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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노숙당사자모임과 함께하는 주거인권학교 ③] ‘살만한 집’을 찾아 나선 퍼즐 여행

잃어버린 퍼즐 한 조각, 나도 홈리스일까?

주거인권학교 두 번째 날. 간단한 몸 풀기 놀이(쥐잡기 놀이)로 분위기를 전환시키고 바로 본 프로그램으로 진입했다. 프로그램은 ‘집 퍼즐’. 직소퍼즐처럼 큰 판 하나를 조각내서 그걸 모두 참가자들에게 나눠주었다. 퍼즐은 역시 맞춰야 제 맛. 그런데 오늘 퍼즐은 맞추는 것 보다 더 많은 제 맛 거리를 담고 있었다.

집과 행복은 무슨 관계?

활동가들과 노숙인 당사자분들이 고루 섞여 모인 두 개의 모둠에서 우리는 퍼즐 조각을 받고 지령을 기다렸다. 질문에 대한 답을 퍼즐 조각에 넣으라고 했다. 하나.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집은 어떤 집이었나? 둘. 그 이유는? 세상에…. 질문이 어찌 저리 황당할 수가 있나. 판교 청약에 대한 과열현상처럼 집이라는 것이 생활공간이 아닌 재산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에서 집과 행복을 연결시키라는 것은 언뜻 참 뜬금없는 질문처럼 여겨지기만 했다. 특히 물질적 공간으로서의 ‘집’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나의 경우는 더욱 당황스러운 질문이었다. 특별히 집이라고 해서 행복했었나? 라는 생각을 억지로 떠올려야 했기 때문이다.


‘주거권’의 의미를 이해하다

비 피하고 해 가린다고 해서 다 집이 아니라는 말을, 질문에 대한 답변들을 듣고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행복했던 집에 대한 다양한 이유들이 등장했다. 가족과 함께 살 수 있어서, 마음이 편해서, 독립할 수 있어서, 직장이 가까워서, 깨끗하고 쾌적해서 등등. 우리가 쉽게 ‘행복하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기본 조건들이 집을 매개로 해서 설명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집이 없다면 충분히 누릴 수 없는 행복의 조건들이기도 했다. 가족과 함께 산다거나 직장이 가깝고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은 ‘집’이 아니고서는 안 된다. 각 모둠에서 자신들이 살고 싶은 집을 그려보고 나니 주거권의 의미는 더욱 명확해졌다. 우리 모두가 편안하고, 안락하고, 넓고, 쾌적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런 집에서 살고 싶어 했다.

주거인권기준을 퍼즐에 담아 알기 쉽게 풀어냈다.

▲ 주거인권기준을 퍼즐에 담아 알기 쉽게 풀어냈다.


‘모든 인간에게 적절한 주거에 대한 권리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유엔(UN)의 주거권 설명에 따르면, 적절한 주거를 위해서는 ①사생활 보장 ②적당한 위치(병원, 학교 등의 공공시설과 가까운 곳) ③기본 설비(조명, 난방, 통풍 등) ④적절한 공간 ⑤기반시설(수도, 쓰레기 처리 시설 등) ⑥쾌적한 환경 ⑦점유의 안정성 ⑧지불 가능한 비용 등의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언제 철거될지 몰라 불안한 철거촌 사람들, 높아가는 전세 비용에 오늘도 이사 갈 걱정을 하는 사람들, 지독한 집주인 만나 물이 새는 방안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 사람들, 이 모두가 주거에 대한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는 것이다.


‘홈리스’는 ‘하우스리스’가 아니다

노숙인은 물론 우리 모두가 홈리스임을 공감하는 순간

▲ 노숙인은 물론 우리 모두가 홈리스임을 공감하는 순간



그래서 그날 참가자들은 독립하고 싶은 비혼 여성, 비닐하우스에 사는 가족, 부모에게 매일 매 맞는 아이, 쉼터에서 생활하는 사람, 서울역에 사는 사람 모두가 홈리스라는 걸 이해했다. 홈리스는 단순히 집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안락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가정이 없는 사람인 것이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집 밖으로 쫓겨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에게 비 피할 곳이라며 쉼터나 시설로 내모는 것은 주거권 보장이 아니다. 집은 재산이 아니라 내가 점유할 수 있는 공간이며, 그저 내 한 몸 누이는 공간이 아니라 안락하고 편안하게 살만한 공간이 집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홈리스(homeless)는 그냥 하우스리스(houseless)가 아니라, 안락하게 살고 있지 못한 모든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집 없는 사람들에게 게으르다고 말 할 것이 아니라 내가 안락하게 살고 있지 못하는(적절한 주거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사회구조적 문제를 돌아봐야 하는 것이다.


홈리스들의 연대가 필요하다

주거권에 대한 이야기들을 함께 해보고 나서, 함께한 참가자들은 잠시나마 ‘우리 모두가 홈리스다’라는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쉼터에 사는 사람이 비닐하우스에 사는 사람을 위로하고, 서울역에 사는 사람이 부모에게 매 맞는 아이를 위로하면서 말이다. 편안한, ‘살만한 집’에 대한 권리를 위해서는 단순히 집 없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진짜 홈리스들이 연대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집퍼즐>은...

주거권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주거권의 침해가 어떤 것인지를 함께 생각해보는 프로그램입니다.

모둠별로 퍼즐조각을 나눠준 후 각 조각에 참가자들에게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집에 대한 이야기를 쓰게 합니다. 서로 각자의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퍼즐을 모두 맞춥니다. 모둠별로 이야기된 주거권의 내용을 바탕으로 ‘살만한 집’이라고 볼 수 있는 집을 그려서 발표합니다.

이어서 다양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조건을 카드에 적어 한 명씩 나눠줍니다. 자신의 카드에 적힌 사람이 홈리스인지 아닌지 생각해보고 양쪽으로 갈라선 후, 홈리스의 판단 기준에 대해 모두 함께 토론해봅니다.

덧붙임

레이 님은 평화인권연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