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당신의 모 상대로 인간을 만드셨고(창세 1,26)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강생으로 모든 사람과 당신 자신을 일치시키셨습니다(사목헌장 22항).
위의 글에서와 같이 인간을 하느님과 더불어 완전한 존엄과 행복을 차지할 위대한 존재로 보고, 이러한 인간의 권리의 보호와 신장을 위해 어느 시대 어느 상황에서나 실천할 것을 교회의 사명으로 인식한데서 천주교 인권위의 활동은 시작된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로 약속한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우리 사회의 아픔과 불의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당연한 일들이 사회로의 관심을 차단하고 교회를 박제화된 틀 안에 가둬두려는 이들에 의해 차단 당한 것이 암울한 지난 시절의 역사였다. 이 틀을 깨고자 하는 노력은 계속되었고 87년 이후의 격변기를 맞으면서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가 다같이 참여할 수 있는 모임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래서 천주교 사회운동협의회와 정의구현 전국연합이 한데 모여 이전 시절에 있었던 정의평화위원회를 계승할 조직으로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연합을 88년 11월 14일 창립하게 되었다. 인권위원회는 이 속에 산하기구로 만들어졌다가 90년부터 대외적으로 천주교 인권위원회라는 명칭으로 독자적 기구로서 활동을 하게 된다.
시작부터 힘겨운 날들의 연속이었다. 일할 사람도 부족하고 갓 시작하는 마당에 임수경 방북, 문규현 신부 방북사건이 터지며 꽁꽁 얼어붙은 공안정국의 바람이 몰아닥쳤다. 이들을 뒷바라지하기에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사무실을 법원과 면회실에 차리다시피 해야 했으며 가는 곳마다 우익단체의 빨갱이 운운하는 플랭카드와 욕설과 부딪쳐야 했다. 출발부터 이렇게 단련되기 시작한 천주교 인권위원회는 다윗과 같은 발걸음으로 걸어왔다고나 할까?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지난 과정의 일들을 정리하고 지내올 틈과 인력이 없었다는 점이다.
황인철 변호사나 이돈명 변호사처럼 인권운동의 1세대라 할 수 있는 분들이 정의평화위원회의 평신도로서 활약하던 시절부터 해서, 한 일을 밖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일단 하기로 결정한 일은 끝까지 해낸다는 자세로 일한 것이 남겨져 있는 가장 큰 자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인권위의 조직은 최병모 변호사를 위원장으로 하여 28인의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로 이루어진 인권위원을 두고 있다. 사무국은 오창래 국장과 최은아 간사가 담당하고 있다.
주요사업은 법률구조사업, 구속자 방문 및 지원사업, 연대활동, 조사활동, 교육‧홍보활동으로 크게 나눌 수 있고, 최근에는 군사독재시절 조작된 일본관련 간첩사건(2-30건)에 관심을 갖고 석방운동과 재심청구를 준비하고 있다. 외국인노동자와 재소자 인권문제도 주요 관심사안이다.
법률구조사업에는 임수경, 문규현 신부, 서경원 의원, 박노해 시인 등에 대한 공동변호인단 구성 등이 있었지만 이들처럼 크게 알려지고 지원통로가 많은 양심수들에 비추어 힘없고 의지할 데 없는 이들, 각 지역교구에 문제를 들고 찾아오는 이들에 대한 활동에 더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들 사건을 맡기로 결정이 되면 소위원회를 꾸리고 사안별로 책임을 맡게 된다. 몇 가지 예로서 교통사고 혐의를 받은 한 시민의 경우 2년째 재판이 진행 중에 있고, 군내 수류탄 투척사건으로 동료살해혐의를 받은 이의 무죄선고나 거제도의 지심도 사건을 인권위원 전원 참여 하에 법률자문을 한 일 등을 들 수 있다.
재소자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작년의 비엔나 인권회의 참석시 외국의 감옥을 현장답사하면서 느낀 바가 크다. 지역주민의 봉사와 협력 속에 이루어지는 교도소의 재활교육 등을 보면서 감시와 처벌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우리의 감옥현실에 대한 문제의식도 그만큼 커졌다. 연대사업으로는 해외 가톨릭관련단체와 교류하는 일, 국제사면위원회와 펜클럽에 박노해‧이장형 씨 소식에 관해 전달한 일등의 해외 활동과 국내활동으로는 국내 각종 사안에 대한 관련 대책위의 활동과 지원을 들 수 있다.
교육‧홍보 활동으로는 가톨릭 신문이나 평화신문, 빛두레 등에 천주교 인권위의 활동을 홍보하고 있으며 매년 12월 첫 주가 인권주일로 선언된 이후 빛두레에 강론자료를 게재하고 있다. 올해에는 4‧5월 중에 독자적 소식지를 발간할 계획이다.
현재 주안점을 두고 있는 재일교포관련 조작간첩사건 해결을 위해 일본에서 현지조사를(93년 9월) 벌인 바 있으며, 올해에도 지속적으로 조사활동과 재심청구, 석방추진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 일을 위해 일본 정의평화협의회와 협력하고 있다. 일본에서 조사활동을 벌인 결과 조작사건임이 분명함을 더 확신한 바 있었다. 군사정권 시절에 이루어진 일들이지만 소위 ‘문민적’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이들에 대한 아무런 조처가 없는 것이 답답하기만 하다. 이들이 당한 고문과 가족의 붕괴, 정신적‧물질적 파탄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가해진 고통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정도의 것이다. 과거에 정권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이들이 희생되었다면 현재에도 이들의 희생이 필요한 이유가 존재하는 것인가?
한때 대학연극부의 인기공연 작품이었던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이나 87년 명동성당의 햇빛 가득한 마당과 첨탑을 기억해보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천주교인권위에 거는 기대는 크기만 하다. 인권운동은 책상에서가 아니라 발로 현장을 뛰는 이들이 많아야 이루어진다는 천주교 인권위의 바램처럼 ‘주의 길을 닦고 예비할 의무를 띤’ 전국의 신도들이 자신의 삶과 사회의 고통을 함께 고찰하고 새롭게 하고자 하는데 천주교인권위의 땀방울이 씨앗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욱 크다.
「인권운동사랑방」 류은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