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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왜 경찰이 이런 것까지 하나요

경찰 개혁이 성공할까?

"노조가 승리하는 그날 장례를 치러 달라." 2014년 5월 17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염호석 님이 남긴 유언이었다. 비통한 죽음이 남긴 마지막 유언을 지키고자 모인 가족과 동료들은 수백 명의 경찰병력에 밀려났고, 첩보작전처럼 장례가 치러졌다. 그 배경에는 삼성의 편에서 '설계자' 역할을 한 정보경찰이 있었다. 

지난 5월 14일 경찰인권침해진상조사단은 故염호석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원 사건의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청 정보국 노동정보팀장과 양산서 정보과 경찰들은 유족에게 삼성의 뜻대로 가족장을 치르도록 종용하고 합의금을 직접 전달하며 신속하게 장례가 치러지도록 개입했다. 이 과정에서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해당 경찰들에 대한 재판이 현재 진행 중이다. 

정보경찰의 행태가 보도되며 이런 경찰에게 수사권을 줄 수 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수사권 조정을 위한 전제로 경찰에 자체 개혁을 주문해온 청와대도 이런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정보경찰 개혁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정보경찰 개혁보다는 수사권 조정에 차질이 생길까 전전긍긍하는 모양새다. 그런데 정보경찰이 해온 '짓'은 어떤 것이고, 이들은 왜 그랬던 것일까. 

정보경찰은 누구의 눈과 귀였나 

경찰의 정보활동을 범죄예방과 수사를 위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정보경찰 역할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정보경찰의 직무 분석 결과, 범죄정보는 전체의 1.3%일 뿐 주로 하는 일은 지금 문제가 된 불법사찰·정치개입과 맞닿은 정책정보(22.5%), 대외협력(20%)이었다. 노조를 파괴하려는 삼성의 대리인 노릇을 했던 정보경찰은 선거 때마다 정부여당의 비선 캠프 역할을 했고, 정권에 우호적인 여론 조성을 위해 댓글공작을 벌였다. 국가인권위의 동향을 파악하고, 교육계·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보수단체를 이용해 세월호 특조위를 제압할 방안을 고민하기도 했다.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에서 기자를 사칭하던 정보경찰은 세월호 가족들을 미행하다 발각되기도 했다. 본청 정보국에서 지방청 정보과를 거쳐 일선 경찰서 정보과까지 촘촘한 연계망 속에서 3000여명의 정보경찰들은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에 대응방향을 제시하는 '설계자' 노릇을 해왔다. 그 설계의 기준은 정보의 '수요자'인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요구였다. 

정권과 자본의 이익에 반하는 세력들은 감시와 억압의 대상일 뿐이었다. '좌파'라 규정한 인물, 단체, 노조, 집회에는 언제나 집요하게 경찰의 눈과 귀가 뒤따랐다. 개발사업에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 반값 등록금 이행을 요구하는 학생들, 부당해고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와 행동은 무력화 시켜야 할 좌파세력의 투쟁일 뿐이었다. 정보경찰의 레이더망은 전 영역에 걸쳐 있었다. 권력에 반하는 이들을 탄압하기 위해 온오프라인 상 대책을 내놓고, 여기에 힘을 보탤 언론 활용법도 함께 동원됐다. 이 모든 것이 '치안정보'와 '정책정보' 활동이자 '집회시위 관리'라는 정보경찰의 업무로서 이루어졌다.  

왜 경찰이 이런 것까지 하나 

"모든 정책정보는 국정 최고 결정권자인 VIP에게 보고된다", "국정기조에 맞는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2015년 강신명 청장 시절 만들어진 정보경찰 교육자료 '정보경찰의 이해와 필요성'에 등장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정보 열거를 넘어 정부가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조언하는 컨설팅식 보고서가 높은 가치로 인정된다며 정보활동의 성공비결에 대해 원 포인트 레슨을 해준다. 한 마디로 권력의 눈높이에 맞추면 된다는 것. "야당의 향후 공세 포인트", "좌파 진영의 여론전에 대한 동조 조짐"을 바람직한 정보보고의 사례라며 교육하니, '왜 경찰이 이런 것까지 하나요'라는 대목에선 그 이유를 설명한다. 이러한 정보활동이 곧 "경찰 정보의 입지를 다지고, 경찰의 브랜드 가치를 높인다"는 것이다.  

권력 맞춤형 정보보고는 경찰의 이해와 직결된다. 정부 내 경찰조직의 위상을 높이는 것은 물론 경찰 개개인에게는 승진과 포상의 길로 이어졌다. 포상의 근거로 쓰이는 공적조서에서 정보경찰들이 내세운 실적들은 '이런 것까지' 했다는 것이다. 정보는 힘이었다. 승승장구하는 정보경찰 실세들은 청와대 파견근무로 이어지거나 지방청과 본청의 요직을 맡는 것이 수순이었다. 역대 경찰청장 20명 중 12명이 정보경찰 출신이다. 

정보경찰 개혁이 가능할까 

작년 4월 경찰개혁위원회는 경찰의 정보활동 개혁을 권고했다. 정보경찰 인력 축소 등 조직 개편과 함께 법적 근거 없이 이루어져온 정보활동의 법적 근거와 통제방안을 마련하라는 것이 골자다. 경찰인권침해진상조사위원회도 재발방지를 위한 정보활동의 중립성 담보와 정보경찰의 활동 내용을 평가·통제할 방안 마련을 권고했다. 정보경찰은 바뀔 수 있을까? 

경찰은 자체적으로 진상조사팀을 구성해 철저한 조사와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한다는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이는 위기 모면용이었을 뿐, 그 시간 검찰 수사에 대비한 문건 파기를 위해 정보경찰들의 컴퓨터에는 밤낮 없이 영구 삭제 프로그램이 돌아갔다. 정보경찰 개혁 권고를 수용해 '국민을 위한 정보경찰로 거듭나겠다'던 이철성 전 청장은 정보국장 시절의 위법한 정보활동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고 강신명 전 청장은 구속됐다. 

정부가 정보경찰을 개혁하겠다고 하지만,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정권의 필요에 맞춰 정보경찰의 활약은 이어졌다. 청와대는 인사검증과 복무 점검을 정보경찰에 의탁했다. 작년 7월 작성된 '정보2과 업무보고'에서 경찰은 '유일한 검증기관'으로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음을 자평하며 청와대가 인사검증에서 경찰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고, 복무점검 보고 내용이 충실하다는 칭찬을 받았다는 것을 성과로 짚었다. 정권이 정보경찰을 활용하려는 수요가 있는 이상 정보경찰이 정권의 기대와 필요에 맞춘 정보활동을 공급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문제는 정보가 아니라 정보경찰 

모든 일에는 정보가 필요하다. 문제는 정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정보가 누구를, 무엇을 위해 수집되고 활용되는가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정보경찰을 유지하려는 이유는 그렇게 집적되는 정보들이 정권과 경찰 모두에게 권력이 되는 정보이기 때문이다. 정보경찰 개혁 방안으로 '치안정보'를 '공공안녕의 위험성에 대한 예방 및 대응'으로 대체해 명확히 규정하겠다고 하지만, 공권력의 행사 과정에서 공공안녕은 정권의 안녕으로 뒤바뀌곤 했다. '정책정보'는 이미 많은 문제가 드러났음에도 청와대의 필요로 언급조차 되지 못했다. 

정보경찰을 따로 두어 권력을 위한 정보활동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사안에 따라 필요한 정보를 담당 기관들이 적법한 범위와 한계 내에서 나누어 수집하고 활용하면 된다. 애매한 치안정보, 정책정보가 정보경찰이 있어야 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 범죄 수사에 필요한 정보는 수사과에서, 집회시위 관련 정보는 경비과에서 담당하면 되는 것이다. 경찰이 해온 인사검증과 복무점검은 인사혁신처나 감사원에서 하면 된다. 정부정책들에 대한 의견 수렴은 해당 부처들에서 직접 하면 된다. 국정운영에 대한 민의를 경찰을 통해 확인하는 이상한 '관행'이 유지될 이유가 없다.  


정보경찰 폐지하라  

"국정원 국내 정보가 없어진 상황에서 경찰 정보마저 없으면 눈과 귀가 막히는 것 아니냐"며 경찰개혁위원회의 정보경찰 폐지 의견에 반대한 것이 청와대였다. 정보경찰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청와대, 이런 '정보 수요자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성공이고 권력을 쌓는 방법인 경찰. 정보경찰 자체가 권력과 경찰의 유착 속에서 만들어졌다. 지금 정보경찰을 폐지하라는 요구는 단지 정보과라는 부서를 없애라는 게 아니라, 권력과 경찰의 유착을 끊어내라는 요구다. 이에 정보경찰을 축소하고 통제장치를 마련하겠다는 게 응답이 될 순 없다. 일제 강점기, 군부독재 등 지난 역사 속에서 정권의 통치수단이었던 정치경찰은 오랜 과거 역사 속에만 있지 않다. 정권의 요구에 맞춰, 경찰의 이해에 따라 정치를 해온 정보경찰이 폐지되지 않는 한, 인권침해도 민주주의의 왜곡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정권이 정보경찰을 활용해 권력을 지키려는 달콤한 유혹에 빠져있는 한 경찰 개혁은 불가능하다. 개혁을 말하지만, 정작 개혁을 가로막고 있는 건 바로 청와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