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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기자의 눈] '더불어 사는 집'에 사는 희망

"우리에겐 희망이 있어요.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갑시다."

정치인의 선동도, 사회운동가의 달변도 아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리에서 누울 자리, 먹을거리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했던 김동환 씨의 말이다. 동환 씨는 '더불어 사는 집'에 들어오기 전에 거리 노숙을 피해 쉼터에서 생활했었다. 하지만 먼저 들어온 쉼터 생활자들에 의한 폭력, '하지 말라'식의 억압적인 규칙들 때문에 마음놓고 생활할 순 없었다. 쉼터는 사회적으로 용인 받는 감옥으로 느껴졌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과도한 보살핌이 아니라 자립을 위한 보금자리로서의 집, 그리고 믿고 연대할 새로운 가족이었다. 동환 씨는 '더불어 사는 집'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고 있다.

'더불어 사는 집'은 철거가 예정되어있던 삼일아파트를 지난해 7월부터 점거해서 만들어진 노숙인들의 생산 공동체다. 아파트의 빈 공간을 점유해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는 구청에서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을 설치해 언론과의 접촉을 막기도 했고, 밤마다 강제퇴거의 불안에 떨어야 했지만 지금은 9월까지의 점유를 약속 받은 상태다. 현재 20여명의 노숙인들이 자신의 상황에 맞게 아파트의 빈 공간을 이용한다. 철거가 예정된 노후한 아파트 건물이 사는 데 편리하진 않지만 차가운 거리에 살았던 이들에게는 삶의 기회가 되는 소중한 공간이다. 자립과 자율적인 생활을 위해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기증 받거나 거리에서 모아 온 재활용품을 손질해서 판매한다. 그렇게 번 돈은 거리의 노숙인들에게 점심식사 한 끼를 제공하는 데 사용되고, 더불어 사는 집 식구들의 생활비로도 쓰인다.

지난 5일 처음 '더불어 사는 집'을 방문했을 때, 가족들은 전체 가족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사람이 사는 곳인 만큼 갈등도 있고 오해도 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집을 떠나는 이들도 있고 '데모'하는 사람들로 알려져 거부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가족들이 모여 문제점을 서로 이야기하고 함께 해결방법을 찾는다. 서로를 믿고 이야기하는 가운데 소통하고 연대하려는 열정에는 변함이 없다. 실수와 시행착오도 겪으며 자율적인 공동체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더불어 사는 집'의 가족들은 월요일을 기다린다고 했다. 얼마 되진 않지만 밥 한 끼를 거리의 노숙인들과 나눌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살아갈 의지를 잃어 가는 사람들과 나누는 짧은 이야기들은 '더불어 사는 집'이 여러 어려움을 이겨내고 남아있어야 하는 이유이다.

월요일마다 열리는 '더불어 사는 집'의 무료급식소

▲ 월요일마다 열리는 '더불어 사는 집'의 무료급식소



매주 월요일 노숙인들에게 급식을 제공할 때 직접 요리를 하는 '더불어 사는 집' 송재희 대표는 예전에 중국요리 집에서 요리를 했다. IMF 시기에 사업을 변경했는데 그만 부도가 나고, 부족할 것 없었던 상황은 곤두박질 쳤다. 빚더미가 쌓이자 죽기를 각오하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녔던 생활을 이야기했다. 대부분의 가족들도 견디기 힘든 시간을 겪고 '더불어 사는 집'으로 온다. '노숙하는 동안 먹기 힘든 고기'를 준비하고, '햇빛을 가릴 수 있는 파라솔'을 구입하자는 가족들의 마음은 그래서 더욱 각별하다.

하지만 '더불어 사는 집'의 가족들은 가슴이 탄다. 언론은 더불어 사는 집 가족들처럼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기사를 쓰지 않는다, 기사를 쓴다고 해도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장면만을 극대화시킬 뿐이다. 또 정부가 새로 제시한 부동산 정책도 '서민을 위해' 만들었다지만 노숙인들의 주거환경의 개선과는 실질적으로 거리가 먼 정책들이다. '더불어 사는 집' 가족들은 "언제까지고 노숙인으로 손가락질 받으며 살 순 없다"며 주거의 문제를 직접 겪는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행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비어있는 공간을 '점거'해 사용한다는 것은 한국에서 생소한 경험이다. 사유재산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 아닌가 하고 거부감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누구에게나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집은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요소다. 거리의 노숙인들에게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고 안전을 위한 주거가 필요하다. 빈집 점거는 주거의 사유화로 인해 과도하게 침해된 기본적 권리로서의 주거권을 회복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구청과 약속한 대로 9월이 지나면 '더불어 사는 집'은 삼일아파트에서 나가야 한다. 그와 함께 '더불어 사는 집'의 점거는 비어있는 보금자리를 찾아 다시 시작된다. 동현씨는 "더불어 사는 세상은 한 걸음을 걸어야 만들어진다"고 했다. '더불어 사는 집'이 점거를 통해 사회적 권리에 대한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고, 기본적 권리로서의 주거권을 위한 작지만 깊은 한 걸음을 내딛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