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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개인의 작은 실천

건설현장 일을 하려고 새벽에 집에서 나와 일터에 도착했습니다. 아침을 줄 테니 근처 국밥집으로 오라는 반장님의 연락을 받고 국밥집에 도착해 식탁 앞에 앉았습니다.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없어 흰 쌀밥만 퍼먹었습니다.

친구 공방의 가벽을 만들다가 엄지손가락을 베이고 말았습니다. 병원을 찾아서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피가 조금 많이 나와서 어쩔 수 없이 선배의 차를 얻어타고 응급실에 가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공방으로 돌아와서는 자전거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할머니 요양원 면회를 갔다가 큰아버지의 집에 들렀습니다. 큰어머니가 저를 위해 특별히 수육을 삶아놓으셨습니다. 양해를 구하고 감자조림과 콩나물무침, 버섯만 먹었습니다.

탈모가 와서 경구 탈모약 3개월 치를 처방받았습니다. 소젖이 들어있어서 안 먹었습니다. 탈모약은 환불이 안되고 허가받지 않은 개인이 다른 사람에게 판매하는 것도 불법입니다. 머리카락은 점점 사라지는데 약은 책장 구석에 그대로입니다.

자장면을 먹었습니다. 볼과 입술에 소스가 묻었습니다. 볼에 묻은 소스는 식전에 씻은 손가락으로 닦아서 빨아먹고 입술에 묻은 것은 혀를 열심히 굴려서 닦았습니다. 식탁 위엔 일회용품이나 남은 음식 하나 없이 빈 그릇만 놓여있습니다.
밑창을 갈고 발목의 천을 교체하고 구멍 난 곳을 메꾸고 다른 쪽의 구멍 난 곳은 꿰매가며 8년 동안 신은 제일 좋아하는 구두가 있습니다. 터진 곳 꿰매고 어깨끈이 떨어질 때마다 바느질로 이어서 10년을 쓰고 있는 가방이 있습니다.

최근 이사를 했습니다, 모든 가구 및 가전을 중고로 샀습니다.
성인이 되고 나서 한 번도 핸드폰을 산 적이 없습니다.
형광 조끼를 입고 북한산 둘레길 주변의 쓰레기를 주웠습니다.
재난지원금 대부분을 생협에서 사용하고 나머지는 작은 음식점에서 썼습니다.

누가 언제부터 개인의 실천을 설명할 때 ‘작은’이라는 꼬리표를 붙였을까요? 세상을 바꿀 동력을 내포한 개인의 실천을 평가절하하고 사람들을 지치고 체념하게 하려는 기후 악당의 음모가 숨겨져 있을까요? 저는 지금 우리가 하는 실천을 “개인의, 쉽거나 때론 귀찮고 어렵기도 하지만 의미 있는 큰 실천”이라고 풀어쓰고 싶습니다. 조금 장황해서 눈에 잘 안 들어오긴 하네요. 그렇지만 작은 실천이라는 말 속에 갇혀서 개인의 자기만족 혹은 죄책감을 더는 정도로 실천이 끝나는 것보단, 큰 실천이라고 선언해서 ‘일개 개인인 나도 노력하는데 기후위기에 책임이 있는 기업이나 정부는 대체 뭐 하고 있는 거지? 남이 싼 똥 내가 열심히 치우고 있네. 똥 싼 놈들에게 한소리 해야겠다!’ 가 훨씬 좋은 태도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