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는 글로벌하게 당선자의 이름을 그대로 따서 ‘이명박 정부’로 칭하기로 했다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밝히고 있다. 그에게는 민주화운동을 계승해야 한다거나, 개혁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없다. 이 당선자와 인수위원회를 통해 들리는 소리는 온통 ‘선진화’와 ‘실용’이다. 그는 일각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경부대운하와 호남운하와 충청운하를 2009년 2월에 착공하겠다고 하고, 건설 5개사의 참여를 요청했다고도 한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자유주의 개혁정권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신자유주의 정권이었다. 두 정권에서 민주화의 연장에서 자유주의 개혁이 일정 정도 이루어졌다. 자신들이 민주화운동의 적자임을 내걸고서 말이다. 그렇지만 그들 정권들은 현재의 신자유주의 체제에 이르는 길을 닦았고, 본격적인 신자유주의 체제를 만들어냈다. 그들 정권에 대해 보수진영에서는 ‘잃어버린 10년’이라며 정권교체를 주창했지만, 민중들에게도 고통스런 10년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상시적인 구조조정이 가능하도록 노동시장을 최대한 유연화시켰으며, 외자 도입을 명분으로 증권시장을 비롯한 금융시장 전반을 외국의 투기자본에 내주었고, 공기업의 민영화를 추진했다. 주주들의 배당이익만을 위한 주주자본주의적 기업경영이 일반화되었다. 그들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추진으로 인해서 빈부 격차는 더욱 벌어져 지니계수는 3.5 이상으로 치닫고 있다. 불평등의 심화 현상은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걱정되는 이명박 당선자의 공약들
외형적으로는 자유주의 정권이었던 두 정권의 바통을 정통 신자유주의자인 이명박 정권이 인계하게 되었다. 이 당선자는 당선 소감에서 선진화를 다시금 주창했다. 그러면서 “기초와 법질서를 바로 세우겠다”고 강조했다. 선진화 시대의 신발전체제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데 신발전체제를 만들겠다는 그의 포부를 표현하는 첫 구상이 인수위를 통해 드러났다. 예전에 국보위 위원이었던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을 인수위원장으로 앉힌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앞으로 그의 인사 스타일을 점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전력은 불문하고, 능력이 있고 이 당선자가 신뢰할 수 있으면 족하다. 그에게 민주주의나 진보적인 가치는 들어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마치 ‘흑묘백묘론’처럼 선진화만 이룰 수 있다면 수단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실용성 중심의 사고 틀에는 오히려 인권과 민주주의는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대선 시기에 이 당선자와 한나라당이 제시했던 공약들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규제완화를 통한 기업투자를 활성화해서 7% 경제성장을 한다면서 국민들의 생활비 절감 30%를 약속하고 있고, 0~5세 영·유아 보육시설 및 진료비를 지원하고 암·중증질환 보장을 확대한다면서 감세를 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도심을 재개발하고 재건축 규제를 완화하겠다면서 집값은 안정시키겠다고 하고, 자율형 사립고 100곳을 설립한다면서 사교육비를 줄이겠다고 한다. 경부대운하와 호남대운하도 완공 시점을 앞당기겠다고 하고, 한미동맹을 강화하겠다고 한다. 또 지금도 유연해질대로 유연해진 노동시장을 더 유연화하겠다며, 동일노동·동일임금의 원칙을 적용해서 비정규직 차별을 없애고, 노조를 손보겠다고 으르고 있다.
이들 공약을 잘 지켜도 참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운하와 같은 공약들은 대재앙을 불러올 것이다. 대운하를 건설하느라고 산을 절개하여 물길을 인공적으로 잇는다고 하는데, 그렇게 된 다음에 이명박은 대통령에서 물러나면 그 뿐이지만, 그 뒤에 일어날 환경재앙은 누가 감당해야 할까? 자율형사립고를 100곳을 늘리고, 공교육에서 영어교육을 강화하겠다는 공약도 마찬가지다. 고교 평준화는 이미 깨져버린 상황이고, 교육의 시장화가 한미 FTA나 신자유주의 시장론자들에 의해서 추진되어 가고 있는 상황인데, 자율형사립고가 100곳이나 늘어나면 중학교 때부터 입시 열풍이 이 나라를 휘몰아칠 것이고, 이후에는 자사고를 다니는 학생과 일반 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은 신분 차별을 겪게 될 것이다.
생존권의 악화를 중심으로 사회권의 급격한 후퇴
이명박 정권이 어디로 갈 것인지에 대해서 논의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그의 ‘선진화-신발전체제’라는 것은 그나마 존재하는 고삐마저 풀어서 기업의 이윤추구를 위한 자유를 대폭적으로 보장하겠다는 말에 다름이 아니다. 남북관계가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비해서 후퇴할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미 그는 ‘한미동맹의 강화’를 내걸고 있으므로 미국이 북에 친서를 보내는 마당에 그가 이런 대세를 거스를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속도의 조절 정도가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미종속성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북에 대한 태도는 이미 북의 개방이 자본의 입장에도 들어맞는 일이므로 이명박 정권도 반대할 일이 아니다. 노무현 정권이 내준 ‘전략적 유연성’ 합의에 의해서 주한미군재배치는 완료될 것이고, 이제 한국은 미국의 세계를 향한 침략허브기지로 쓰이게 될 것이며, 미국의 요구에 따라 무기 구입도 대폭적으로 수용하면 군축은 어림없어진다.
그리고 통제되지 않는 정권의 무한독주는 이제 유아적인 단계를 겨우 벗어난 민주주의를 허구로 만들 수 있다. 그가 서울시장 재직 중에 청계천 복원 공사를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청계천 주변의 노점상이나 영세 상인들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었다. 그의 친기업적인 개혁에서 경제 문제로 고통 받는 서민들을 고려할 것이라고 누가 생각할 수 있을까?
사실 노무현 정권 시기에 경제성장이 안 되어서 경제적인 고통을 당했던 것이 아니다. 신자유주의 정책에 의해서 성장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으나, 그런 경제지표를 나타내는 수치들과는 달리 부동산 값은 치솟고 일자리는 불안해졌다. 다수는 일해도 빈곤해지고 소수는 더욱 잘 사는 상황은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이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분배를 강조하는 듯한 정책을 제시했지만, 실제는 분배구조는 손을 대지 않은 채 재벌과 외자 위주의 정책을 강행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기조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것이 이 당선자 공약의 핵심 기조다.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을 적용하여 비정규직 차별을 없애겠다는 뜻은 사실은 기업이 보다 더 자유롭게 해고하고, 다시 고용할 수 있는 비정규직으로 노동시장을 통일하겠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더욱이 현행 비정규직법은 올 7월에 100인 이상 300인 이하의 사업장에 적용되고, 이후에 다시 100인 이하의 사업장에 적용된다. 이랜드-뉴코아에서 보듯이 비정규직에 대한 계약해지와 외주화가 일상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또 올해부터는 직권중재제도가 폐지되는 대신 필수공익사업장의 파업 시에도 기본 서비스는 제공하도록 법적인 규제 장치를 만들어 놓고 있다. 파업권이 보장되지 않는 한국의 노동운동의 현실에서 파업권은 더욱더 약화될 것이니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노동자들의 마지막 합법적인 수단조차도 무력해진다.
거기에 공공부문의 민영화도 가속도를 낼 것이다. 공공부문의 비효율 구조를 개혁하겠다고 하는데, 시장에 내맡겨진 공공부문은 지금은 나름대로 권리영역이지만 결국은 시장영역으로 넘겨진다는 의미다. 의료, 교육, 주거, 복지 등등 어느 분야에서건 사회권의 후퇴는 급격하고도 단호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민중들은 생존권과 사회공공성의 후퇴에 맞선 절박한 투쟁을 계속 할 수밖에 없는데, 그때 프랑스의 사르코지 정권처럼 민중들의 집단적 시위에 대해서는 강경대응하겠다는 것이 법질서를 바로 세운다는 의미다. 한미 FTA는 정부 출범을 기다릴 것도 없이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한다고 하지 않는가. 노무현 정권도 억압해마지 않았던 한미 FTA 반대 투쟁을 이 당선자가 억압하지 않을 것이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폭력과 차별이 강화된다
그럼 시민·정치적 권리(자유권) 영역은 어떨까? 집회·시위에 대한 억압이 이미 극에 달하고 있는 상황은 계속되고,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경찰은 새로운 진압장비와 수단들을 마련해놓고, 국회는 집시법 개악을 추진 중에 있다. 그리고 민중의 정치적 입장은 더욱 어려워질 공산이 크다. 이런 보수정권의 등장으로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가까스로 자신의 지위를 유지해왔던 공안기관들은 자신들의 위상과 힘을 강화하려고 획책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곧바로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에 대한 탄압으로 이어질 것이 확실하다.
노무현 정권이 그나마 민주화운동의 적자로서 자유주의 개혁을 진행한 결과로 성립된 외형적 법치는 사실상 형식화될 가능성이 높다. 노무현 정권에서 입법이 지연되었던 공안관련 법제들은 강화될 것인데, 올해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다수 의석을 점하게 될 경우 곧바로 테러방지법이나 통신비밀보호법, 북한인권법과 같은 인권에 역행하는 법률들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으며, 그렇게 될 경우 국민 개개인에 대한 감시와 통제는 더욱 더 치밀하게 짜일 것이 예정되어 있다. 대체복무제가 후퇴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여기서 더 나아가서 현재의 차별구조는 더욱 강화된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었고, 차별금지법이 2월 임시국회에서 제정될 수 있다고 해도 실제적인 차별은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가 대선 중에 내비추었던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등에 대한 차별적인 발언의 근원은 그의 기독교 근본주의적인 세계관에 기인한 것이다. 이미 보수기독교계는 차별금지법을 ‘동성애허용법’이라고 강짜를 부려서 정부로 하여금 차별 사유에서 ‘성적 지향’을 비롯한 7가지 사유를 삭제하도록 강제했다. 신자유주의에서 정체성에 의한 차이를 통한 위계화는 극한지점에 도달하고,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을 소수자들에게 떠넘기면서 증오를 부추기는 상황이 오지 말란 법도 없다. 인종주의적, 가부장적인 차별 구조의 강화는 신자유주의의 또 다른 특성이다.
인권 관련 국가기관들의 상황도 위기다. 이제 국가인권위원회가 노무현 정권에서처럼 독자적인 입장을 견지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한나라당은 끊임없이 국가인권위원회의 약화를 노려왔다. 과거청산 기구들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이들 기구들은 인권옹호적인 기관의 성격을 탈각하면서 잘못하면 인권침해에 대한 면죄부를 발행하는 기관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정부 부처의 기구들은 이미 이 당선자에게 줄 서기를 시작했고, 독립적인 인권관련 기구들에는 이명박의 사람들을 포진시킴으로써 본질적인 역할을 왜곡시킬 공산이 크다.
결론적으로 이명박 정권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추구해온 신자유주의 체제를 완성해 갈 것이다. 거기에 한미 FTA를 필두로 한 FTA 체제가 완성되고, 대규모 토목공사와 뉴타운과 같은 개발공사가 기승을 부릴 것이니 민중들에게는 총체적인 재앙을 가져올 것이다. 재앙공화국의 도래가 이명박 정권이 가는 길이고, 이런 재앙공화국에서 인권의 보장이라는 것은 허구적일 수밖에 없다.
총체적인 인권운동을 전개하자
이 같은 상황에서 진보운동은 권리투쟁을 우선적으로 전개할 수밖에 없다. 모든 진보적인 운동이 지금까지 확보한 권리들을 방어하기 위한 운동으로 전개될 공산이 크다. 노동자와 농민, 빈민이, 그리고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들이 모두 인권운동에 나설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인권운동은 생존권을 비롯한 사회권의 급격한 후퇴에 대해 민중운동진영과 연대해서 사회권을 구체적인 권리로 만들어가는 투쟁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사회권의 핵심적인 부분은 노동권과 사회공공성이다. 이들 분야로부터 시작되는 권력과 자본의 공격을 인권의 이름으로 막아내면서 우리가 쟁취해야 할 인권의 목표를 뚜렷이 제시하는 투쟁이 필요하다. 또 국가와 기업의 폭력, 감시와 통제체제에 대한 저항을 일상화할 필요가 있다. 그간 입법운동 중심의 인권운동을 넘어서 실질적인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강화되는 차별의 구조를 깨기 위한 반차별운동도 인권운동이 시급히 전개해야 할 분야다.
이제 한 분야에서 인권이 후퇴하는 상황이 아니다. 인권에 대한 총체적인 공격, 그로 인한 총체적인 위기가 이명박 정권 시기의 인권상황의 특징이다. 이런 상황에 맞게 대응해가는 인권운동은 민중들의 권리투쟁과 굳게 연대해야 하고, 그 권리투쟁을 옹호하면서 선도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권력과 자본의 공격 앞에서 개별적으로, 분산적으로 대응한다는 것은 패배를 자초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연대를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 연대는 인권을 실현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고, 방법이다.
그리고 마침 올해는 세계인권선언 60주년이 되는 해다. 인권은 이명박 시대의 재앙공화국에서도 포기하거나 양보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다. 인권에 대한 공격이 강하면 강할수록 우리는 인권을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투쟁의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세계인권선언 60주년에 우리의 투쟁의 결과로 만들어지는 민중의 권리선언을 우리가 쟁취해야 할 공동의 목표로 합의해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인권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계속 조직해가야 하지 않을까. 인권운동, 올해 참으로 할 일이 많고 어깨가 무겁다.
- 85호
- 벼리
- 박래군
- 2008-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