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더 마인호프>를 보았습니다. 적군파의 등장은 68혁명이 배경입니다. 50년대부터 60년대는 제국주의 전쟁과 냉전체제 그리고 이에 저항하는 반전운동과 제3세계의 혁명의 열기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획일화 한 대학사회와 테일러주의가 만드는 노동소외, 그리고 복지국가를 가장한 빅브라더의 감시와 통제가 사람들을 분노하고 저항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무력감, 통제 그런 모든 것을 뒤집기 원하는 혁명의 열기에서 느지막하게 등장한 것이 적군파입니다. 세상은 분명 문제가 있고 그것을 뒤엎어야 하는데 대중운동으로는 한계 가 명확한 벽이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기자이자 작가로 살아간 마인호프가 적군파를 선택한 것도 그 벽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평택에 위치한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그 생각을 너무 많이 했습니다. 노동자들의 파업권 행사는 범죄행위로 취급받았습니다. 경찰은 스티로폼을 녹이는 최루액을 노동자들이 점거농성을 하는 공장에 뿌렸습니다. 테이저건에서 쏜 화살촉은 노동자의 뺨에 깊은 상처를 남겼죠. 용역들이 아침, 저녁으로 새총을 이용해서 쏘아대는 볼트 너트는 공장 벽에 박힐 정도였지만 경찰은 용역은 없다고 발뺌을 하면서 함께 합동작전을 펴기도 했습니다. 그러더니 어느 날부터는 소방전으로 차단하고 식수 공급을 금지했습니다. 가스를 끊고 의약품 반입도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전기마저 끊으면서 제2의 용산참사를 부를 살인진압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이 점거파업을 시작했을 때 진상조사를 위해서 공장점거 현장을 찾았던 일이 생각납니다. 노동자들은 이 사회에서 생존하고 살아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안정적인 주거공간을 마련하고 아이들이 좀 더 나은 교육을 받기를 원하는 마음에 철야를 감수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정리해고 통지를 받았습니다. 기준도 없이 관리자로부터 ‘너는 죽은 자이니 내일부터는 나오지 말라’ 이렇게 이름을 불리면 그만이었습니다. 노동자들은 수익만을 챙겨서 도망가는 투기자본과 그 책임을 정리해고라는 방식으로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사측에 분노했습니다. 하지만 일방적 통보를 받은 노동자들이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공장점거파업입니다.
파업권을 행사하는 노동자들을 마치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것처럼 살인진압을 하는 경찰을 보면서 <바더 마인호프>의 장면들이 떠올랐습니다. 사람들은 전쟁으로 사람이 죽어가고 감시와 통제의 나날을 보내야 하는 무력한 삶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저항하는 사람들을 살인진압으로 짓밟은 것이 경찰국가였습니다. 지금 한국의 상황이 그때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점거파업을 하는 공장에서 인간의 기본적 권리인 노동권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사측이 지키고자 하는 재산과 이윤이 인권을 제압한 것입니다.
사측은 정리해고계획을 발표하면서 노조와 대화조차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투기자본에 부도 난 공장을 매각한 것이 국가였습니다. 투기자본이 수익을 얻고 도망가고 공장 운영이 어려워질 때 신경 쓰지 않고 내버려 둔 것이 국가였습니다. 그런 국가가 적극적으로 사측이 재산을 지켜달라고 요청하자 적극적으로 공권력을 사용합니다. 일련의 과정에서 자본과 국가가 책임져야 할 것들은 사라지고 모든 책임을 떠안은 노동자들만이 죽을 각오로 노동권과 생존권을 지켜가고 있습니다.
그 일방적인 경찰국가의 벽이 너무나 높았습니다. 살인무기인 최루액과 테이저건의 사용 그리고 용역과의 합동작전을 폭로해도 다음날이면 버젓이 눈을 쓰라리게 하는 최루액이 뿌려졌고 용역과 섞인 경찰이 진압작전을 펴고 있었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소방전을 차단하면 안 되지만 사측은 비난에 아랑곳 하지 않고 살려면 나오면 될 것 아니냐며 농담을 합니다. 그리고 매일 공장 안 노동자들에게 식수를 공급하려는 직접행동은 용역들의 폭력과 경찰의 일방적인 진압으로 상처를 입고 있습니다. 인간의 기본적 권리인 생존권과 노동권이 재산 소유와 이윤 창출에 종속하고 그에 대한 저항을 공권력 사용으로 무력화 시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 벽, 적군파들이 가졌던 절망과 분노 그리고 그 때 마인호프가 느껴야 했던 감정들을 지금 이곳 쌍용자동차 공장이 있는 평택에서 경험하고 있습니다.
활동가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