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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간사] 인권오름 마지막 호를 내며

11년 전 우리는 ‘다른 인권’을 만들겠다고 했다. 인권이 더 이상 억압받고 차별받는 이들의 언어만은 아닌 시대였기 때문이다. 인권이 삶을 품게 되는 만큼 사람들이 인권에 가까이 다가설 것이라 기대했고, 그렇게 인권은 다시 민중들의 삶 한가운데서 굳세게 솟아오를 것이라 희망했다. 512호로 인권오름을 마감하는 지금, 우리는 어디쯤 왔는지 돌아본다.

‘가짜 인권’이 인권으로 행세하게 두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의 재판관 역할을 하며 국가정책에 인권 면죄부를 주는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법치와 안전을 앞세워 국가폭력이 합리화될 때, 자유권은 우리 손에 쥐어진 무기였다. 불안정노동과 빈곤이 심화되는 현실이 정책의 문제로 이해될 때, 사회권을 들고 틈새를 내려고 했다. 인권의 지평에 소수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질 수 있도록 듣기와 전하기를 멈추지 않으며 반차별 담론을 벼렸다. 시대의 모순이 응축되어 터지는 사건들을 인권의 시선으로 짚을 수 있었다.

자신의 삶에서 인권을 길어 올린 이들 덕분에 인권오름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국가가 밀어붙이는 일은 어쩔 수 없다는, 강요된 체념을 거부했던 사람들. 온 세상이 기업의 편을 들어도 노동자의 존엄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 차별의 경험을 토로할수록 더욱 혐오에 직면했지만 말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사람들. 우둘투둘한 손, 고단한 발에서 빚어진 인권은 한국 인권운동의 한 시대를 증언하는 기록으로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리고 인권운동의 동료들이 있다. 낮은 목소리를 운동으로 조직하며 더욱 강한 외침으로 만들어온 이들의 노동에 기대어 인권오름은 창간의 다짐에 부끄럽지 않은 매체가 될 수 있었다. 인권오름을 떠나보내는 지금, 깊은 고마움을 전한다.

인권오름은 부족할지언정 언제나 열려있었다. 인권이 솟고 인권과 놀고 인권을 세우고 인권에 나드는 터가 되었다. 소수자운동이 건네는 질문이 메아리를 얻었고, 자신의 운동을 인권의 언어로 새롭게 해석하게 된 운동들이 응원을 얻었다. 인권운동이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영역의 운동과 만나고 어울리는 장(場)이 되었다. 서로를 지켜보고 북돋우며 운동들도 자라났다. 인권운동은 이미 인권단체의 운동을 넘어 더 넓고 깊어졌다. 인권이 담론으로 삶을 품기 전에도 투쟁과 연대의 현장에서 인권을 저항의 언어로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마주치게 됐다.

이대로도 충분한가 답해야 하는 때다. 어쩌면 우리는 지난 수 년 동안 답하기를 미뤄왔다. 급격히 달라지는 온라인 매체 환경을 인권오름은 쫓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글을 건네기에 급급하다 보니 누구의 손에 닿는지 헤아려보지 못했다. 점차 넓어지는 인권의 지평에서 움트는 인권을 다 담기에도 비좁았다. 부족함을 모르지는 않았으나 어제의 수레바퀴로 오늘을 넘겨보려고만 했다. 적극적으로 변화를 모색하지 못한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인권오름을 내려놓으며, 이 터를 가꿔준 모든 이들에게 미안함을 고백한다.

11년의 인권오름을 닫는 무게에는 인권하루소식의 시간도 고스란히 실려 있다. 멈추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그러나 핍박받으면서도 이어져온 인권의 목소리들이 거리에서 만나 들불처럼 번지는 역사를 보는 지금, 우리는 다시 인권의 역사를 기억한다. 체제에 맞서는 운동을 조직하며 인권을 조직하겠다는 다짐을 몸에 되새긴다. 인간의 존엄을 세우는 도전은 다시 한 발 내딛는다.

2016년 12월 7일
인권운동사랑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