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전쟁'의 악령이 아르헨티나에 머물고 있다!"
완전한 과거청산을 요구하는 아르헨티나민들은 75-83년에 걸친 군부통치기간을 더러운 전쟁(dirty war)이라 한다. 이 기간중 9천명이 넘는 실종자가 발생했고, 이들중 사라진 어린이들에 관한 정보가 95년 초에야 드러나기 시작했다. 94년 한국을 방문했던 하얀 머릿수건의 ‘5월광장의 머머니들’은 진실을 알 권리를 주장하며, 오늘도 출생조차 비밀에 묻힌 실종어린이들을 찾아나서고 있다.
구유고에서는 4년간의 내전중 수천 명이 실종 또는 행방불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대체 ‘실종’은 무엇이며, 홍수에 떠밀려 사라진 것과 무엇이 다른 것인가?
‘실종’은 74년 라틴아메리카의 언론과 인권단체가 처음 쓴 말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실종자가족연합(FEDEFAM)의 정의에 따르면 “실종은 정부 기관원․공무원 또는 정부의 지원 또는 묵인하에 행동하는 사적집단의 조직원에 의해, 정치적 반대자들을 억압, 방지, 방해할 의도로 행해지는 것으로, 실종자의 운명을 그 가족.친구.지지자들이 모르게끔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감추기 위해 의도된 여타의 행위”를 의미한다.
‘강제되거나 비자발적인 실종에 관한 국제연합 실무그룹(the UN Working Groupon enforced or Involuntary Disappearances)’의 95년 보고서에 의하면 94년에만 적어도 20여개 나라에서 실종이 발생했으며, 80년에서 94년까지 실무그룹에 보고된 실종건수는 4만5천1백34건에 이른다. 그러나 이 수치는 실종자 가족이 보복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관계단체에 보고한 경우만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수치는 이를 훨씬 웃돌 것이 확실하다.
‘실종’은 그 유사한 형태들, 즉 ‘행방불명, 유괴, 비밀장소 수용, 비사법적 처형’ 등과 혼돈을 일으킬 수 있다.
매우 비슷한 상황일지라도 확실한 구분점은 그 책임이 정부당국에 있느냐 아니냐에 있다. 예를 들어, 어디에 갇혔는지 모르고, 가족이 방문할 수 없다할지라도 구금사실자체를 그 가족이 알고 있고, 그 사실을 당국이 인정한다면 그건 ‘실종’은 아니다. 많은 실종은 약식처형으로 끝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피해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려지는 한 ‘실종’은 아니다. 엄밀히 말해, 실종은 피해자의 운명에 관해 전혀 알려진 바가 없고, 신체가 발견되지 않고, 죽음도 비밀상태로 유지되는, 그야말로 완전히 사라진 상태이다.
그리고 배후에는 정부가 있다.
그럼, 왜 ‘실종’을 명령하거나 행하는 정부들은 정상적인 사법절차를 이용하지 않는가?
실종은 빠르고 어떤 자취도 남기지 않으며, 매우 ‘효과적’이고 ‘편리’하다. 당국자로 하여금 “우리손은 깨끗하다”고 주장할 수 있게끔 하는 완전범죄이다. 어떤 증거도 남지 않고, 증명할 수도 없기 때문에 국제적 비난과 국내의 저항도 방지할 수 있다.
“왜 귀찮게 사법절차를 논의하거나 정치적 재판을 하는가?”, 왜 국제사회의 비난을 일으키느냐? 양심수가 동정을 불러 일으키고, 처형으로 말미암아 순교자의 불길로 타오르게 할 필요가 어디 있느냐?“가 이들의 편의주의다.
이 방법은 또한 전체인구에 ‘공포’가 스며들게 한다. 자신들로 대표되는 권력이 강화되고 현질서에 대한 어떠한 잠재된 저항도 마비되기를 바라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런 정부일수록 국제적인 자신들의 이미지에 민감하기 때문에 외양의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싶어한다.
‘침묵의 수의’, ‘폭력의 새로운 얼굴’ ‘새로운 가면을 쓴 억압’ 등이 ‘실종’의 또다른 이름들로, ‘실종’은 법과 사회의 기초를 저버리는 폭정의 형태이다.
실종은 또한 그 자체로 기본적인 권리침해와 결합된다. 즉, 자유권, 신체보전의 권리, 생명권, 또한 법적방어에 필요한 모든 권리를 침해한다. 왜냐하면 어떤 형태의 영장도 발부되지 않았고, 재판도 없고, 변호인도 없고, 공지된 사실도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종’을 겪는 피해자 자신과 그 가족.친지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다. 피해자와 그 가족은 아무 것도 모르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두려워하는 ‘정신적 고문’을 받기 시작한다. 실업과 실종자로 인한 수입원의 상실, 추적에 드는 비용으로 인한 물질적 고통이 이어진다. 주변사람이 멀리하려 드는데서 사회적 박탈감과 함께 고립되기 시작한다. 특히 아이들이 겪는 고통은 심각하다. 부모의 실종현장, 때론 눈 앞에서 부모가 고문받는 것을 지켜본 경우 현장목격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부모가 실종된 12살이하 아동 203명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70%가 우울증과 공포감을 갖고 있고, 사이렌.유니폼.밤의 차소리에 대한 경련, 일상행동과 학업태도 저하 등의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이들은 부모의 부재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왜, 어떻게, 어디에를 전혀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종자 가족들은 ‘잊혀짐’을 가장 두려워 한다. 당신들이 우리를 잊는다면 우리는 영원히 ‘실종’ 되는 것이라며.“내 아들이 사고로 죽었다면, 나는 그애가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잊거나 잊을 수는 있겠지만 사람과 더불어 그것을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려 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거리에서 그애를 데려갔다면, 그애가 맞았다면, 그리고 그 이후 아무도 그애를 보지 못했다면, 뭘 먹는지, 추운지, 잘 곳이 있는지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은 끔찍하다. 사악한 무리들의 손아귀에 내 아들이 있다고 생각하면 어찌 참을 수 있는가? 그들이 그애에게 뭘 할지를 생각하면서 어머니가 뭘 느끼는지 당신은 이해할 수 있느냐?” -실종자 가족의 말 중에서
【류은숙 인권교육실장】
인권하루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