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용
지각자의 덕목은 나의 지각에는 송구함을, 타인의 지각에는 너그러움을 갖추는 일이다. 그리고 이 덕목은 경험이 반복되고 쌓일 때 갖춰진다. 난 갖추었다.
어쓰
늦잠으로 지각하는 일에 대한 불안이 너무 커서, 이른 일정이 있는 전 날에는 오히려 잠을 제대로 못 잔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실제로 늦잠이나 지각 때문에 크게 낭패를 봤던 일은 없는 것도 같고. 기억나는 지각은 작년 한 주정도 긴 휴가를 끝나고 첫 출근, 휴가 기간 내내 낮밤이 바뀐 채 살다가 출근 전 날에 정신을 차리고 일찍 자보려 했지만 결국 눈을 떠보니 11시가 지나있었던 날. 그날 아침 피가 마르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큰일도 아니었다. 나의 불안은 대체 어디서 온 걸까.
가원
아슬아슬 닫히는 교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지각이었다. 작게는 꿀밤, 크게는 엎드려뻗쳐였다. 속으로 지각이 무슨 대수냐 싶었지만 꿀밤을 맞고 나면 더 맞지 않기 위해서라도 아픈 척 엄살을 부렸다. 지각생들은 운동장 한 귀퉁이에 모여 '다시는 지각하지 않겠습니다'를 제창했다. 그나마 엄살을 부리는 날은 권위를 부리는 교사들을 그럭저럭 봐 줄만 한 날이었다. 심기가 불편한 날에는 구호 제창은커녕 고개도 떨구지 않고 눈을 희번덕거린 죄로 교무실에 불려갔다. 그런 날은 볼기짝을 맞고도 엄살을 부리지 않았다. 폼에 죽고 폼에 살던 때가 있었다.
아해
#1. 옛날 사람들은 "약속"을 어떻게 하고 어떻게 지켰을까? 정말 "정월 그믐날 사시에 만나세." 하는 정도만 약속을 해도 어긋나지 않을 수 있었을지... 하긴 옛날에는 도시 또는 마을 자체가 크질 않았으니, 대충 그 시간에 대충 그 근처에 있으면, 알음알음으로라도 만나지 않았을까 싶기 한데.
#2. "몇일몇시몇분에 어디에서 만나요." 라고 약속할 수 있는 것은 시간과 공간이 측정 가능해진 이후에나 생긴 일일 것이다. 모두가 "시각"을 확인할 수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약속"일 테니. 그러니까 아마도, 정확한 약속이란, 역사적으로 아주 최근, 누구나 <시계>를 확인할 수 있는 시대의 문화현상일 것이다.
#3. 아직 인류가 "시간"에 대해 물리학적으로 설명을 할 수 없다거나, "시간"을 생각한다는 것이 일종의 "문화현상"이라는 것이, 시간약속에 늦거나 마감약속을 넘기거나 하는 "지각"의 변명이 될 수는 없다.
#4. 그러나 나는 조금씩 자주 늦는 편이다. 시간계산을 분 단위까지 해서 계획을 세우지만, 결국 그 계산대로 되지 않는다. 또는 조금 빡빡하게 계획을 세웠는데, 결국 몸이 못 따라서 늦게 되거나. 아침에 물먹은 솜처럼 무거운 몸을 일으키는 일은 너무나 힘들고.
#5. 예전에 후배 리포트를 도와준다고, 둘이 앉아서 지지고 볶다가 후다닥 택시타고 제출하려 하였으나, 리포트 시한 마감으로 낼 수가 없었다. "형, 괜찮아요, 고마워요."라고 후배는 얘기했지만, '아이 참... 대충 해서 틀린 내용이 있어도 그냥 시간 내에 냈어야 하는데... 하는 마음으로 꽤 미안했다.
#6. 인생에는 시간 내에 해야 하는 일들이 있는 것 같다.
세주
여러 가지로 지각 중이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었다.) 인생의 여러 지점에서. 뭐 지금은 그냥 그러려니 하지만 가끔 눈이 크게 떠질 때가 있는데. 사실 적어도 20세 전까지는 지각은커녕 결석도 별 해본 기억이 없는 듯하다. 이때까지는 지각하면 하늘이 무너지는 줄. 20세 초반까지도 지각은 거의 안 한 듯. 그때는 지각할 것 같으면 아예 결석을 했으니까.^^;;; 20대 후반부터는 사랑방에서 지각을 종종 하는데 이건!! 순전히 거리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 그래도 생각보다 지각 안 하는 편 아닌가...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는데..(돌 피하는 소리 슉슉~~) 그만큼 삶을 빡빡하고 치밀하게 살지 않는 것 일수도 있겠다는 반성을.
민선
많이 뛰어다닌다. 5분만 일찍 나왔다면 이렇게 헉헉 거리면서 뛰지 않고 있을 텐데. 걷고 있는 사람들을 하나둘 제치며 달리기 선수마냥 전력 질주해 예정했던 버스를 탄 뒤 속으로 내뱉는다 말. “safe!!” 차오르는 거친 숨을 가라앉히며 안도를... safe했다는 희열은 아찔하지만, 또 다시 느끼고픈 희열은 아니다. 그래서 다짐한다. “5분만 일찍!”
하지만 쉽사리 바뀌진 않는다. 버스 도착예정시간을 확인하고 정류장까지 ‘빠른’ 걸음으로 걸리는 시간을 계산해 움직인다. 근데 모든 건 계산대로 되지 않는다. 엘리베이터가 층마다 멈춰 선다거나, 신호등에 딱 걸린다거나. 그래서 결과가 틀어질 때 또 다짐한다. “5분만 일찍!” 아슬아슬한 달리기를 언제쯤 멈출 수 있을까.
몽
아무리 떠올려봐도 9시에 시작하기로 한 기자회견 당일 아침 9시에 침대에서 눈을 떴던 기억만큼 등골이 서늘했던 지각은 없는 것 같다. 현수막과 기자회견문을 내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택시타고 날아가서 기자회견 중간에 현수막을 펼쳤던 기억. 휴.
정록
국민학교 시절에는 학생 수가 너무 많아 오전/오후반이 있었다. 오후반 학교 갈 시간도 잊은 채 놀고 있던 나는 나중에 멘붕 상태에 빠진 엄마와 마주쳤다. 그 뒤는 생략... 지각은 다른 이들의 시간을 뺏기도 하지만 다른 이들을 걱정하게 한다. 중요한 건 일관성이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거기에 맞게 대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