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부가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 (이하 기본계획)을 발표한 날 모친에게 “비혼‧동거도 가족에 포함”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란 듯이 전송했다. “이제 결혼 안 해도 되지?”라고 말을 꺼냈다. 원가족은 그동안 나를 사람 관계에 무책임한 까닭에 결혼하지 않는 사람 혹은 결혼하지 않아 외롭게 늙어 죽을 안쓰러운 사람으로 여겨왔다. 이번 여가부의 제4차 기본계획 발표에 짧은 순간이었지만 왠지 나는 원가족 앞에 기세등등해졌다. 과연 이번 정부의 발표가 누구나 원하는 사람과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이번 기본계획이 지향해야 할 방향
이번 4차 기본계획(2021~2025년)은 ‘가족다양성 포용’과 ‘평등한 돌봄’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핵심적으로 혈연 혼인으로만 규정된 가족의 정의를 바꿔 가족다양성을 받아들이고 가족 유형에 따른 차별을 해소할 법과 제도가 마련될 예정이다. 국가가 고정된 가족 개념의 한계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가족규범을 재구성하겠다고 공언했다는 점에서 이번 기본계획의 의미는 절대 작지 않다.
그러나 이번 기본계획의 ‘가족다양성’과 ‘돌봄’이라는 키워드는 그 자체로 새롭거나 혁신적인 목표는 아니다. 2004년 건강가정기본법이 제정된 이래로 과거 기본계획들도 ‘가족다양성’과 ‘돌봄’을 핵심적 정책 과제로 제시해 왔다. 그러나 이 계획들은 모든 형태의 가족들의 가족구성권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한계가 분명했다. 혼인과 혈연중심의 ‘정상가족’에 독점적인 지위를 그대로 둔 채 그 외 가족들을 한부모, 조손가족, 청소년 한부모 등으로 유형화해 다양한 가족 형태 그 자체가 취약하거나 위기라는 차별적인 인식을 강화해 왔다. 이런 비판에 기초해 수립된 이번 4차 기본계획(2021~2025년)은 모든 가족을 포용하는 사회기반을 구축하겠다고 한다. 정부의 계획이 법 개정을 넘어 가족형태에 따른 차별상황에 실질적 변화를 끌어낼 수 있을까?
가족다양성을 포용한다는 것의 의미
우리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에서 1인 가구로 살아가다가도 가족을 꾸릴 수 있고 그 안에서 위기와 안정을 경험한다. 국가가 가족을 혈연과 혼인 관계를 넘어 다양한 가족구성을 인정한다고 할 때, 가족은 고정된 무엇이 아니라 다양한 생애 주기, 유동하는 것이라는 전제 속 모든 사람이 포함되는 정책이어야 한다. 그래서 가족 구성권을 포용한다는 의미는 모든 사람의 보편적인 삶을 포용한다는 의미와 만난다. 이번 기본계획은 누군가의 삶의 배제해 차별을 발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가족으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겪게 되는 사회 구조 속 차별을 제거하고, 가족의 권리를 보장하는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가족정책은 이러한 사실에 기초하여 세워져야 한다.
가족구성이 다양하고 유동적일 수 있다는 사실은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진행한 ‘가족 다양성에 대한 인식 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이 조사에 따르면 ‘혼인·혈연관계가 아니어도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면 가족’이라는 데 동의한다고 밝힌 비율이 전체 중 약 70%다. 정서적 유대만으로 친밀한 관계라면 가족일 수 있다고 답한 비율도 40%에 달할 만큼 가족에 대한 사회 인식은 달라졌다. 가구형태도 1인 가구 포함 2인 이하 가구가 전체의 60%를 차지하고, 부부와 미혼자녀로 구성된 이른바 정상가족은 30% 채 되지 않은 비주류적인 가족형태가 되었다. 또한 성인이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것에 대해 80.9%,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해 48.3% 수용할 수 있다고 답하는 등 가족다양화에 대한 수용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렇게 급속하게 변화하는 가족 구성과 사회 인식은 정부가 늦게나마 인구 재생산과 돌봄의 도구로 보는 관점을 탈피하기 위한 계획을 내놓은 동력이 되었다. 문제는 전향적인 태도 변화라고 일컫는 정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디까지를 가족의 범위로 인정할 것인지 선을 긋고 있다는 것이다.
보편적인 가족구성권을 향하여
최근 정영애 여가부 장관은 이번 계획에 대한 종교계 일각에서 가족다양성 확대는 사실상 동성혼 허용’이라는 반발에 대해 동성혼인 관계는 4차 계획이 말하는 가족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모든 가족이 차별 없이 존중받고 정책에서 배제되지 않는 여건을 조성하겠다고 공언한 여성가족부는 자신의 가족담론과 가족정책이 성소수자 비혼‧동거 가구를 정책 대상으로조차 인식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 셈이다.
그동안 국가에 의해 가족이되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사람들이 정책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이들의 총체적 삶에 대한 권리를 가시화하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4차 가족계획이 성소수자의 가족구성권에 대한 내용을 담지 않고 있는 것은 가족다양성의 의미를 온전히 실현하기 어렵게 만든다. 성소수자에 대한 가족구성권을 배제는 단순히 ‘동성혼 불허’의 의미가 아니라 실질적인 돌봄과 친밀성을 실천하는 다양한 가족 관계들 사이의 위계를 만든다는 점에서 여전히 누가 가족을 구성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수년간의 가족정책은 누가 나의 가족인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견고한 국가와 이성애 중심적인 가족규범에 균열을 내려고 시도해왔던 도전 덕분에 변화해왔다. 이번 4차 계획이 바로 그 결과물이라면 국가가 가족유형에 따라 서로를 돌보고, 지지하는 관계를 차별하거나, 선별적인 복지의 대상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가진 보편적인 권리로서의 가족구성의 의미를 실현해나가야 할 것이다.
다시 가족은 누구이냐는 질문 앞에서
원가족을 떠나 20년 가까이 자취생활을 하며 다양한 가족형태를 경험해왔다. 없는 수중에 전세를 구하기 위해 후배와 함께 살기로 했고, 원가족 돌봄에 진절머리를 느낀 고향 친구가 무작정 서울로 상경한다고 했을 때 두 번 고민하지 않고 생활공동체가 되기로 했다. 지금은 애인과 함께 집을 마련해 살고 있다. 원가족을 떠난 이후 나에게 ‘가족되기’란 늘 구체적인 나와 타인의 삶의 욕구가 반영된 실천이었다. 때론 누군가에게 가족되기를 청했고, 때론 청함을 받으며 친밀함을 바탕으로 상호 돌봄과 연대감을 느끼는 과정이었다. 정부의 다양한 가족을 포용하겠다는 4차 기본계획을 계기로 우리 사회는 다시금 ‘가족은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 섰다. 이제 국가는 제대로 답해야 할 것이다. 누구나 차별없이 평등한 관계 속에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