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고르자면 먹는 일보다는 마시는 일을 좋아합니다. 먹을 것에 관심이 없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커피, 차, 물, 주스, 탄산음료, 술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마실 것을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물을 마시고, 아침 식사 대신 주로 우유에 더치커피를 섞은 라떼를 마십니다. 컴퓨터 앞에서 일을 할 때에는 아이스 커피를 몇 잔씩 리필해서 홀짝이다가, 집에 돌아와서 자기 전에는 캔맥주를 땁니다. 휴일에는 그 날 마실 차를 골라 커다란 포트에 우려 따뜻하게도, 차갑게도 마시며 하루를 보내곤 합니다. 냉장고에는 꼭 몇 가지 종류의 주스와 탄산음료가 떨어지지 않도록 신경을 씁니다. 눈을 뜨고 생활하는 시간 내내 무언가를 마시며 지낸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저는 음료를 좋아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사랑하는 음료는 단연 커피와 홍차입니다. 커피에 맛을 들인 건 스무 살에 카페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였어요. 일 주일에 세 번씩 밤 11시부터 새벽 5시, 혹은 아침 8시까지 일을 했는데, 난생 처음 하는 야간 노동에 잠과 피곤을 쫓고자 커피를 열심히 마시곤 했습니다. 쓴 맛 나는 약이라고 생각하며 마시다 보니까 어느 새 천천히 저에게 스며들었다고 할까요. 그 전까지는 카페에 가더라도 아이스티나 스무디처럼 달달한 음료만 마셨는데, 어느 새 저는 한겨울에도 덜덜 떨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또 어느 여행지에선가 우연히 들른 찻집의 점원분과 친해져서 여러 종류의 차를 대접받은 뒤로는 홍차에도 취미를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커피와는 다른 매력을 가진 쌉싸름한 맛, 다양한 향과 색이 좋아서 하나둘 사 모으다 보니 지금은 부엌 장 한 켠이 차로 가득합니다. 커피는 한 잔씩 내릴 수 있는 반면에 홍차는 보통 두세 번씩 우려서 먹다보니, 집에 오래 머물 수 있는 여유가 있을 때 차를 찾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휴식과 여유를 떠올리게 만들어줘서, 더욱 차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렇게까지 커피와 홍차를 끼고 살게 된 데에는 카페인에 민감하지 않은 체질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애초에 처음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시절 새벽 내내 커피를 마시다가 아침에 퇴근해서 바로 잠드는 생활을 했기 때문인지, 하루 종일 커피와 홍차를 물처럼 마시거나, 침대에 들어가기 직전에 물 대신 커피로 목을 축이고 나서도 딱히 잠을 방해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는요.
최근 몇 년간 수면의 질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원래도 누워서 바로 자는 편은 아니었지만, 요 근래에는 한두 시간씩 잠들지 못하는 날도 많습니다. 물론 잠들기 힘든 게 모두 카페인 때문은 아니겠지만, 잠을 잘 못 자는 날들이 이어지니 카페인에도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습니다. 늦은 오후부터는 커피나 홍차 대신 물을 마시려 노력하고, 일부러 디카페인 커피나 허브차를 사두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사랑해서 언제나 곁에 두던 존재와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려 하니 알 수 없는 억울함과 짜증이 슬며시 고개를 들 때도 있습니다.
얼마 전 한 동료가 매일 밤 마시던 맥주를 무알콜 맥주로 바꿔봤는데, 만족도에는 별 차이가 없더라는 말을 해줬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렇게 잘 안 되더라구요. 디카페인 커피나 홍차, 카페인이 없는 허브티를 마시면 뭔가 만족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원래 카페인에 영향을 덜 받았던 만큼 카페인 중독은 아닐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해왔는데, 알게 모르게 꽤나 많이 의존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사랑이라고 믿었는데, 사실은 중독이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본 책 광고에 이런 문장이 있었습니다. “커피를 좋아해서 커피를 줄였다. 위가 안 좋아진 탓에 전처럼 하루에 서너 잔씩 마실 수 없게 되었다. 좋아하는 커피를 오래 마시고 싶어서, 가끔 그리고 조금씩만 마시면서 지낸다.”(「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어」, 김유은.) 전보다 줄였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저는 대부분의 사람들보다는 커피를 많이 마십니다. 그런데 확실히 양을 의식하며 마시다 보니, 한 잔 한 잔이 조금 더 소중해진 느낌을 받습니다. 줄어든 양만큼 더 맛있고 질 좋은 커피를 찾기도 해요. 중독인지 사랑인지 구분하려 노력하기보다는, 더 오래 사랑하기 위해서는 이전과 조금 다른 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문장을 따라 가보려 합니다. 여전히 저는 먹는 일보다는 마시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