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대선주자로 공표했던 1호 공약, 청년주거정책이 흥행 가속도를 밟고 있는 것일까? 지난 11월 24일, 당정 협의 결과로 국토교통부는 ‘청년 내 집 마련 1․2․3 주거지원’ 정책을 발표했다. 이번 정책은 24세 이하 무주택자 청년이 ‘청년 주택드림 청약통장’에 ① 1년만 가입하면 ② 2%대 저리의 주택담보대출을 분양가의 80%까지 최장 40년까지 ③ 생애 3단계에 걸쳐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청약통장에 가입하는 1단계 준비기를 거쳐 청약에 당첨되면 2단계 대출을 통해 집을 마련하고 결혼·출산에 이르는 3단계에는 추가로 인하금리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자가소유를 향한 윤석열 정부의 청년금융 정책이 처음은 아니다. 올해 1월에는 집값 상한선을 9억으로 높이고 소득 기준을 없애 상대적으로 중고소득자들에게 저금리 대출이 가능하도록 한 ‘특례보금자리론’을 출시했다. 7월에는 매달 원리금 상환 부담이 줄어 대출 한도를 높일 수 있는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까지 시행됐다. 위 정책들이 가계부채 급증을 계기로 일부 중단되거나 재편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을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었다. 떨어진 집값 떠받치기와 위축된 부동산 시장의 반등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 집 마련’이라는 돌림노래를 통해 ‘파격’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주거 안정이 절실한 청년들에게 ‘공공분양’이라는 주택금융을 팔아치우기만 하면 된다.
무주택자 청년이면 누구나 ‘내 집 마련’?
‘집’에 대한 국가의 책임은 대출지원으로 요약된다. 2022년 범정부 차원의 청년 주거대책은 임대주택 중심에서 내 집 마련까지 주거정책의 ‘확대’처럼 제시한다. 하지만 연말 공공임대주택 5조 7천억 예산삭감 사태는 정책뱡향이 명확하게 ‘공공분양 늘리기와 공공임대 줄이기’를 향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삭감예산 중 6천6백억 원이 복원되었지만, 이마저도 전세금을 빌려주는 전세임대주택 예산이었다. 여러 설문이나 연구는 이미 청년들의 주거 정책 수요가 ‘분양’보다는 ‘임대’에 집중되어 있음을 보여주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공공임대주택은 경기 위축 요인이 된다며 대출을 통한 자가소유가 곧 주거 안정이라는 기조를 고수하고 있다. 그렇다면 공공분양은 19~34세 연령으로 구분하는 청년들에게 주거 안정의 효과를 가져다줄까?
“내 집 마련의 꿈을 응원하고 중산층이 두터운 사회로 가기 위해서”라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자부심은 금리 인상에 따라 부동산 시장이 위축되고 집값이 하향 조정된 결과를 적극 감춘다. ‘영끌’의 대표주자가 된 30대 주택소유자는 전년도에 비해 10만 명 이상 감소했고, 20·30세대는 최고 수준의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번 정책을 통해 연간 10만 명 이상의 청년이 대출로 내 집을 마련한들 ‘전 생애주기’에 걸친 지원체계가 될 리 만무하다. 전세라는 사금융 형태의 주택 구매 자금 마련 통로가 대대적 ‘사기’로 나타나고 있는 지금, 국가가 지원하는 ‘내 집 마련’은 청년들에게 제도적 금융을 통한 또 다른 사기의 가능성을 확장할 뿐이다. 자산형성의 사회적 경로가 불안정한 청년 전체가 부동산 금융시장의 자본 축적에 적극적으로 호명되고 강제동원되는 구조를 국가가 나서서 설계하는 꼴이다.
게다가 “청년들에게 희망의 주거사다리 놓아드릴 것”이라는 유의동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의 공표는 국가가 ‘어떤’ 청년들의 희망에 부응하고자 하는지 또한 애써 가린다. 분양가 6억 원의 집은 자산형성의 기회가 미약한 청년 대다수가 아니라, 안정적인 직장으로부터 고정소득을 얻어 자산 축적이 가능하거나 적어도 고액 신용대출이 가능한 청년에게 배분된 희망이다. 그중에서도 ‘가족은행’으로부터의 대출이나 상속 및 증여에 기댈 수 있는 일부를 향한 한정된 약속이다. 후자는 주택 구입 여력이 가장 낮은 20대 가구의 주택소유율이 2020~2021년에 증가한 결정적 이유이기도 하다. 20·30세대의 전체 평균 자산은 늘어났지만, 20·30세대 내 가구당 자산은 상위 20%와 하위 20%의 격차가 35배에 이른다. 전체 가구당 상하위 10%의 자산격차가 13배인 것과 비교해도 큰 차이다. 청년 내에서 자산 양극화는 더 커졌고, 이는 한국 사회의 전체적인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인구·가족 통제의 도구로 쓰여 온 주택체계
윤석열 정부의 ‘내 집 마련’ 기조는 청년세대라는 비동질적인 집단을 단일하게 전제하면서 주택 구매력에 따른 자산격차와 계급격차를 강화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문제는 청년주거 정책이 월세에서 전세, 전세에서 자가로 ‘주거사다리 복원’이라는 주거 상향의 환상을 유지시키면서, 전 생애주기에 걸친 지원체계라는 명목으로 현재의 한국 사회 인구변동과 가족주의 주택체계의 실패를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에서 정상가족 생애규범을 재생산해 온 주택체계의 핵심은 바로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온 주택청약제도와 가점제다. 주택 분배는 국가의 인구·가족 통제 정책과 단 한 번도 분리된 적 없는 역사다. 1997년 출생률 저하로 제외되기 전까지 ‘불임 시술자’를 우선분양 대상에 적극 포함했던 청약제도는 20년 동안 산아제한 정책으로 활용됐다. 부동산투기를 억제해야 한다는 명분하에 2007년 청약에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가점제 재편이 이루어졌지만, ‘부양가족 수’를 가점 항목에 포함하며 본격적인 정상가족 중심의 줄 세우기가 시작됐고, 1인 가구나 비혈연가구, 젊은 층은 정책 결정 과정에서 삭제됐다. 2008년 시작된 신혼부부 특별공급은 말 그대로 ‘갓 결혼한 부부’가 아니라 출산이라는 자격을 덧붙였다. 맞벌이의 경우 소득이 낮은 여성이 직장을 그만두고 출산·육아를 담당하는 것은 청약의 소득수준 자격을 맞추고 아파트 청약당첨을 위한 방안으로 자연스럽게 제시됐다. 성차별적 노동시장과 함께 주택제도가 많은 여성의 차별적 생애경로를 구성해 온 것이다. 지금도 공공분양 일반공급은 정상가족을 구성한 사람들에게 집을 제공하는 통로로, 특별공급은 정상가족을 구성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유인하는 경로로서 작용하고 있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자가소유가 긴 시간 중산층 가족의 보편적인 규범으로 영향력을 행사한 데에는 지속적인 주택가격의 상승과 시세차익 보장을 가능하게 했던 도시 개발 및 아파트 단지화뿐 아니라, 4인 가구 중심의 인구구조와 인구증가, 이에 기반한 대량의 주택 건설과 공급이라는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택체계가 중산층이라는 계층 상승 및 재생산 욕망과 함께 정상가족 규범에 기반한 특정한 생애주기를 정상화해 왔고, 바로 그 생애단계가 주거점유 형태를 결정지어왔다. 청년기 안정적인 직장으로의 이행은 중산층 진입을 예비하는 단계로, 결혼·출산을 통한 4인 가족의 구성은 월세-전세라는 자산증식 과정을 거쳐 아파트라는 자가 주거 형태를 통해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었다. 생애전환 시기에 성공적인 이행은 특정한 주거로의 이행과 일치해야 했으며, ‘중산층’으로 표상된 사회구성원이라는 자격과 시민이라는 지위를 안정적으로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합계출생률은 0.78까지 떨어졌고 그 누구도 한국 사회 성차별이 대대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이상 그 증가를 기대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인구수는 3년 연속 줄고 있지만 가구 수는 오히려 늘었다. 1인 가구와 2인 가구의 비중이 계속 늘어나고 있기 때문인데, 1인 가구는 1,000만 가구가 코앞이다. 60-70대 고령 1인 가구가 많은 수를 차지하지만, 20대 이상 전 세대에서 1인 가구의 비율이 거의 비슷하게 분포하고 있다. 1995년까지는 전체 가구에서 3-4인 가구 비율은 52.0%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지만, 2022년 현재 1-2인 가구의 비중이 65.2%를 차지한다. 특히 눈여겨봐야 할 변화는 2020년을 기준으로 혈연·법률혼에 기반하지 않은 비(非)친족 가구가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많은 47만을 넘겼으며, 이러한 비친족 가구에 속한 가구원 역시 처음으로 100만 명을 돌파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정상가족 외의 다양한 형태의 삶을 주거권에서 배제하거나 잔여적인 것으로 주변화하는 주택체계는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렵고, 가족상황과 주거 형태가 연계된 광범위한 차별을 허용하고 방치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정상가족 생애규범으로부터 탈주, 실패한 가족제도에 대한 도전
현재 대표적인 주거불안정 집단으로 등장한 청년들의 삶은 정상가족의 경계를 공고히 지켜온 현재의 주택체계의 시효가 만료했음을 드러내고 있다. 불안정노동의 확대는 안정적인 노동시장 지위와 주택담보대출을 통한 주택 구매 선택지를 다수 청년의 삶에서 삭제시켰다는 점에서 중요한 구조적 변화다. 하지만 ‘주택’은 노동시장뿐만 아니라 사회적 재생산, 사회적 위험과 안전대책, 인구구조 및 가족구성, 친밀성과 돌봄의 실천 등 삶의 전 영역과 연결된 체계다. 집은 비싼 상품이기도 하지만, 친밀한 관계를 맺고 부양의 책임과 돌봄을 나누는 생존에 필수적인 자원이자 공간이기 때문이다.
가족제도와 주거 형태를 결합하면서 ‘내 집 마련’을 주거 안정의 유일하고 보편적인 목표로 설정해 온 주택체계의 기조는 생애·가족·이성애·젠더 규범의 폭력성으로부터 탈주하는 이들에 의해 가장 먼저 도전받기 시작했다. 비혼/모·여성·청년·1-2인·공동체 가구를 구성하며 다양한 가족형태로 살아가는 이들은 특정한 가족 실천을 강제하고 주거 형태를 할당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주택체계에 녹아들어 있는 규범 자체가 변화해야 함을 외쳐왔다. 청년 세대의 대안적인 주거 실천에 대한 한 연구는 청년들의 ‘집’에 대한 욕구가 고독감을 완화하고, 주거비를 분담하는 공동생활을 통해 쾌적하고 넓은 공간과 함께 자기 주체성과 사생활이 담보되는 공간을 갖고, 가구원 간 수평적인 관계를 확보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는 점을 짚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욕구를 가진 이들의 주거 실천을 유지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에는 이들이 가진 보다 탈물질적이고 고차원적인 욕구, 즉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함께 살 수 있는 권리의 보장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기존의 가족질서와 불화하며 이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사람들의 시도는 주택체계 안에 가로막혀 있다. 정상가족을 대상으로 집중 공급된 주택 구조는 기존 가족구성으로부터 벗어난 사람들의 욕구를 제한하고 있고, 규범적인 생애경로는 청년들이 주로 거주하게 되는 임대주택을 아파트와는 다르게 그저 거쳐 갈 뿐인 임시적 장소로 여기게 만든다. 특히 불안정노동을 하는 청년들에게 ‘내 집 마련’은 생애전환과 이행에서 완주해야 할 목표로서 강요되고, 스스로도 그 목표를 향해 노동시장에서 끊임없이 경주한다. 사람들이 갖게 된 새로운 욕구는 이미 변화한 사회 속에서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아니며, 주거불안정은 단순히 청년 세대에만 국한된 위기가 아니라 모든 사회구성원의 현재적 삶과 미래의 생애 전망을 그리기 어렵게 하는 문제가 된 지 오래다. 더 많은 개인들을 기존 질서에 포섭하기 위한 ‘내 집 마련’의 기회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친밀성의 형태‘에 따라 누구와 함께 어떻게 살 것인지를 선택하고 보장받을 권리가 필수적인 이유다.
‘중산층-자산형성-내 집 마련’ 경로라는 환상을 끝낼 때
『한국 복지자본주의의 역사』의 저자 김도균은 “가계가 보유한 금융자산이나 실물자산을 복지대체수단으로 활용”하는 자산 기반 복지(asset-based welfare)가 민주화 이후 10년 동안 주택소유를 중심으로 한 중산층 육성 전략을 통해 형성되어 왔음을 지적한 바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도 강조하는 ‘중산층-자산형성-내 집 마련’이라는 연결도식은 바로 신자유주의적 금융 세계화 하에서 열악한 노동구조와 국가복지의 부재라는 조건에 대응·생존하기 위한 가족의 주택실천이자 전략이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형성된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내 집 마련’은 표면적으로는 주거불평등에 대한 대응으로 제시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주거불평등을 해결하기보다는 집을 자산증식의 기반이자 투자 대상으로 삼는 주택상품화와 맞물려 국가의 주택매매정책을 활성화하고 약한 복지기반을 보충하는 기반이었다. 이러한 복지책임의 공백 속에서 40년 동안 빚과 불안을 떠안는 대출의 자격을 얻거나 생애전망을 그릴 수 없는 관계·주거불안정에 놓이는 것이 ‘무주택자 청년 누구나’의 삶이다.
“청년주거정책은 주거권을 차별하지 않는 시대, 재산권보다 주거권을 우선으로 논할 줄 아는 시대를 선도해야 할 책임이 있다.”
쳥년들의 삶을 통해 보편적인 주거권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해 온 ‘민달팽이 유니온’의 지수 활동가가 지목한 바로 그 책임이 주거권에 대한 국가 역할의 핵심이다. 청년들을 포함한 사회구성원들의 목소리는 혼자 사는 것 자체를 향하기보다 기존의 생애·가족·이성애·젠더 규범이 지배하지 않는 집과 관계, 꼭 ‘내 집’이 아니어도 국가의 주거지원으로부터 부당하게 배제․차별받지 않고 주거 안정과 만족도를 확보하면서 삶의 전망을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는 권리를 향하고 있다. 청년주거정책의 필요가 기존의 주거정책이 포착하고 해소하지 못한 사회문제라는 전제 속에서 등장했다면, 바로 그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에는 집의 소유 여부에 따라 주거 안정의 책임을 개인과 가족에게 떠넘겨온 국가의 통치 규범을 전환하는 것이다. ‘생애전망’이 가능할 정도로 주거의 질과 가격 안정성을 높이고 세입자 권리를 대폭 강화하면서 국가책임의 공백을 채우고 친밀성과 돌봄에 대한 권리를 포괄하는 주거전환이야말로 정부가 그토록 외쳤던 ‘희망’의 초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