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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인 인터뷰

우리에겐 전쟁을 멈출 책임과 힘이 있다는

이용석 님을 만났어요

 

세계 곳곳에서 끊이질 않는 전쟁으로 분노와 불안, 무력감이 깊어지는 요즘입니다. 여전히 전쟁은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처럼 느껴지는 세상에서, 전쟁 없는 세상이 가능하다며 싸우고 또 애쓰는 이들이 있습니다. 전쟁을 멈출 책임과 힘은 바로 우리로부터 나온다고 말하는 이용석 님을 만나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2003년에 만들어진 전쟁없는세상(이하 ‘전없세’)라는 평화 단체의 창립 멤버로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는 이용석입니다. 중간에 5년 정도는 단체에서 운영위원 같은 걸로 참여하면서 동시에 출판사의 편집자로 일했어요. 그러다 전업 활동가로 사는 게 나에게 더 맞는 거 같다, 내가 더 행복한 것 같다 싶어서 다시 돌아왔고요.

전없세 초기에는 주로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을 했었는데, 지금은 더 넓게 평화 운동을 하려는 중이에요. 어떻게 병역거부를 전쟁거부로 더 확장해나갈지, 나의 삶에서 전쟁을 지탱하거나 전쟁에 도움이 되는 지점을 거부하는 캠페인을 어떻게 만들어나갈지 고민하는 거죠.

그게 근래에는 무기 거래를 감시하고 반대하는 활동으로 많이 드러나고 있어요. 현재 대한민국엔 4개의 무기박람회가 있어요. 그중 가장 큰 아덱스(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 ADEX)와 DX KOREA(대한민국 방위산업전)이 격년으로 번갈아 가며 열려요. 여기 반대하며 대응한 지 이제 10년 정도 되어가는데, 아직은 이런 요구와 공감대가 사회 전체적으로 충분히 퍼지진 않은 것 같아요. 더 열심히 해야겠죠.

 

안 그래도 작년 DX KOREA 2022에서 동료들과 비폭력 저항 액션을 하셨다가 1,700만 원에 달하는 벌금형을 받으셨잖아요. 그 때문에 직접행동 기금도 모으고 계시고요.   

맞아요. 다가오는 10월 13일에는 재판이 있고요. 그거 말고도 올해 10월 4일부터 22일까지는 동아시아 지역 최대 규모의 아덱스가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려서, 평화운동하는 단체들-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참여연대, 피스모모, 한베평화재단-과 함께 대응하고 있어요. 굵직한 행사만 따져도 이렇게 연달아 대응하는 경우가 생기네요.

사실 전쟁은 어쩔 수 없는 게 아니거든요. 전쟁을 계속 일으키는 건 전쟁으로 이익을 보는 이들, 즉 인간이니까요. 더 큰 이익을 위해 끊임없이 군사적인 갈등을 유발하고, 때로는 전쟁을 기획하기도 하는 거죠. 거기에 무기 박람회가 굉장히 핵심적인 역할을 해요. 흔히 견물생심이라고들 하죠. 무기 회사들이 자기 무기 상품을 진열해놓고, 각국의 국방부 장관이나 무기 획득 담당자들이 와서 무기 계약뿐 아니라 상담도 받으면서 전쟁에 힘을 쏟게 만드는 게 무기 박람회예요. 자국민을 탄압하는 독재 국가라든지 내전을 치르고 있는 분쟁 지역에 지금 당장 쓸 무기를 사고파는 판을 한국 정부가 깔아주고 있는 거죠.

 

2022년 9월 22일 DX Korea에서 액션 며칠 후 일산경찰서에 조사 받으러 가서 찍은 사진. 현수막에는 "방산업체의 이윤 = 누군가의 죽음, STOP THE ARMS FAIR 전쟁 장사를 멈춰라"라고 쓰여있다. [출처: 전쟁없는세상]

제겐 무기 '거래'와 무기 '지원'의 경계가 흐릿하거든요. 근데 근래 한국 정부에서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무기지원을 하니 마니 할 때 ‘전쟁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약한 쪽에 힘 실어주는 게 최선 아니냔 주변 반응을 꽤 봤어요. 

충분히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는 게, 특히나 한국은 불과 한 100년 전만 해도 여러 큰 전쟁에 동원되고 휩쓸렸던 역사가 있잖아요. 현재 세계 10위 안에 드는 군사 강대국이지만요. 그러니 약한 국가에 힘을 실어줘야 생각하게 되는 게 자연스럽다고 봐요. 하지만 한 쪽의 힘을 세게 하면, 다른 쪽의 동맹도 힘을 더 싣겠죠. 그러면 결국 우리의 의도와 달리 전쟁도, 그로 인한 피해도 점점 커질 테고요.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압도적 힘으로 평화를 구축”한다고 했잖아요. 상대보다 강한 군사력을 만들어 지레 겁먹어 쳐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게 진짜 평화라는 거죠. 저는 그게 가짜 평화고, 좀 순화더라도 굉장히 위태로운 상태를 유지하는 것밖에 안 된다고 봐요. 당장은 안정을 주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전쟁을 계속해서 준비하겠단 거니까요.

저는 약한 쪽, 우크라이나의 군사력을 세게 하는 게 아니라 강한 쪽인 러시아의 힘을 약하게 하는 방법도 가능하다고 봐요. 작년 9월 말에 푸틴이 자기 예상보다 전쟁이 길어지고 병력 수급이 잘 안되니까 예비군들에 강제 동원령을 내렸거든요. 그런데 그 대상이 된 러시아 남성들이 국가에서 탈출했고, 지금도 하고 있어요. 한국으로도 들어왔거든요. 수백 명이 난민 신청을 하려고 했지만 한국 정부는 난민 심사 기회조차 주지 않았고요. 거기 불복한 몇 명이 행정소송을 통해 겨우 자격을 얻어 난민 심사를 기다리고 있어요. 한국 정부가 정말 전쟁 피해가 커지지 않길 바란다면, 전쟁을 부추기는 국가의 명령에 동참하지 않은 러시아 난민을 적극적으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 생각해요. 

 

그렇다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우리, 가령 이 소식지를 보는 후원인들이 함께 무기 거래나 전쟁에 저항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특히나 전쟁은 쉽게 개입할 수 없는 영역처럼 느껴지는 면도 있잖아요.

선전 포고를 하고 전쟁을 시작하는 건 해당 국가 국민들의 권력을 대리해서 행사하는 이들, 국회와 대통령이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전쟁을 멈추는 권력은 국민들에게 있다고 생각해요. 전투에는 군인만 동원되지만, 전쟁은 온 국가가 동원돼야 가능하거든요. 그 유명한 독재자 히틀러가 노동조합과 사회주의자들을 말살하는 정책을 폈다가 2차 세계대전 때 법인세를 왕창 올린 적이 있어요. 군수공장을 돌리고 세금을 내는 노동자들의 불만을 달래야 전쟁을 지속할 수 있단 걸 알았던 거죠.

그래서 저는 전쟁에 관여된 국가 국민들에게도 전쟁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들이 나쁘단 말을 하려는 게 아니라, 그만큼 국민인 우리에게 사회적인 힘, 권력이 있다는 거죠. 힘이 없는 이에게 책임을 묻진 않으니까요. 그럴 때 병역거부처럼 강하게 저항하는 이들 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각자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저항을 하면 그 힘이 더 세질 거라 생각해요. 동조하지 않거나 지지하지 않는 것만으로도요. 요새 제가 읽고 있는 『살인의 심리학』이라는 책에 그런 군인들의 다양한 저항 방식들이 나와요. 다른 이들이 총을 쏘는 타이밍에 맞춰 쏘는 척만 하거나 빈 총을 허공에 대고 쏜 군인들이 거의 모든 전쟁에서 확인됐다고 해요.

전없세는 그보다 더 쉽게 함께할 수 있는 저항 방식도 고민하고 있어요. 그 일환으로 이번 아덱스 개회에 반대하는 팩스탄원을 받고 있거든요. 이름과 하고픈 말, 이메일 주소만 입력하면 국방부 장관과 방위사업청장, 아덱스 운영본부 본부장 이렇게 3명에게 항의 팩스를 보낼 수 있게 준비해놨어요. 지난 아덱스 때 팩스탄원을 처음 해봤는데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동참해주셨어요. 업무방해로 고발하더라고요.((웃음)) 우리의 항의 의사가 제대로 전달된 효과를 느꼈고, 더 대대적으로 해볼까 싶어요. 팩스탄원은 여러 번 해주셔도 돼요. 피곤하다가 스트레칭하시면서 보내고, 밥 먹고 보내고.

#StopADEX 팩스탄원 하러가기 (클릭)

 

 

요새 활동하면서, 혹은 살아가면서 드는 생각이나 고민이 있으신가요? 

뭔가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거나 고민이 생기면 프레모 레비의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들』을 읽는데요, 거기서 다른 이들에게 말을 건네고 이야기를 나누는 태도를 다시 생각해보게 됐어요. 프레모 레비는 이탈리아 국적의 유대인인데, 그가 가진 화학에 대한 지식이 나치 수용소를 관리 운영하는 데 쓸모 있다고 인정 받아 살아남았어요. 이 책은 수용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고요. 가라앉은 자들은 죽은 유대인들이고, 본인은 구조된 자에 속할 테죠.

인상 깊었던 건 그의 말투와 태도였어요. 되게 자기 얘긴데도 덤덤해요. 나치 혹은 나치에 부역하게 된 이들이 얼마나 나쁘고 악한지 말하거나 격정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거든요. 그 대신 자신이 겪은 일과 그에 대한 사유를 담백히 전달하죠. 그래서 독자인 저 스스로 생각하면서 감정을 온전히 누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도 이제 활동가로서 뭐 해야한다, 규탄한다, 이렇게 어떤 주장을 많이 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주장이 사람들에게 가닿기 전에 분노를 먼저 쏟아내버리면, 듣는 이들의 감정과 판단을 내가 오히려 빼앗을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그랬듯, 사람들은 스스로 판단하고 감정을 느낄 때 더 움직이겠구나. 

 

인권운동사랑방(이하 ‘사랑방’)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용석 님께 사랑방은 어떤 존재인가요? 

어느 확실한 영역에서 뾰족하고 날카롭게 가는 단체가 있는가 하면, 되게 넓은 영역을 커버하는 단체도 있잖아요. 사랑방은 넓은 영역에서 되게 뾰족하고 날카롭게 스탠스를 취하는 단체인 것 같아요. 여러 영역에 대해 다양하게 배우고 고민할 수 있는 사랑방의 특징들이 되게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활동가들이 너무 힘들 것 같더라고요. 그래도 사랑방은 어떤 권력을 감시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감각이나 기준을 스스로에게도 적용해서 단체를 건강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고, 그게 운동사회에 큰 귀감이라고 생각해요. 또 올해가 사랑방 30주년이잖아요. 그 세월을 버텨온 것 자체가 되게 중요한 역사이기도 하겠고요. 물론 여전히 걱정은 조금 돼요. 제겐 인권운동사랑방이란 조직도 소중하지만 거기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더 소중하거든요. 제게 전없세보다 전없세 동료들이 더 소중한 것처럼요.

전 사회운동이 이어달리기, 이어달리기 중에서도 100m씩 달리는 이어달리기가 아니라 거의 마라톤 급의 이어달리기라고 생각하거든요. 우리가 이루려는 사회 변화가 되게 근본적인 변화일 때가 많잖아요. 최종 목표는 어쩌면 내가 죽을 때까지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고, 평균 수명까지 너무 길어진 시대에((웃음)) 활동가로 오래 건강하게 살기 위해선 마라톤처럼 달려야 하는 것 같아요. 100m처럼 달리면 진짜 죽을 힘을 다해도 42.195km는 못 가잖아요. 또 마라톤처럼 하다가도 중간에 정말로 100m처럼 달려야 될 때가 생기기도 하거든요. 그러니 힘을 아끼고, 나를 돌아보면서 좀 천천히 오래 갈 수 있는 기술을 잘 익히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모든 구성원들이 그럴 수 있을 때 단체도 건강하게 지속되는 것 같아서.

 

지난 9월 23일 세종대로에서 열렸던 <923기후정의행진>에도 새 깃발 들고 오셨다면서요. 기후정의운동 포함해서 사랑방 후원인으로서 근래 사랑방의 활동을 어떻게 보고 계신지 궁금해요.  

네. 저희 깃발이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는데 처음 만들어봤는데 들고 다니기 귀찮더라고요, 안 하던 걸 하려니까.((웃음)) 그래도 좋았던 것 같아요. 근래 사랑방 활동들은 약간 빌드업 단계인 것 같아요. 사랑방이 정말 대단한 게, 맨땅에 헤딩하면서 어떤 운동을 시작하다 그 운동이 잘되면 다 분리/독립시켜버리는 거. 예전에 엄청 크게 했던 인권 교육이나 연구, 영화제가 인권교육센터 들, 인권연구소 창, 인권영화제로 독립한 경우가 그런 거잖아요. 그게 사랑방의 어려움인 것 같기도 하지만요.

기후위기 관련한 활동도 덕분에 살펴보고 있어요. 그런데 제가 아직 공부가 부족해서 그런지 확 와닿지는 않아요.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건 약자다, 그 정도. 약간 그런 고민은 들어요. ‘인권으로 보는 기후위기’라는 게 환경운동이, 페미니즘이, 반군사주의 운동이 말하는 기후위기와 어떻게 다를까 하는 거죠. 인권의 관점에서 기후위기를 얘기할 때에도 기후위기가 권리 피해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되게 다르다는 걸 짚잖아요. 가령 기후위기가 농민들에게 끼치는 영향과 홈리스에게 끼치는 영향이 자세히 보면 다를 텐데, 이걸 그저 기후위기라는 단어로 뭉뚱그리는 데 멈추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다음 단계를 좀 더 구체화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교차하는 지점을 찾고 드러내고 또 사람들을 설득하는 게 사회운동의 몫인 것 같고요. 그런 점에서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하게 되네요. 

한국에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운동 중 인권의 관점으로 기후위기를 마주하는 걸 가장 잘할 수 있는 곳이 사랑방이라고 생각해요. 아까도 말했듯 기후위기 관련한 전없세의 활동은 기후위기와 군사주의 혹은 전쟁을 연결하는 정도일 텐데, 사랑방은 굉장히 폭넓은 범위에서 여러 주제를 살피며 활동하니까요. 그런 사랑방의 특징을 잘 살려 할 수 있는 역할을 앞으로도 잘해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