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3시 세종로 한국통신 빌딩 앞. 정장 차림의 신사 세 분과 아주머니 두 분이 40여 명의 전경들에게 길을 막힌 채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목사와 수녀 신분인 이들은 미군병사의 한국여인 살해사건과 관련해 미 대사관에 항의서한을 전달하러 가는 길이었다.
"우리는 단지 편지만 전달하러 갈 뿐인데 왜 길을 막는 것인가."
이에 경찰의 답변은 궁색하기만 하다. "안됩니다. 2명 이상이 움직이면 시위에 해당하니 두 사람만 움직여 주십시오" "어깨띠를 매고 있으면 집회가 되니 안됩니다" 도대체 목사님과 수녀님 5명이서 무슨 대단한 시위를 벌인다고 난리를 벌이는지. 집시법을 충실히 지키려는 의도였든지, 아니면 과잉충성이 빚은 해프닝이던 결국 경찰은 길을 내주었다.
"일본에선 윤간사건 때문에 클린턴 대통령의 사과를 직접 받아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살인사건이 일어났는데 항의서한조차 전달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것도 같은 민족인 한국 경찰이 앞장서서 막고 있다"는 목사님의 말씀에 순간 전경들은 시선을 피한다. 한국경찰인지 미국경찰인지 분간할 수 없게 만든 씁쓸한 광경이었다.