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사태 처리의 역사적 전개
리안드로 데스포이 (유엔 비상사태특별보고관)
한 나라의 인권상황에 대한 국제적인 감시는 70년대부터 점차 그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정부들은 비상사태를 선포할 때 국제적인 감시와 통제로부터 벗어나려고 여러 방법을 쓰지만, 위험한 상태에서 국제적인 감시는 매우 필요하고 유용하다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다. 위기상태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긴장감, 증오감, 폭력은 정부의 권력남용 또는 기타 자의적인 조치를 취하는 상황까지 몰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비상사태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① 비상사태는 공식적으로 선포되어야 한다 ② 비상사태가 해당 국내․국제 규범에 따라 공식 발표되고 적용될 것을 요구한다. 국제적 차원에서는 인권보호를 위한 국제기구의 협약 및 인권소위원회 특별보고관에 의해 만들어져 구속력을 지닌 현행 국제법의 일부가 된 기준과 원칙을 말한다. ③ 예외적인 위협의 원칙-비상사태는 사태가 매우 심각하여 전체 인구가 위험에 처해 있고 그러한 위기가 사회의 구조와 삶에 진정으로 위협이 되는 경우에만 필요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는 국제적으로 불법적 또는 권력남용이라는 비난을 사게 된다. ④ 한시성의 원칙-비상사태의 본질과 특별한 성격을 고려할 때 특정한 시간제한이 가해져야 한다. ⑤ 조화의 원칙-사태의 심각성과 그 사태를 중재하기 위해서 취해지는 조치간의 연관이 있어야 한다. ⑥ 특정인권의 양도불가성-예외적인 상황에서도 생존권, 고문금지와 같은 인간의 기본권에 한정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을 금지된다. 또한, 실시하는 모든 조치는 인종, 성별, 피부, 언어, 종교 등의 이유로 차별대우하지 않아야 하며, 비상사태의 목적은 불법 정부의 성립과 영구화가 아니며 쿠데타에 의해 성립한 정부나 인종주의나 식민주의적 정부의 경우도 해당되지 않는다.
비상사태를 선포한 정부는 어떠한 경우라도 유엔인권위원회 특별보고관에게 통보해야 하며, 시민․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에 가입한 경우 유엔 사무총장에게도 통보해야 할 의무가 있다.
주요 위반사례
1. 사실상의 비상체계-비상사태를 선포하지 않은 상황에서 사실상의 비상체계를 유지하여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해 계속 구금시키는 등의 불법이 자주 일어난다.
2. 비상사태의 지속-한시성의 원칙을 위반한 경우로 파라과이는 54-88년까지 비상사태를 유지했다.
3. 교묘한 비상사태(교묘화)와 제도화-자의적인 결정을 동시에 내리게 된다. 브라질에는 1백5개의 예외법칙이 있었다. 또, 비상사태를 제도화하기 위해 필리핀의 마르코스 대통령은 국민투표 실시로 합법적인 제도를 만들었다. 칠레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비상사태와 국가보안법
냉전시대에 정부가 예외적인 조치를 채택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가장 자주 사용한 구실은 ‘국가안보의 수호’였다. 가장 전형적인 예는 남미의 국가안보이념(독트린)에서 찾을 수 있다. 이때 남미 대부분의 정부는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내부의 적이나 내부 적의 대리인들도 국가안보의 위협으로 간주, 수십 년간 가장 잔인하고 혹독한 독재체제를 정당화해 왔다. 비상사태의 선포가 대다수의 인권을 유린하고 모든 형태의 정치적 반대행위를 탄압할 목적으로 독재자들이 사용한 사법적 도구였다는 사실은 국가안보 이념을 실행하는 여러 사례에서 발견되고 있다.
유럽국가들의 경우 국제적인 기준을 잘 지키고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나라들은 가장 탈법적인 조치들, 즉, 비상사태를 선포하지 않고 취하는 조치-이주민, 난민, 망명신청자들에 대해 예외적인 조치-를 취한다. 이런 비상조치들은 비상사태 하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가장 많은 위반을 하는 지역은 아시아다. 행정부가 의회보다 강력한 경우, 국가보안법을 무리없이 채택한다. 또는 예외적인 권한을 갖게 하는 비상사태를 선포하지 않고 사실상의 비상사태에 준하는 예외적인 조치를 실행한다. 현재 말레이지아, 인도네시아, 싱가폴, 홍콩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식민통치의 유산으로 탄생한 독재정권이 존재하는 아시아 지역의 인권운동가들은 국가안보를 이유로 취해지는 예외적이고 탈법적인 조치들을 국제법의 원칙에 따라 극복하는 것이 최대의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