더 어려운 이야길 하고, 점점 사랑방이 거리가 느껴지고, 그래서 마음의 벽을 쌓으며 시간을 흘려보냈어요.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이 사회문제 이야길 하면 아는 척 훈수나 좀 둬가면서 정작 무엇에도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요. 참 헛헛한 시간들이었는데 학교에서 부정선거 의혹이 터졌어요. 마치 18대 대선 때처럼 말이죠. 인생이 무미건조한데 학교 선거야 이러든 저러든 나랑 상관없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학생운동 비슷한 것도 하지 않던 친구들이 어느 날은 매주 학교에서 깽판을 놓고 집회를 해보자고 제안을 하더라고요. 그때는 좀 뒤통수가 맞은 정도....는 아니고 지끈지끈하더군요.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욕심은 많아서 머리 쓰기는 싫고, 몸은 편했으면 좋겠고, 배부르고 등따시고, 돈도 좀 넉넉히 벌고, 시간적인 여유도 갖춘 동시에 의미와 전망도 갖는!! 그런 완벽한 일이 그냥 나에게 주어지면 좋겠다’고 안일한 생각이나 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던 거죠.

 

뒤통수가 지끈거리고부터는 가만히 있지 못했던 것 같아요. 학교에서 집회도 매주 하고 사랑방 돋움활동도 시작하고 그러면서 이런저런 사회문제에 다시 관심도 두고 현장들에 직접 가기도 하고 등등 여튼 스위치가 달라졌달까요?(스스로 할 말은 아니지만;;) 그렇게 2년이 다 되도록 시간을 보내니 제가 상임활동가가 되어있더라고요. 솔직히 아직도 제가 활동가로서 어떤 자신만의 관점, 아니면 제가 활동가여야만 하는 이유 같은 것은 잘 모르겠어요.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조금 더 그 질문을 진지하게 마주하고 있는 것 같다? 정도겠죠. 허허;; 잘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상임활동가의 편지는 물론 사람사랑을 꾸준히 쓰게 될 텐데 이번 총선은 일단 넘기고 다음 대선쯤엔 활동가로서 덜 어색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럼 쑥스러운 인사를 드리며 마무리 지어야겠네요. 부족하지만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