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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서북청년단이 돌아왔다

지난 9월 28일 서울광장 세월호 분향소에 뒷면에 ‘서북청년단’이 적힌 조끼를 입은 5명의 사람이 등장했다. 이들은 세월호 노란리본을 정리하겠다고 하며, 자신들을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원회라고 소개했다. 

‘서북청년단’을 재건하겠다는 그들의 말 한마디에 보수와 진보 모두 매우 강한 비판을 가했다. 심지어 그 몇 일전 광화문광장에서 ‘폭식’을 전개했던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서조차 자신들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얹힌다며 이들을 비난했다. 대부분의 시민들도 마찬가지이다. 해방 전후 광기와 폭력,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던 서북청년단을 재건하겠다는 그들에 대해 사람들은 냉소와 비판을 가했고, 서북청년단은 주요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하루 종일 올랐다.

서북청년단, 해방 후 광기와 폭력의 역사

‘서북청년단’은 1945년 해방 이후 북에서 내려온 청년 등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이들은 주로 지주, 기독교계 인사, 민족주의자이거나 친일파 등이었고, 이로 인해 북에서 다양한 탄압의 대상이었다. 따라서 남쪽으로 온 이들이 내세운 중요한 기치는 ‘반공’이었다. 


‘반공’을 내세운 이들은 이승만 정부와 미군정의 총‧칼 역할을 대신하였다. 이들이 개입된 민간인 학살과 폭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제주 4‧3항쟁 탄압에 투입되어 민간인 학살을 자행하였으며, 1946년 노동자 투쟁에도 투입되어 폭행과 학살을 자행했다. 백범 김구선생을 암살한 안두희 또한 서북청년단의 단원이었으며, 해방 후 서북청년단은 전국에서 대략 30여만명을 좌경 분자 처단이란 명목하에 살해 또는 탄압했다고 알려진다. 이승만 정부와 미군정의 엄호속에 저질러진 광기어린 폭력은 해방 공간의 특수성을 생각하더라도 도저히 간과할 수 없는 범죄였다. 서북청년단 재건위원회에서 이들의 행위를 반공에 맞선 ‘의거’라고 표현하는 건 자신들의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함일 뿐이다. 

서북청년단, 일베. 폭력집단과 혐오집단의 등장.

서북청년단 재건위원회에 대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은 일베와 서북청년단이 등장하는 세상에 대해 매우 염려를 한다. 이 과정에서 일베와 서북청년단 재건모임을 동일시하기도 하고, 혐오‧증오집단이 거리로 나오는 걸 우려한다.

하지만 서북청년단 재건위원회와 일베는 엄연히 서로 다른 성격을 띠고 있다. 이것은 구성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서북청년단 재건위원회는 익히 알려진 보수단체의 구성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발기인으로 참여한 선진화시민행동(대표 서경석), 엄마부대 주옥순 대표 등은 이전부터 널리 알려진 보수인사이며, 이들은 세월호 이전에도 광주민중항쟁, 제주 4‧3항쟁에 대한 이념 공세를 펼쳤다. 또한 정함철 대변인의 경우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의 창립발기인이다, 이들이 주로 내뱉는 단어는 ‘애국’이니 ‘구국’과 같은 전통적 보수성을 띈다. 이들은 주류보수 세력에서의 경쟁에서 밀려나며, 자신들을 폭력적 선봉대로 정체화했으며, 이러한 폭력성과 증오를 바탕으로 보수세력내 경쟁에 다시 도전하리라 보여진다.

하지만 일베는 정체적으로 극우, 보수적 성향을 띄지만 박근혜 정부를 지키기 위함이 아닌, ‘성실히 사회를 살아가며, 체제의 요구를 따르는 1등 시민’을 지키려 한다. 일베 구성원의 다수가 추구하는 삶이 좋은 ‘여성’과 결혼해서 가족을 이루고,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삶이라는 사회가 요구하는 ‘평범함’이라는 건 ‘국가’라느니 ‘애국’이라는 것과는 꽤 거리가 있어 보인다. 다만 이들이 추구하는 삶의 형태가 산업화 시대 ‘아버지상’ 이라는 권위주의적 경향을 띄고 있고, 결국 그 궤적에서 국가의 권위주의, 그리고 성공과 생존이라는 보수적 이데올로기를 띄고 있음은 일베의 정치적 성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강한 자에게 붙어야만 성공할 수 있는 사회에서 그들의 보수성은 당연한 결과이다.

이와 같은 차이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다수가 마주할 수 있는 공공의 장소’에 등장했음은 단순히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서북청년단 재건위원회라는 명칭에 내포된 힘은 국가가 시민에게 물리력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제어하려한 역사를 부정하며, 국가가 나서지 못하면 우리가 나서 국가를 대신 수호하겠다는 의미이다. 그 과정에서 폭력은 국가를 지키기 위해 수반하는 ‘당연한 행위’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들이 물리적 폭력을 저지르리라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어떠한 촉진제가 등장하고, 폭력을 통해 힘을 얻을 수 있다면 언제든지 폭력은 가해질 수 있다. ‘국가에 반하는’ 사람들을 증오하며 등장한 정치가 어떠한 형태로 변환할지 알 수는 없지만, 그 결과가 폭력과 증오로 이어지리라는 건 예상할 수 있다.

위 사진:[사진 설명]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원회에서 지난 9월 28일 서울광장의 노란리본을 철거하겠다며 박스를 들고 이동하고 있다.


일베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광화문 폭식은 ‘권리에 대한 요구’ ‘배제와 차별에 대한 저항’ ‘인간으로서 존엄한 삶을 요구하는’ 집회‧시위와는 전혀 다른 형태이다. 그들은 거리에서 ‘혐오’와 ‘증오’를 드러내며 여성을 공격하고, 세월호 유가족을 공격한다. 자신들은 그것을 유머라 칭하고, 행동이라 칭하지만 그곳에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와 증오만이 남아있다. 온라인에 머물러 있던 증오와 혐오가 거리에서 노출될 때, 또 다른 증오와 혐오가 다른 거리로 등장할 수 있다. 지금은 세월호 유가족을 향해 겨누어진 칼날이 어느 순간 다른 사회적 약자에게로 향해질 수 있다. 


보수 세력의 움직임에 주목해야

서북청년단 재건위원회와 일베에 대해 주류 보수 세력은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서북청년단 재건위원회에 대해서 별다른 말을 하지 않거나, ‘파시스트’라고 비난하는 반면 일베에 대해서는 행위는 우려되나 내용에는 동의한다고 이야기 한다, 지금까지 보수 세력과 연결고리가 있었던 서북청년단 재건위원회와는 거리를 두는 반면, 일베와의 거리는 좁히려 한다. 물론 그럼에도 서북청년단 재건위원회와 보수 세력의 관계는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보수 세력은 증오와 혐오를 기반으로 자신들의 힘을 키워왔다. 2차 세계대전에서 보인 파시즘과 나치즘의 역사,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 분리 정책), 전 세계적 불황과 신자유주의 이후 신나치를 비롯한 극우정치세력의 등장까지, 증오와 혐오를 바탕으로 한 보수 세력의 정치화는 이를 보여준다. 한국사회 또한 증오와 혐오의 정치가 이제 일상에서 드러나고 있다, 지금 보수 세력이 이들을 자신들의 힘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에 주목해야 한다. 증오와 혐오가 기득권과 만날 때,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위험한 사회가 도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