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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기억하는 4.16] 인간에 대한 존중과 사랑을 혐오로 표현할 수 없다

혐오가 말하는 사랑?

지난 6월 9일, 서울광장에서 제16회 퀴어문화축제의 시작을 축하하는 개막식이 열렸다. 축제 측은 개막행사를 메르스 여파로 유튜브를 통한 온라인 생중계 방식으로 택했다. 개막행사와 관련한 관계자와 현장에서 개막식 참여를 원한 일부 참가자들이 서울광장 내 행사장 안에 있었고, 경찰은 행사장 주변으로 폴리스라인을 설치했다. 같은 시간, 보수 개신교 내에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선동하며 조장하는 세력들은 퀴어문화축제 개최를 반대하는 집회를 서울광장을 둘러싸며 진행했다. 필자는 당일 발생할 수 있는 경찰 공권력과 소수자 차별선동세력들의 인권침해에 대한 대응을 위해 인권침해감시단으로 현장에 있었다.


차별선동세력은 행사장 주변에 쳐진 경찰의 폴리스라인에 가까이 서서 라인 너머 개막식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축제 관계자와 참가자들에 대한 역겨움을 표현하는 피켓들을 들어올렸다. ‘항문섹스도 인권이냐?, 정말 잘났어.’, ‘메르스+에이즈 바이러스, 피땀 흘려 세운 나라 동성애로 망한다.’ 이들에겐 항문섹스로 대표되는 성소수자에 대한 역겨움이라는 감정은 자신들이 세웠다고 믿는 국가의 세금이 에이즈 감염인과 환자에게 지원되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 대한 분노로 이어지고 결국 동성애를 막아야 한다는 혐오로 작동한다.

이 역겨움이라는 감정의 시작은 그들에게는 낯선 타자(근데 정말 낯선 타자일까? 매년 이렇게 행사 때마다 마주하는데.)인 동성애자가 자신들이 주체의 공간인 국가 안에서, 서울의 중심인 서울광장 안에서, 그 공간에 동성애자들과 가까이 있다는 것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이 차별선동세력들은 그 역겨움을 통해 자신의 주체를 드러내고, 동성애자라는 대상을 타자화하면서 이 타자들이 주체들의 권리를 빼앗아가고, 국가를 위협하는 존재로 몰아가기 위해 혐오를 드러낸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를 ‘선민(選民)’이라는 기표를 활용하여 선택받은 민족, 그 어떤 집단보다 우월하고 주체적인 집단으로 인식하며 그에 대한 경계에 있고 위협을 주는 존재를 혐오하는 것이다. 이제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차별선동세력과 선민이라는 집단이 어떻게 만나는가이다. 스스로를 선민이라 이름 붙이며 그 기표가 갖는 의미를 가져와서 우리라는 존재를 만들고 결집한다. 여기서 사랑이 등장한다. 그 선택받은 민족의 사랑은 타자에 대한 존중에서 비롯된 사랑이 아닌, 선민이라는 우월감에서 비롯한 자혜와 다름없다.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혐오하고, 이 혐오로 인해 우리는 모이고 존재한다’고 고백한다. 그 전략으로서 ‘동성애 전환치료’, ‘탈동성애’라는 용어가 나오고, 급기야 6월9일 개막식에서는 ‘돌아와, 기다릴게......’ 라는 피켓 구호가 나오기 시작했다. 동성애자들에게 이성애자로 돌아오라는 내용이다. 돌아갈 수도 없고, 가본 적도 없는 사람들에게 보수 개신교가 베푸는 사랑은 일방적이고, 존재를 무시하며, 반인권적이다.


‘기다릴게, 돌아와......’를 ‘돌아와, 기다릴게......’로 변주한 차별선동세력

성소수자 차별선동세력들이 사용한 이 문구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노란리본을 달고,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억을 잊지 말자고 이야기하고, 그리고 진실규명과 함께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운동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작년 여름 세월호 가족들이 단식 중인 광화문 광장에서 폭식투쟁을 벌인 일베 회원들의 행동, ‘유가족들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 의사자라니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도 아닌데 이해할 수 없네요.’라며 엄마부대봉사단이 외쳤고, 올해 초에는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 천막을 직접 철거하겠다며 서북청년단이 나섰다.

지난 7월 15일 세월호 참사 4.16 인권실태보고서 발표가 있었다. 이 보고서는 세월호 참사는 인권이 침몰한 사건이라고 정의했다.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안전에 관한 모든 문제가 드러났고, 그 원인을 알고자 하는 권리는 모조리 부정당했으며, 그날의 생존자들은 구조된 것이 아니라 탈출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이 생존자, 생존자 가족, 피해자 가족과 현지 자원봉사자, 진도 어민 등의 증언을 통해 드러났다. 그렇지만 국가는 세월호 참사가 분명한 인권침해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1년여 기간 동안 이 참사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으려고 하고, 오히려 이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입을 가로막으려 하면서, 급기야는 4.16연대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박래군 상임운영위원을 구속하기까지 했다.


극우 보수 세력들이 국가를 뒷배 삼아 세월호 유가족을 모욕한 지난 과정들은 자신들을 주체로서 드러내고, 이를 통해 주목받고 싶은 인정투쟁으로 읽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들이 타자화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세월호 유가족이라는 것에서 문제는 시작되었다. 이 참사를 통해 겪은 불안감과 무기력함을 이겨내고 이 참담한 현실을 직시한 사람들이 인간의 존엄과 안전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성찰하고 실천하는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안에서 혐오가 설 수 있을까? 국가가 은폐하고 있는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여 인간의 존엄을 세워야 한다고 믿고 있는 이 분노 앞에, 국가를 의지하고 살라고 말하는 이들의 언어가 진정한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세월호 유가족들의 ‘기다릴께, 돌아와......’라는 말을 자기 멋대로 돌려쓰는 이 차별선동세력이 말하는 사랑이 사랑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인간에 대한 존중을 시민, 국가, 그리고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우리는 분명하게 선언해야 한다.

- 이 글은 지난 5월부터 필자가 참여한 ‘인권연구소 창’의 ‘감정의 정치학’ 세미나와 서울시 인권위원회의 혐오표현 세미나에서 공부했던 자료들과 생각들을 바탕으로 작성한 것입니다.
덧붙임

이종걸 님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사무국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